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에 앞서 독자님들이 저를 알아야 글의 이해가 보다 좋을 거 같아 첫 글은 저를 소개하는 글로 정했습니다. 드라마 미생 대사 중 " 너를 사고 싶게 너를 팔아봐" 대사처럼 독자님들이 저의 글을 읽고 싶게 한번 저를 팔아보겠습니다.
2015년 : 성심보건고등학교에서 부산가톨릭대학교 치기공학과 특성화고 전형으로 합격, 간호조무사, 병원코디네이터 취득
2016년 : 부산가톨릭대학교 치기공학과 입학, 8월 군 입대
2017년 : 군대
2018년 : 전역 후 비뇨기과, 피부과(수술 및 외래 업무), 1학년 2학기 복학
2019년 : 부산가톨릭대학교 치기공학과 2학년 학년 대표, 부산가톨릭대학교 예비군대대 국가근로, 부산 서면 성형외과 수술실(절개, 매몰, 앞 트임, 눈매교정, 지방 재배치)
2020년 : 부산가톨릭대학교 치기공학과 학생회장, 부산가톨릭대학교 예비군대대 국가근로, 한국사 자격증, 운전면허 취득
2021년 : 부산가톨릭대학교 총학생회 대외협력국장, 부산가톨릭대학교 예비군대대 국가근로, 독서지도사 1급 취득, 치과기공사 취득 예정
마법의 주문
특성화고등학교에서 4년제 대학교를 가는 것은 드문 경우이다. 혹여나 합격을 하여도 적응을 못해서 자퇴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대부분 고등학교 선배들은 전문대학교를 진학하였지만 결과는 암담했다. 공부 잘하던 선배들이 전문대조차 적응을 못하는데 "과연 내가 4년제에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내 자신에 대한 의문이 많은 대학교 새내기였다. 운이 좋아서 단 한 명 뽑는 특성화고 전형에 덜컥 합격을 하였지만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들과 경쟁을 한다는 것은 부담이었다. 그 부담감 중 하나는 주기율표였다.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이미 주기율표와 친근한 상태였고 교수님조차 당연히 알 거라 생각하고 수업을 하였다. 이 정도 핸디캡은 진작에 각오했다. 그 당시 나는 잃을 게 없는 밑바닥이라 생각하였고 현재도 이 생각은 변치않고 유효하다. 무서울 게 없는 무대포 정신으로 이과 출신 친구들에게 모르는 것은 즉시 질문을 하여 끝없이 괴롭혔다. 주기율표라 함은 화학적 원소를 (원자핵 속에 들어있는 양성자수인) 원자 번호와, 전자배열, 그리고 화학적 특성에 따라 그림으로 배열한 것이다. 아직도 주기율표를 줄줄 말할 정도로 기억에 남는다. 수헬리벨붕탄질산 플네나마 알규인황 염화크카 마치 해리포터 마법 주문처럼 지금도 막힘없이 나온다. 나의 마법 주문과 노력을 바탕으로 1학기 화학의 성적을 보는 순간 나를 옥죄어오던 부담감은 날아가 없어지고 그 빈자리는 자신감으로 메꾸어지며 20살의 반이 지났다. 이때의 경험이 아니었으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20살의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대학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발버둥이라 짐작한다.
2016년은 군대에 가고 싶어도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는 게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하던 시기였다. 대학 선배, 동기들은 한 번씩 떨어진 경험이 있어 큰 기대는 없었다. 당연히 떨어질 거라 생각한 군대를 한 번만에 붙었다. 매우 당혹스러웠다. 한 번만에 붙은 이유인즉슨 고등학교 때 취득한 간호조무사 자격증 덕분이다. 입대를 미룰까라는 생각은 나에게는 해당 사항 없었다.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고 싶지도 않고 미래의 자녀가 "아빠 군대 어디 나왔어?"라는 질문에 멈칫하는 내 자신을 꼴 보기 싫었다. 지금도 이 생각은 유효해 공익가는 친구들 보고 항상 이 예시를 들어 현역을 추천한다.
군대 말년 병장이 되면 적응한다고 바쁘게 달려온 내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가 생긴다. 이 여유는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할까"라는 고민과 연결된다. 대학생의 경우 복학이라는 나름 안전한 울타리가 있어 걱정을 덜한다. 반면 대학생이 아닌 사람들은 더욱 고민이 깊어지며 하루를 보낸다. 고민의 결말이 나오기 전 죽어라 시간이 안 가던 날은 이미 사라지고 전역날이 야속하게 다가온다.
보통 전역을 한 후 여행을 많이 간다. 청춘에 대한 보상심리로 휴식을 택한다. 허나 휴식을 핑계로 허송세월을 많이 보낸 전역한 선임을 많이 봤다. 나는 장기적, 단기적인 목표 없이 사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목표 없는 삶은 시간 낭비이다. 물론 한동안 목표 없는 삶으로 인해 휴식을 충분히 한 후 목표를 잡으면 좋다. 허나 나는 역마살이 있어 내 자신이 그런다면 용납 못한다. 나의 경우는 전역한 날, 다음날 그다음 날 집에 있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게 죄악이라 느껴 바로 일자리를 찾아 구인구직사이트를 들어갔다. 마침 집 근처 비뇨기과, 피부과에서 간호조무사가 필요하여 그 즉시 바로 면접을 보러 갔고 합격을 하여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을 하고 싶어서 일은 한 것은 아니다. 삼 형제를 키우는 부모님에게 전역 후 용돈을 받는 행위는 나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이자 그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도였다. 현재까지 대학교 등록금, 용돈 등 집에서 외부적인 지원을 안받고 있다. 부모님의 지원받는것은 나쁜것도 아닌 좋은것도 아닌 그저 그런것에 불과하다. 내가 특이한 사람이고 이것으로 인해 삶이 보다 당당해지기 때문에 그런것이니 오해없길 바란다.
대학교 복학 후 좋은 사람들을 만나 2학년 학년 대표, 학생회장, 총학생회까지 쉴세 없이 학교를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방학 때마다 유명한 성형외과 수술방도 경험했고 현재까지도 하고 있는 국가근로까지 감사한 일들이 무수하게 많다. 인복과 일복이 많아 현재 이 글을 쓰는 거까지 천운이 따라 줬다. 살면서 운을 기대한 적은 없지만 막연하게 앞으로 있을 운을 기대하는 것보단 나의 다양한 경험을 양분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