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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편,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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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중효 Aug 31. 2022

흘러가는 사람은 꽃이다

패터슨 (2017)


 하상욱의 첫 시집 제목은 서울시였다. 잠시라도 서울에 살아 본 사람은 그의 짧은 시와 서울의 모습이 얼마나 닮았는지 안다. 책 표지엔 지하철 노선도가 그려져 있는데 지금도 서울의 순간은 빠르게 빠르게 다음 역을 향해 간다. 지하철 한 칸에서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그래서 그렇게 인기가 많았을까. 아무튼 시는 시인이 사는 공간을 닮는 것 같다. 영화의 주인공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은 패터슨이라는 동네에 산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폭포가 있는 곳, 느리게 살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곳. 아마 패터슨의 내면은 패터슨과 닮았을 것이다. 서울시든 패터슨이든 시인이 사는 곳에 시도 산다.


 흘러감(flow)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남자는 우주선에서 그동안 가족들이 보낸 영상을 본다. 어린 딸은 어른이 되어 남자와 같은 나이가 되었다. 우주선에선 몇 달이 지났지만 지구에선 몇십 년이 흘러버린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이다. 공간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니 신선놀음을 구경하다 도낏자루가 바싹 썩어버린 나무꾼 이야기처럼 들린다. 현대 물리학은 이런 일이 실제로 가능함을 밝혀내고 있다. 중력은 시간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중력이 다른 공간은 시간의 흐름도 다르다. 우리는 시간이 흘러간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다만 공간이 쉬지 않고 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말하면 패터슨은 어떤 남자의 평범한 일주일을 담은 영화다. 남자는 공책 한 권을 들고 다니는데 관찰한 것을 거의 그대로 적는다. 그리고 공책에 적힌 글씨는 화면에 그대로 다시 적힌다. <패터슨>은 이런 식으로 시와 영화의 경계를 허문다. 아마도 짐 자무쉬 감독은 관객에게 시를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 것 같다. 시인을 통과한 순간은 한 문장으로 압축되고, 순간이 모여 삶이 되며, 문장이 모여 시가 된다. 영화가 끝나도 패터슨의 일주일은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패터슨은 여전히 ‘일주일이라는 공간’에 자신의 시를 적을 것이다. 무얼 만드는 데에 일주일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신은 일주일 동안 세상을 만들었다는데, '시 한 편쯤이야'.


 일과가 끝나고 개와 함께 산책을 하고 단골 펍에 들러 맥주를 마시는 일은 패터슨의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다. 매번 같은 일만 일어나진 않는다. 여자에게 거절당한 남자가 난동을 피우는 특별한 사건도 가끔씩 일어난다. 버스 안에서도 펍에서도 반복되는 것에는 운율이 생긴다. 시에서 같은 문장이 자꾸만 반복되는 이유는 삶이 역시 반복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이란 운율은 인생을 멈추지 않고 흐르게 만든다. 반복하자면, 반복되는 것에는 운율이 생긴다.


 찰나라는 말이 있다. 순간을 뜻하는 불교용어인데 불교 교리에 따르면 삶 전체는 찰나마다 생겼다가 멸하고 다시 멸하고 생겨남을 반복하며 나아간다. 흔히 삶을 꽃에 빗대어 말한다. 그것은 봄에 잠시 피고 지는 꽃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그 짧은 순간 안에도 삶 전체가 담겨 있다 시인은 흘러가는 순간을, 삶을 수집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시인은 곧 흘러가는 사람(flow-er)이다.


 패터슨은 낙심한 채 폭포 앞 벤치에 앉는다.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해주려는 듯 일본에서 온 관광객이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때로는 빈 페이지가 더 많은 가능성을 담을 수 있죠.” 그는 미리 준비한 것처럼 지금 패터슨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을 준다. 삶에서도 이런 우연이 종종 일어난다. 마음을 비울 때 기적처럼 말이다. 어차피 잠시 피고 지는 것이 삶이라면. 그저 평범하게 걱정 없이 흘러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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