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게 실패를 안겨주는 존재다.
나는 지극히도 성과주의, 결과주의적인 성격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절대 아니다.
안타깝게도 내 성장기에 있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기질이다.
널 만나기 전까지 나는 퍽 고생스럽고 억척스럽게 살았다.
나에게 있어 결코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성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있어서 쓸모없는 일을 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나는 과정은 철저히 숨기고 감춘 채, 성공적인 성과와 결과만을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 인지하고 있어도 이미 만들어진 기질을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나는 성과 없는 과정을 숨김과 동시에 혐오한다.
내 삶은 실패를 보여주면 안 되는 삶이다.
그러나 너는 나를 실패로 이끌고 바닥보다 깊은 어둠으로 끌어내리길 반복한다.
사소한 일부터 거대한 일까지, 너와 함께 하는 세상은 무모하기 그지없다.
나는 잭팟이라 착각한 너에게 내 인생을 배팅해버려 도박판이 너무 커져버렸다.
솔직히 트리플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카드를 오픈할수록, 넌 40퍼센트 정도의 확률인 원 페어도 아닌, 그냥 똥패다.
상승장을 탄 줄 알았지만, 하락장에 탄 개미가 되었고 넌 베짱이와 다름없다.
항상 넌 믿을 수 없다고, 넌 믿으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누구보다 널 믿고 있다.
그렇게 너로 인해 모든 게 무너져도 다시 너라는 물결에 몸을 맡긴다.
그 물결에 날 어디로 데려갈지 분명 알지 못함에도 말이다.
버뮤다 삼각지대로 휩쓸릴지, 혹은 그 아래 숨겨져 있을지 모를 아틀란티스로 인도할지.
처음 네가 나에게 으르렁거렸을 때가 아직도 강렬히 남아있다.
내 모든 걸 주었는데, 날 배신했다고 느껴져 실연이라도 당한 것 마냥 울었다.
너와 나의 관계가 끝난 것 같이 서럽고 서운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날 놀려댔다.
이제는 네가 으르렁거리면 나도 똑같이 으르렁거려준다.
네가 화낼 때, 잘못했을 때, 함부로 웃으면 안 된다는데, 나는 그 모든 게 왜 머저리만치로 웃길까.
네가 날 물어도 이젠 서러움에 겨워 울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날 물고 흥분해서 예민해져 버릴 네가 안쓰러울 뿐.
너의 안전과 평온이 나의 것보다 중요하다.
너는 다시, 그리고 또다시 날 실패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미 내가 퍽 글러먹은 보호자이자 반려인이니까.
애초에 널 키우는 과정 자체가 잘못되었다.
나는 너라는 존재, 그 자체만을 사랑하고 싶었다.
내가 필요했던 사랑, 내게 결핍되었던 믿음, 그 모든 걸 너에게만은 부족하지 않게, 오히려 차고 넘치게 주고 싶었다.
절제된 사랑, 적당한 애정, 때에 맞는 무관심.
이런 건 내가 널 만난 이유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순간 내가 줄 수 있는 최선과 최고의 것들을 주어도, 높디높은 너란 존재에게는 일개 하찮은 것들일 뿐이다.
존귀한 네 존재에, 나까짓 게 어찌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있으려나.
네가 폭군이라면, 나는 그런 너를 숭배하고 모시는 눈먼 탐관오리이며,
네가 신이라면, 네가 내린 시련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일 신도다.
네가 지옥이라면, 난 기꺼이 온몸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이미 네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하등 필요치 않은 먼지에 불과했는데, 네가 있어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네가 아무리 나에게 실패만 가져다준다고 해도,
나는 너라는 실패의 고배를 마시고 마시다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독자와 다름없다.
강아지든, 사람이든 과한 기대를 하는 건 절대 이롭지 못하다.
원치 않은 결과에 맞닿으면 실망하고 좌절할 테니 말이다.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클 때 또한 마찬가지다.
실패에 맞닿은 순간, 깎이는 자존감과 함께 자기혐오에 잠식되고 이내 침식으로 침몰하는 배와 다를 게 없어진다.
백설이한테 매 순간 기대를 한다.
더 나은 하루가 되기를, 오늘은 사고 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지만,
오늘 역시 백설이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꽤나 다양한 분야에서 특출 나게 사고를 쳤다.
‘끼깅’하고 울길래 봤더니 김치찌개에 들어간 두부가 먹고 싶어서 뜨거운 냄비에 입을 가져다 댔다.
비장하게 숲을 헤지고 돌아다니다가 도깨비풀을 뒤집어쓰고 왔다.
남편과 내 사이에 끼어드는 건 일상이고 심기를 건드리면 으르렁댄다.
눈에 안 보이면 무슨 사고를 치고 있는 중이다.
내 기대는 다시 무너졌고 또 실패했지만,
나를 마주하고 잠든 백설이를 보며 나는 다시 행복하다.
실패했지만, 어떻게 감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건지 나도 아이러니하다.
물론 백설이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무너지고 눈물짓던 날들, 백설이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지쳐버린 날들이 있다.
백설이의 결과물에 온전하지 못한 정신이 남아날 일이 없기도 하였다.
그래서 누군가는 반려라는 귀중한 생명을 버리지만, 그렇기에 나는 백설이와 헤어질 수 없다.
아무리 백설이가 내 시간을 참혹하게 만들더라도 나는 다시 백설이로 인해, 백설이를 위해 살아갈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