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통학러이다. 통학러란 대학교를 대중교통, 자차 등으로 통학하는 사람을 뜻한다. 통학러의 경우 크게 버스와 지하철 두 분류로 나뉜다. 버스파와 지하철파의 대립은 매년 이루어지고 있다.
버스파 : "창 밖을 바라보며 노래를 듣는 것이 좋다"
지하철파 : "빠른 게 좋다"
나는 지하철 파이다. 지하철파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차멀미가 있다. 차멀미를 있는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둘째. 창 밖을 보는 낭만보다 시간이 더 소중하다. 아침 기상부터 등교까지 매일이 전쟁이다. 1분 1초라도 더 자고 싶은데 얼어 죽을 낭만이라 생각한다. 그러하여 난 낭만보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셋째.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출근하는 직장인, 등교하는 학생들, 정년퇴직하여 시간을 보내는 중장년층, 캐리어를 끌고 부산에 놀러 온 피서객을 보면 어떤 착장이 유행인지, 휴대폰으로 무엇을 하는지 등 뉴스보다 빠르게 세상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대학교로 등교하는 길은 다음과 같다. 사상역에서 서면역, 서면역에서 환승을 한 후 장전역에서 내린다. 총 소요시간은 40분이다. 환승을 놓치면 시간이 더 늘어난다. 버스의 경우 교통상황은 자연재해, 사고, 신호, 교통체증 등 변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물론 지하철도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다. 난 오늘도 높은 확률로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는 지하철의 손을 들어준다.
언젠가 40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는 내 자신을 목격하게 되었다. 등교, 하교 순수 지하철 타는 시간만 80분이다. 그 당시 유시민 작가님의 "항소이유서"를 본 직후 나의 무지를 깨달아 생전 처음으로 나의 의지를 가지고 책을 읽게 되었다. 이때까지는 독후감, 자기소개서, 과제 등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발췌해서 읽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손에서 책을 안 놓고 있다. 평소 누워서 유튜브 보는 40분은 안 아까워하면서 지하철 40분을 아까워하는 것은 명백히 모순이다. 모순 덕분에 네이버 책 블로그, 지금 브런치에 글을 적는 것까지 왔다. 나의 경험상 모순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지하철을 선호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2021년은 "주식의 해"라고 명명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년 상반기 주식시장은 사기만 해도 오른다는 말이 있을 정로도 장이 좋았다. 지하철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어 휴대폰을 보지 않아도 9시 정각을 알 수 있다. 정각 시간을 알려주는 것은 휴대폰, 시계가 아닌 사람들이다. 9시 정각이면 자신들이 보유한 종목이 급등하며 시작하는지, 폭락하며 시작하는지 보유종목의 양봉, 음봉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치 섯다의 뒷패를 보는 것처럼 도박을 하는 것이다. 주식은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 개인의 투자성향은 존중하지만 이 행위는 투자가 아니라 투기이다.
언젠가 좋아하는 지인들과 술을 먹은 후 지하철을 탄 적이 있다. 평소와 다름없이 에어팟 프로의 노이즈 캔슬로 귀를 닫고 좋아하는 책을 읽었다. 적당한 취기와 좋아하는 책이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당시 책의 글자에 눈으로 빨려 들어왔으며 적당한 취기로 인해 상상하는 능력이 배가 되는 효과를 맛 본적이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음주 책방"이라는 사업 아이템을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나. 사람의 생각은 거기서 거기이다. 서울대입구역에 먼저 오픈하신 분이 있었고 의외로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퇴근하고 독서로 치유하는 분, 단순 궁금증으로 방문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또한 요새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점층적으로 많아지고 있다. 괜스레 동질감을 느끼며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이유로 책을 읽는지 궁금하다. 이처럼 독서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난 글과 책이 주는 힘을 믿는 사람으로서 단언컨대 시간이 지날수록 글과 책은 더욱더 사랑받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난 오늘도 책 한 권을 들고 지하철을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