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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리 Oct 22. 2022

우울증 집사와 강아지의 엉망진창 동거

그날에 울던 너를 잊을 수 없다.

2022년 겨울은 내겐 극진히 혹독하여 마음속에도 서리가 피어났다.

그때의 나는 다시금 온전한 생각을 갖지 못했다.

우울증은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날 헤집어 상처를 만들고 흉터를 남긴다.

큰 사건이 일어나 내 정신이 산산조각 난 것도 아니었다.

우울증이라는 건 언제 재빠르게 나 자신을 집어삼킬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자기혐오와 자기연민이 치솟는 감정을 조절할 제어장치가 고장나버렸다.

차라리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을 마시던, 예비 알코올 중독자 정도의 삶이 더 나았다.

그때는 마음이 어떻든 친구들과 어울려 기분 좋은 척 취해 있을 수 있었으니, 죽음을 고민할 틈은 많지 않았다.


나는 수면제를 삼키고 칼을 들었다.

손가락으로 더듬어가며 경쾌하게 울리는 맥박의 위치를 찾았다.

꼭 그곳이어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맥박이 울리는 곳을 겨냥했다.

유달리 다치거나 아프면 안 되는 부위가 손이었지만.

삶에 관한 의지를 상실한 나에게 가장 쓸모없는 것이 바로 그곳이었다.


우연히 팔에 겹쳐진 귀로 맥박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무엇이 그리 살고 싶어 힘차게 뛰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때로는 삶을 향한 마지막 발악으로 느껴져 남겨놓았던 것을 스스로 끊어내고 싶어졌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어야만 진정 숨 쉴 수 있을 듯 싶었다.


너와의 시간은 잠시 나를 홀린 것이 불과할 뿐, 본질적으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이롭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임계치를 넘어선 나의 결론은 곧 실행으로 옮겨졌다.

남들 모르게 네게만 작별인사를 건넸다.


한없이, 그리고 무심히 이기적이게도

난 네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행복하라며 네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내가 선택한 내 마지막 장소는 화장실이었다.

네가 내 죽음을 맛볼 수 없게,

내가 죽어도 그 흔적을 깨끗하게 닦아낼 수 있게,

죽음 뒤에도 나의 결벽과 강박이 지켜질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러나 닫힌 문 너머로, 죽음이 무엇인지 알리가 만무한 너의 애절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야상곡을 좋아하는 내 취향과 맞지 않았지만, 나를 위한 레퀴엠은 지나치게 서글펐다.


그러고보니 넌 날 항상 기다렸구나.

그래도 너의 삶보단 나의 삶이 더 안타까우니, 이번만큼은 양보해줘.

네가 너무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게,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아, 나는 널 기다릴 기회조차 얻지 못하려나.


그 울음, 내 마음이 가여워 아득해질 때까지 듣다가 잠들었다.


그것이 내 마지막이길 바랐지만, 사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나는, 죽는 것에도 소질이 없었다.

다섯 개의 흉터와 함께 이 방법으로는 절대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얻었다.


너의 울음은 날 위한 레퀴엠이 아니었다.

응급실에서까지만 해도 입원에 순순히 동의하였지만, 문득 네게 돌아가고 싶었다.

집으로, 너와 내가 행복하던 곳으로 다시 가고 싶어졌다.

그렇게만 하면, 나는 다시 너의 존재로 인해 망각에 빠져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너를 품에 안고 우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대어야만 살아낼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기엔 너무도 벅차다.

그 존재가 고작 강아지라고 비웃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무려 강아지가 기댈 수 있는 존재다.


백설이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든, 어떤 행동을 하든 나를 끝없이 사랑한다.

나의 죽음마저도 사랑할지 모른다.

나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 나를, 백설이는 무엇 하나 계산하거나 따지지 않고 사랑해준다.


반려이기에 그렇다.

같이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니 백설이와 나의 동거가 엉망진창일 지라도, 우리는 계속 함께 해야만 한다.

나는 백설이에게 의지하고 백설이는 나에게 의지하니, 감히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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