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푸치노 Jul 30. 2022

중년의 위기_참을 수 없는 삶의 따분함

Featuring, 영화 "어디 갔어, 버나뎃"

시애틀에 사는 버나뎃은 사춘기 딸을 키우는 중년 여성이다. 사실 그녀는 최연소 '맥아더상'을 수상한 건축계의 촉망받는 젊은 천재였다. 그러나, 어떤 사건에 휘말리며 그녀의 본거지였던 LA를 떠나 남편의 직장이 있는 시애틀에서 살고 있다. 네 번의 유산을 거치며 어렵게 딸을 낳았지만 딸이 건강하지 못해 아이에게 올인하며 20년간을 살아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중역인 남편은 바빠서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별로 없다. 대신 딸과 버나뎃은 세상 둘도 없이 사이좋은 친구이다. 


비 오는 어느 날, 딸과 함께 차 안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와중, 버나뎃은 갑자기 뜨거운 눈물을 쏟는다.

"엄마는 가끔 힘들다는 것을 알아줘" 버나뎃이 딸에게 말한다.

"뭐가 그리 힘든데요?" 딸은 묻는다.

"인생의 따분함"

엄마가 우는 이유를 사춘기 중학생 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나는 화면 속으로 빨려 들 듯 그녀의 마음이 온전히 이해되었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고, 남편은 일이 많긴 하지만 다정하고 괜찮은 사람이다. 중학생 딸도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했고 똑똑하게 자신의 인생을 잘 개척해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그녀의 삶에는 문제 될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삶은 그녀에게 참을 수 없이 무료하다. 모든 것이 귀찮고 따분하며, 습관적인 불면증에 시달린다. 누군가는 배부른 고민이라고 평가절하할지 모르겠지만, 딸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갑자기 울음을 쏟을 만큼 그녀의 마음은 허하다.


중년의 삶은 도처에 따분함의 늪에 노출되어 있다. 애들은 성장해서 이제 부모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를 쓰고 달성해야 할 목표도 딱히 없다. 무얼 먹어도 그다지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고, 더 이상 새로운 것도 별로 없고,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저 시큰둥하다. 이제 무얼 위해 살아야 하나, 가끔씩 안에서 치고 일어나는 물음 앞에 갑자기 마음속의 둑이 무너져 버리곤 한다.


영화 속에서 버나뎃은 그동안 그녀가 놓고 살았던 일을 다시 되찾고서야 잃어버렸던 삶의 생기를 되찾는다. 남극기지 건축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접하고 초점을 잃었던 그녀의 눈은 다시 반짝이게 된다. 하지만, 실제 우리들의 삶의 문제는 영화 속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다소 늦은 나이에 아들 하나를 낳고, 그 아들에 푹 빠져서 한동안을 정신없이 살았다. 그런데,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은 이제 엄마를 찾지 않는다. 아들방에 들르면 엄마를 쫓아내기 바쁘다. 25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더 이상 회사 내에서 성장의 사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갖고 있던 직책도 작년에 벗어던졌다. 그런 와중에 갱년기가 찾아왔다. 갱년기 때문인지 몸무게는 연일 생애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밤에 쉽게 잠들기도 어렵고, 어렵게 잠이 들어도 수시로 잠에서 깬다. 딱히 무얼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이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어느 날 걸어서 퇴근하는 와중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삶이 참을 수 없이 따분하고 무료하게 느껴졌다.


영화 속 그녀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서 삶의 생기를 되찾았는데, 나는 무얼 통해 삶의 생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내가 찾은 해법은 일단은 몸을 많이 움직여보기로 했다. 기상 시간을 한 시간 앞당겨 한 시간 동안 걷고 30층 높이의 아파트 계단을 올랐다. 주말이면 집에서 한두 시간 거리의 호수들을 찾아 한 바퀴씩 걷거나 집 근처의 둘레길을 걸었다. 그렇게 몸을 움직인 지 한 달쯤 되었다.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15,000보씩을 걸었다. 


걷다 보니 중년의 삶을 따분하다고 생각할게 아니라 안정감과 평화로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불평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고 관점이 변해갔다. 갱년기라 힘들다고, 이제 먹으면 먹는 대로 찌는 몸이 되었다고 불평을 늘어놓아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달라진 몸의 상황에 맞게 나도 달라져야 한다. 중년의 나는 나이에 맞게 새로 태어나야 한다. 


여름휴가로 찾은 제주도에서도 비자림, 거문오름, 사려니 숲길, 성산일출봉 등 걷고 오르는 여정으로만 채웠다. 사춘기 아들은 이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라며 걷는 내내 불평을 쏟아낸다. 버나뎃의 딸처럼, 아들도 엄마가 걷기에 몰두하는 이유를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게다. 어쩔 수 없다. 아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엄마는 오늘도 살기 위해 걷는다. 

작가의 이전글 나이 많은 엄마라도 괜찮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