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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휘 Aug 03. 2022

지하철에서 구찌 지갑을 주웠다면 당신의 선택은?

2021년 12월 20일 월요일 날씨 맑음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와 정신없이 떠들고 놀다 보니 어느새 해는 저물었다. 휴대폰 배터리는 살려달라고 목놓아 외치고 있었지만 마땅히 충전할 곳이 없어 절약 모드라는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응급처치에도 실패하여 휴대폰은 잠시 생을 마감하였다. 임종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의 탄식이 입 밖으로 나왔지만 이 또한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왔다. 많은 생각에 잠겨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던 순간 사건이 일어났다. 만취한 20대 남성이 술기운에 잠시 잠이 들었다가 본인의 정류장에 눈이 떠져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이런 경험은 한 번쯤 경험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귀소본능.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알람이 되어 깨워주는 신비한 그 무언가. 여튼 그 남성은 자신의 지갑이 앉은자리에 떨어진 채 문을 나가고 있었다. 그 즉시 바로 주인에게 건네주려 문에 지갑을 던지려 했지만 야속하게 지하철 문은 닫힌 후였다. 내가 야구가 취미였다면 던져줄 수 있었던 확률은 얼마나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뒤로한 채  그 남성을 바라보았다. 그 남성은 고단함으로 가득 찬 채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맡기며 주머니를 뒤척거리며 지갑을 찾는 모습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갑을 흔들며 걱정하지 말라는 몸짓뿐이었지만 그 남자는 지금의 상황 파악을 하기 바빠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지갑을 자세히 보지 않아도 큼지막하게 구찌 마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삼성 페이 때문에 지갑을 잘 들고 다니지는 않지만 코트 안쪽에 있는 나의 지갑과 비교가 되었다. 지갑에 흠집 하나 없이 새 거였다. 마치 첫 월급을 주고 산 지갑이라는 느낌을 받게 하는 지갑의 광택이었다. 찰나의 고민을 했지만 역시나 처음 마음가짐대로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검은색 구찌 지갑의 안쪽에는 신분증과 공무원증이 있었다. 나이는 00년생이고 군대 간부라는 정보를 습득하였다. 군대 위병소에서 자주 보던 군인 공무원증을 드는 순간 마음 한켠에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 찼다. 이게 바로 군대에서 배운 전우애라는 것인가.


 휴대폰이 없어 신고도 못하여 주변 사람에게 나의 상황과 방금 일어난 상황을 말을 해야 하는데 복잡한 절차라 도움을 청하는 내가 먼저 말과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완벽하게 정리하여도 상황이 완벽하지 않기에 적당히 정리하였다. 주변에 있는 한 여성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예상대로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처음 보는 남자가 전화를 빌려달라 하지 않나, 구찌 지갑을 들고 있지 않나, 요구만 가득한 채 자신에게 득이 될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진작에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도 인류애는 죽지 않았다. 전화를 빌려 또 상황을 설명하고 반복 업무의 연장이다. 역무원은 그다음 역에서 역무원 직원은 그다음 역에서 분실물을 받아갔다. 나의 임무는 끝이 났지만 그 친구가 제대로 전달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지갑과 구찌 지갑을 놓고 하나만 선택하여 가져 가라 하면 구찌 지갑을 선택하겠지만 나는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나의 지갑을 선택할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한 친구와의 추억, 미안함, 말로 표현 못할 모든 것이 여기 있다. 그 친구가 보고 싶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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