내일도 나아지진 거 없이 여전할 지라도
네가 나의 우주인 이상, 계획적인 내 삶에 무수한 변수일 것이며, 내가 만든 비수 같은 결과이자 내가 비참히 맞이할 참혹한 실패일 것이다.
예상과 오차 범위를 뛰어넘는 비상식적인 네 행동에도 나는 기이함과 절망이 아닌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을 느낄 테지.
너는 그렇게 나의 또 다른 반려이자 영원이다.
오답투성이인 나의 비관적인 삶에 너를 만난 것만큼은 정답으로 남겠다.
마른하늘의 날벼락같던 네가 비를 몰고 와 나의 마음을 비옥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란다.
너는 그만큼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말이다.
네게 매일 빼놓지 않고 말을 건다.
돌아올 대답이 없다는 걸 알아도 이미 익숙해졌다.
대체로 네 행동에 관한 내 하소연인 것도 당연하게 되었다.
돌아오지 않은 말은 건네도 좋다.
돌려받지 못할 사랑을 주어도 좋다.
너와 함께 한다는 건 대부분 나의 희생으로 이뤄짐에도 난 그저 네가 좋다.
누군가는 내 삶을 비웃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밖에서 돈 벌 생각도 없고, 결혼했는데 애 낳을 생각도 없이 그저 ‘개’만 좋다고 끌어안고 산다고 말이다.
뭐, 나도 내 삶이 그렇게 바람직하다거나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 서있으니까.
그래도 내 삶이 부끄럽지는 않다.
이미 내 삶에 답이 없음을 인정했고 나는 사회와 가정이란 시스템에서 나가떨어진 낙오자다.
스스럼없이 스스로를 파괴하고 짓밟을 살인자다.
과거의 나는 연민하고 애처로워하면서 현재의 나는 혐오하고 이겨낼 자신이 없어 회피하는 도망자다.
이런 보잘것없는 내게 하염없이 자신을 내어준 게 너라서 나는 그저 사랑하는 것뿐이다.
내일 나의 목을 멜 준비를 마쳤어도, 오늘 너의 하루는 무사히 지켜주는 것이 전부인 거다.
모두 각자의 삶과 생각이 다르듯, 내 삶과 생각은 이런 거다.
그래서 내가 바라보는 나의 삶이 비통할지라도 남이 바라볼 나의 삶에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날 사랑해주는 존재와 사랑하며 혹독한 다음 날들을 버텨낼 것이다.
사실 우울증 집사와 강아지의 엉망진창한 동거의 최대 피해자는 내 남편이다.
백설이가 친 사고로 놀란 마음이 가라앉아 평온해질 쯤이면, 여차 없이 내가 사고를 친다.
이쯤 되면 남편이 제일 불쌍할지 몰라도, 남편은 알고 있다.
본인은 내 삶에 미련이라는 것을.
내게 백설이가 원동력이라면, 남편은 미련이다.
미련하게도 사랑한 나머지, 미련하게도 함께 할 시간을 기대해버려, 날 살게 만든다.
남편에게는 내가 시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하루도 나에게는 미련이 남아 숨을 쉬었고 원동력이 있어 살아냈다.
엉망인 백설이와 진창인 나에게 유일하게 뿌리를 내리고 단단한 기둥이 된 존재가 남편이다.
엄마는 내가 무엇으로 힘들어하는지 몰랐고
아빠는 내가 힘들어하는 것 자체를 부정했던 시절조차 남편은 옆에서 묵직이 날 지켜주었다.
남편은 내 말 한마디에도 가슴을 쓸어내리고 억장이 무너지고 오금이 저릴 테다.
칠칠치 못한 손일지언정 최선을 다해 만든 최고의 집이 내려앉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일 거다.
그러나 애석히도 나는 그저 모래성에 불과하다.
아무리 휘향찬란하게 만들었어도
곧 파도에 쓰러지고 바람에 흐트러져 어느샌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나중에는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도 알지 못하게 되는 것.
비옥한 땅을 디딨고 금빛으로 수놓은 하늘을 바라봐야 할 나의 또 다른 사랑인 네게,
메마른 모래언덕 밖에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앞으로도 우리는 엉망진창, 풍비박산, 지척불변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치르겠지만, 후회 없는 동거생활은 계속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