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기세척기에 가지런히 그릇을 정리하고 쪼갠 세제 반 알을 넣었다. 표준 모드에 안심 헹굼과 살균세척까지 더해주니 디스플레이에 2:09라고 출력된다. 문을 닫음과 동시에 저음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힘차게 물이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백색 소음보다는 조금 더 데시벨이 높은 그릇이 씻어지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어지러운 내 마음도 고온의 물로 세척되는 기분이 든다. 두 시간 후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뜨거운 스팀이 올라올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릇에 조금 남아있던 물기도 말끔하게 마를 테다. 내 마음도 고온 건조하고 싶은 아침이다. 한 여름 뙤약볕에 눕혀놓고 바짝 말리고 싶다. 영하로 날씨가 내려가서 그런가 가슴속 어딘가가 축축하다.
캡슐이 떨어졌다. 사이트를 둘러보고 핫딜을 찾아야 하는데 귀찮다. 커피 머신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물에서 번지는 고소한 커피 향이 그립니다. 아쉬운 대로 도자기 표면이 두터운 머그잔을 골라 따뜻한 물로 데워줬다. 검은 포장지에 빨간색 줄이 그어진 익숙한 인스턴트커피 한 봉을 뜯어 잔에 쏟았다. 정수기에 100도 온수를 맞추고 반 컵 추출을 했다. 30초 만에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과 함께 커피 한 잔을 손에 쥐었다.
'그래, 언제부터 내가 캡슐 커피를 먹었어. 이것도 충분히 좋아.'
노트북을 켜니 브런치 화면이 뜬다. 더하기 탭을 눌러 유튜브를 눌러주고 caffee라고 검색했다. 재즈가 한가득 나온다. 특히 크라스마스 아침 재즈가 눈에 띈다. 그래, 오늘이 12월의 첫 아침이었지. 설렌다. 산타 삼촌이 올해는 내게 올 것만 같다. 벌써 할아버지가 삼촌뻘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친구 산타가 되려나. 머리 희끗한 나를 상상해본다. 예쁠 것 같다.
하얀 머리에 안경을 끼고 회색 앙고라 숄을 두른 채 흔들의자에서 무릎에는 책을 올려놓고 한 손에는 노란 커피 잔을 들고 있다. 부지런히 움직여 반죽한 덩어리를 오븐에 넣고 적당한 온도로 맞춰줬더니 버터향이 집안을 가득 메운다. 그녀는 행복해 보인다.
살아 있는 중에 가장 젊은 날인 오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가 기다리는 그녀의 얼굴에는 깊게 파인 보조개가 반짝 빛나리라.
독서 음악, 커피 한 잔이 주는 가을의 여유, 오늘의 텐션, 적당히 포근한 방구석 재즈, 목요일 아침 재즈 등 다양한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뭘로 선택해 줄까 고민하다가 스타벅스 매장음악(광고 없음)을 클릭했다. 인스턴트커피가 오천 원이 되는 순간이다. 흡족하다. 마음에 생기가 돈다. 이만하면 충분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