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을 만나기로 했다. 버스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고민하기에 계절이 바뀌는 즈음은 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고 살짝 비밀처럼 알려주었다.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그가 오는 길에 보았던 가을 풍경이 궁금했던 것이고, 그는 오는 길 내내 다음 주 미팅에 대해 생각하며 온 것이다. 나는 계절에 대해 날씨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는 다음 주 프레젠테이션 이야기를 했다. 어긋났다. 버스를 타고 오라고 했던 내 마음이 무안해졌다. 버스를 타고 있던 그는 살아있었던 것인가, 죽어있었던 것인가. 그는 왜 오늘 지금 여기가 아닌 다음 주를 살고 있는가. 자기 생각에 풍덩 빠져서 몽유병 환자처럼 살아가는 어르니들에게 작은 사람들을 소개해줘야겠다. 혹시 유치원 교실에 가보신 적이 있는지? 생생한 수업 풍경을 한번 그려보자.
6살 꽃들반 수업이 한창. 꽃들이 모여있는 '꽃들반'이라니 이름 한번 기가 막힌다. 오늘의 주제는 '가을'. 10여 명의 꼬마 천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선생님이 펼쳐 놓은 책을 바라보고 있다. 선생님이 질문한다. '꽃들, 오늘은 가을에 대해서 나눠 볼 거예요. 가을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 있나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엉덩이를 들썩이면서 있는 힘껏 손을 든다.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간절한 눈빛으로 선생님을 향해 손을 높이높이 흔든다. 개구쟁이들은 발딱 일어나 앞차기하듯이 발을 들어 올리기도 한다. '가을'에 대해 할 말이 이렇게나 많다니 놀랍기도 하지. 정답을 알아서 손 든 녀석은 한 명도 없을 거다. 그냥 손드는 것이 마냥 좋은 아이들. 지금 내 마음속 이야기를 마음껏 이야기하고 싶은 아이들. 가을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할머니네 집, 형아, 똥, 별, 나무, 무지개... 온갖 것들이 나온다. 그 모든 것이 정답이다.
지인이 유치원 선생님으로 일했을 때, 가끔씩 자기 반 풍경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서 보내준 적이 있다. 나는 볼 때마다 작은 사람들에게 반해버리곤 했다. 지금 여기에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들썩이는 에너지에 내 가슴이 울렁울렁한다. 로버트 풀검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관한 모든 것을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당신은 어떤가? 6살 유치원생 꽃들처럼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가? 생생하게 오늘을 살고 있는가?
작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모습을 보면서, 매 순간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건지 사유해본다.
삶을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누군가 부르면 네, 하고 응답하는 것.(이왕이면 '도레미파솔' 중에서 '솔' 정도의 높은음으로 쌩쌩하게 네에~~~~ 하는 것! ) 지금의 내 가슴을 느끼고 내 앞에 존재의 눈을 바라보고 판단 없이 그저 듣는 것. 그의 말이 아닌 눈빛, 표정, 에너지를 느끼며 그와 깊이 연결되는 것. 매 순간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서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끼는 것. 그러다 보면 알게 된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 이 단순한 진리가 전부라는 것을. 그때 비로소 보고 있지만 보지 못했던 '가을'이 순식간에 내 앞에 펼쳐진다. 재잘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바람 속에 담긴 짙은 가을 향내가 코끝을 스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당신, 지금 이 순간 내 삶의 목적인 당신이 섬세하게 느껴지고 만져진다.
일상의 매 순간이 삶의 전부라는 것이 알아지는 오늘, '자연'이라는 이름의 예술가가 펼쳐낸 최고의 걸작, 2022년 이 가을을 당신에게 선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