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쉐리 Oct 03. 2022

우울증 집사와 강아지의 엉망진창 동거

자살시도 후에도 나를 기다린 건 너였다.

대학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

자살시도 환자라 중환자실에 가야 했지만,

엄마, 아빠는 보호자 24시간 상주에 동의하며 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수액 팩이 3개가 달렸고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는 기계도 함께 날 따라다녔다.


너와는 떨어지게 되었지만,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던 나에게는 격리가 아닌 보호 조치가 이뤄졌다.


엄마는 약물중독에 이어 자살기도까지 한 나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화를 냈다.

아빠는 내가 우울증과 반쯤 미쳤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며 아무 일 없다는 듯 대했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내 행동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내가 여즉 살아있음에 대한 사과였다.


그렇게 너와 조금 멀어지고 싶었는데, 염치없게도 네가 너무 보고 싶었다.

너와 함께 한 시간은 고작 한 달이었는데, 나는 네가 정말 그리웠다.


너에게 난 무슨 짓을 한 걸까?

아슬히 신뢰를 건넨 네게, 나는 이유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밤이 되면 항상 모이던 가족들을 흩어지게 했을 것이며, 네게 쏟아지던 관심을 거두게 만들었을 것이다.

네 전부를 사랑하겠다는 다짐이 무너지는 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 다짐이 무너진 나는 네가 없는 삶으로 돌아가길 원했었다.

그러나 알량한 자존심과 드러낼 수 없는 비열함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네가 없길 바란다 말하면, 내가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악인이 되니 말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반려동물 입양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하는 거다.

10년 넘게 강아지와 함께 살고 싶었지만, 나는 그리 헌신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너와 함께 하고 있는 건, 내가 그래도 양심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내가 타인의 눈에 착한 사람이고 싶어서 말하지 못한 속마음이었으니 말이다.


강력한 퇴원 의지와 약을 끊겠다는 약속으로 나는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강제 입원이라도 시킬 기세였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네가 기다리고 있을 집에 돌아갔다.

내가 널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는 바보 같은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를 반겨주었다.

너는 순수한 바보였고 나는 끔찍한 머저리였다.

이렇게 순수하고 정성스러운 존재를 향했던 내 생각들이 얼마나 추악한 것들이었는지.

내 죄책감은 항상 그날들에 머물러있다.

너와 함께 하기에 존재하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네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하루를 보내면서도,

나는 매일 죄책감을 느낀다.


앞으로도 너의 존재는 내게 그렇게 죄책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나는 그 죄책감의 무게에 짓눌릴 테지만, 내가 느끼는 죄책감의 무게보다 널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에 함께 할 거다.

네 평생의 시간을 가장 행복하게 해 주며, 감히 용서받기를 바랄 것이다.


네가 없는 시간으로 돌아가길 바랐던 나는 내 선택에 책임지지 못하던 머저리였다.

그런 나를 사랑해준 너였기에, 나는 지금 살아있고 움직인다.

네가 날 사랑해줘서 다행일 따름이다.

사람에 비하면 한참 짧은 네 삶을 내가 책임지고 보호할 수 있게 해 줘서 네게 진심으로 고맙다.


이제는 네가 없는 시간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네가 없을 시간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내 삶에 녹아든 너는 너무나 사랑스럽기에 내 평생을 너와 보내길 바란다.

새벽녘 잠 못 들고 창가에 앉아 외로이 보내는 시간, 간혹 너는 자다가 일어나서 내게로 와 안긴다.

그리고 고요한 새벽의 숨을 나눈.


네 시선이 닿은 곳에 내 시선도 닿았을까?


절대 닿지 않았다.

네가 안긴 순간부터 나의 시선은 네게만 향했으니, 네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나는 알리가 없다.




당연, 모든 우울증 환자가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고 해서 나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나는 반려동물과 함께 살 마음의 준비와 여유가 없었던 거다.

어느 순간부터 백설이는 과잉 애정으로 행동거지가 참 엉망이다.

그 순둥하던 애가 이제는 성질도 부리고 떼도 쓰며 말을 안 듣는다.

그래도 나는 백설이의 모든 행동이 웃기고 귀여울 따름이다.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어떤 행동을 해도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진심으로 사랑하기까지 나는 퍽 혹독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반려동물을 키우게 되면 누구든 마주할 수 있는 과정일 것이다.

그중 누군가는 포기를 하고 반려동물을 유기할 것이고 누군가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들 자신은 후자일 거라 생각하겠지만, 나 역시 함께 하기 전에는 그러했다.

백설이가 있기에 행복하지만, 다시 겪을 일은 못 된다.


특히 강아지는 보호자와 굉장히 공감할 줄 아는 존재이면서 굉장히 의존적인 동물이다.

백설이는 내가 놀라면 같이 놀라고, 하품하면 따라서 하품하고, 내가 울면 핥아주고, 내가 아프다고 해도 핥아주고, 장난으로 가족 한 명을 때리면 때리지 말라고 짖으며 화를 낸다.

놀랄 정도로 공감 능력이 뛰어나지만, 허리가 휠 정도로 해줘야 하는 게 많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모든 것에 의지를 넘어 의존하고 도를 넘어 기대하고 바라며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닌다.


내 취미에도 제약이 생기고 취향도 바꿔야만 한다.


강아지를 키우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모든 일에 앞서 강아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삶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소한 일부터 중대한 일까지 내 삶을 쥐고 마구 흔들어댄다.


강아지만이 아니라 모든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이 그럴 것이다.

괜히 ‘반려’라는 단어가 붙은 게 아니니 말이다.

하물며 ‘애인’만 사귀어도 생기는 게 제약이다.

‘반려자(배우자)’를 맞이하면, 제약은 더 커진다.

그러니 ‘반려동물’과 함께하면, 당연히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모든 제약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지 신중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반려동물은 오로지 내 선택과 의지로, 더 좋은 반려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막아선 후, 평생을 약속한 사이임으로 파양하거나 유기할 수 없다.

이전 02화 우울증 집사와 강아지의 엉망진창 동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