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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2025년에도 소확행이 유행할 전망입니다.

by 오제명 Jan 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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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성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좌전굴 검사(앉아 윗몸 굽히기)라는 게 있다. 내 최고 기록은 7cm. 고교시절 체력장에서 아무리 용을 써도 발끝에 손끝을 보낼 수가 없어 버둥거리고 있는데 체육선생님이 발로 등을 밟아 준 덕분에 겨우 세운 기록이다. 폭력에 가까운 조력이었지만 그때는 뭐 다들. 그 후로 이십 년도 넘게 흐른 지금. 나름 꾸준히 달리고 있지만 여전히 뒤뚱뒤뚱. 뻣뻣한 몸은 더더욱 경직되어만 갔다. 원래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굳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머리도. 골반도.

요즘 유튜브에는 소방공무원 시험 만점인 25.8cm를 쉽게 쉽게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앉아 윗몸 굽히기를 잘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좌식생활로 굳어져 짧아진 후면근육, 그중에서도 햄스트링 근육을 늘려주면 되는데 결국은 스트레칭을 꾸준히 해주면 된다. 정보의 바닷속에서는 무언가를 몰라서 못하기보다 안 해서 문제인 경우들이 많다. 유튜브 속 그들은 참 즐겁게들 하는데 체력장을 준비할 예정이 없는 나에는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보다 바닥에 메트를 깔고 앉는 게 백배는 어렵다. 좌전굴 따위 포기하고 뻣뻣하게 살 운명을 이미 받아들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영상은 쉽다고 말하지만 세상엔 저절로 되는 비법은 없다]

어제저녁 침대 위에서 앉은 채로 무심히 허리를 굽히는데 발바닥이 손에 잡히는 게 아닌가. 전날만 해도 한 뼘이나 모자라서 죄 없는 몸뚱아리를 비웃고 잠들었었는데, 혹시나 자세가 이상했나 싶어 두 발을 모으고 두 손을 같이 뻗는데도 발가락이 잡힌다. 세상에!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아니 그보다 이게 뭐라고. 남들은 평생 잘만 해왔던 앉아 윗몸 굽히기가 이렇게나 즐거울 일인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즐거움에 웃음이 실실 흘러나온다. 괜히 스트레칭도 좀 더 해보고 대각선으로도 숙여서 발을 건드려 본다. 신이 나서 짝지에게 자랑도 했다. 유튜브 영상 속 출연자들이 즐거워 보였던 게 이런 까닭이었을까. 몸이 내 맘대로 된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다니.

서은국 교수는 그의 저서 '행복의 기원'을 통해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움직이는 것은 살아가는 것에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자 살아있음의 증명. 그러니 움직임의 범위가 넓어진 것은 당연히 기쁨이겠구나. 다리 찢기를 올해의 작은 도전으로 삼는 것도 멋질 것 같은데? 낮에 헬스장에서 깔짝 캐틀벨스윙을 했고, 그 덕으로 햄스트링이 늘어나 잠시 유연해진 것뿐일 텐데 마음은 벌써 올드보이의 유지태.

 교수님은 같은 책에서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라고도 말했다. 모든 행복은 아이스크림이 녹듯이 사라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계속해서 찾아 맛보는 삶이 더 행복한 삶이라고. 월급쟁이 형편에 무한정 배스킨라빈스를 사 먹긴 부담스러우니, 먹쇠바라도 자주 찾아먹도록 애써야겠다.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달콤한 일들을 찾아다니는 삶. 2025년에도 다시 소확행이 유행할지도 모르겠다. 갈수록 정신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행복이 더 자주 필요할 거니.

[하루키 박물관에서 본 90년대 버전 문학사상사의 책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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