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유머의 힘!
1. 배가 벌써 건너편 강기슭에 닿았다. 옷감 짜듯 갈대가 촘촘히 들어차 내릴만한 땅이 보이질 않았다. 하인들이 서둘러 강가로 내려가서 갈대를 베어냈다. 배 위에 깔았던 자리를 서둘러 걷어 강가에 다시 깔고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갈대 뿌리가 창날처럼 뾰족 솟아 날카롭고, 시커먼 개흙이 질퍽거렸다. 정사와 그 아래 수행자들은 다들 내려설 곳이 없어서 갈대숲 속에 우두커니 있었다. 먼저 건너간 사람들과 말은 어디 있는지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모른다고 대답했다. 다시 방물은 어디에 가져다 놓았는지 물었더니, 역시 모른다고 대답하면서 멀리 구룡정 아래의 모래톱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일행인 사람들과 말들은 아직 태반도 건너오지 못했습니다. 저기 개미처럼 모여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멀리 의주 쪽을 바라보았다. 한 조각 외로운 성곽이 마치 한 필의 비단을 햇볕에 널어놓은 듯했다. 성문이 바늘구멍처럼 뚫려있었는데 그 사이로 햇살이 새어 나와 마치 새벽녘에 빛나는 샛별처럼 보였다.
船已泊岸, 蘆荻如織, 下不見地。 下隷輩爭下岸折蘆荻, 忙掇船上茵席, 欲爲鋪設。 而蘆根如戟, 黑土泥濃。自正使以下, 茫然露立於蘆荻中矣。 問, 「人馬先渡者何去。』 左右對曰, 「不知。』 又問, 「方物安在。』 又對曰, 「不知。』 遙指九龍亭沙岸曰 「一行人馬太半未濟。 彼蟻屯者是也。』 遙望龍灣, 一片孤城, 如晒匹練, 城門如針孔。 漏出天光, 如一點晨星。
2. 마침 커다란 뗏목이 불어난 물살에 떠내려오고 있었다. 마두 시대가 멀리서 '웨이' 하며 소리쳤다. '웨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을 부르는 소리이다. '웨이'는 남을 높여서 부르는 중국 말이다. 한 사람이 뗏목에서 일어나서 시대의 말에 답하면서 물었다.
"당신들은 사신들이 가는 때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중국에 조공을 바치러 가는 것이요? 더운 날씨에 먼 길 간다고 고생이 많겠소."
시대가 다시 물었다.
"당신들은 어디 사는 백성들이요? 어디 가서 나무를 베어 오는 것이요?"라고 하니
그들이 대답했다.
“우리들은 모두 봉성鳳城에 사는데, 장백산長白山(백두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오는 것이요."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뗏목은 벌써 저 멀리 사라져 갔다.
有大筏乘漲而下, 時大遙呼曰, 「位。』 盖呼聲也, 位者, 尊稱也。 有一人起立應聲曰 「爾們的不時節, 緣何朝貢入大國, 暑天裏長途, 辛苦時大。』 又問, 「爾們的那地人民往何處砍木。』 答曰 「俺等俱鳳城居住, 往長白山砍來。』 說猶未了, 筏已杳然去矣。
3. 두 갈래로 흐르던 강물이 합쳐져 강물이 불어나 강 가운데에 섬 하나가 만들어졌다. 먼저 건너간 사람들과 말들이 건너편 강기슭으로 오해하여 그곳에 잘못 내렸다. 우리가 있던 곳과 5 리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다시 타고 건너갈 수 있는 배가 없었다. 그래서 사공에게 다그쳐 빨리 배 두 척으로 사람과 말을 건너오게 하라고 했지만, 사공들은 불어난 강물을 거슬러 배로 저어 올라가야 해서 아마 오늘 안으로는 도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대답했다.
時兩江合漲, 而中間爲孤島。 人馬先濟者, 誤爲下此, 相距雖五里, 無船復渡。 遂嚴勅兩船篙工, 速濟人馬, 則對以逆漲行船, 非時日可及。
4. 사신들은 모두 조바심이 나서 화를 냈다. 압록강의 배를 책임지고 있는 용만의 군가요軍校(장교)를 처벌하려고 했지만, 군뢰軍牢(군대에서 죄인을 다루는 병졸)가 보이질 않았다. 알고 보니 군뢰도 먼저 건너가다가 강 중간에 생긴 섬에 잘못 내린 것이었다. 부사의 비장 이서구李瑞龜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부방副房(부사가 묵는 방이나 처소) 마두에게 소리치며 용만의 군교를 잡아들이라고 했지만 엎어 놓고 볼기를 칠 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볼기를 반쯤 벗기고 말채찍으로 네댓 번을 때린 뒤 좋은 방법을 생각하여 빨리 거행하라고 호령했다.
使臣皆躁怒, 欲治領船灣校, 而無軍牢。 軍牢亦先渡, 誤下於中島故耳。 副房裨將李瑞龜, 不勝忿憤, 叱副旁馬頭, 捽入灣校。 而無可覆之地, 於是, 半開其臀, 以馬鞭略扣四五。 喝令拿出, 斯速擧行。
5. 용만의 군교가 한 손으로 전립을 쓰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바지춤을 움켜쥔 채 허리를 굽히면서 연신 '네, 네' 하고 대답했다. 군교는 두 배의 사공들을 배에서 쫓아내어 물에 들어서서 배를 끌어당기라고 시켰다. 하지만 물살이 하도 거세고 빨라서 한 치를 올라가면 한 자는 떠밀려 내려왔다. 아무리 호통을 쳐본 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灣校一手著笠, 一手係袴, 連聲唱喏。 驅下兩船篙工, 入水曳船, 而水勢悍急, 進寸退尺, 威令無所施少焉。
6. 잠시 뒤에 배 한 척이 강기슭을 따라 빠르게 내려왔다. 군뢰가 서장관의 가마꾼과 말을 이끌고 온 것이었다. 장복이 창대를 보고 큰 소리로 말했다.
"너도 왔구나."
아마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라는 말 같았다.
장복과 창대 두 사람에게 행장을 살펴보니 물건들은 다 별 탈이 없었다. 다만 비장과 역관이 타던 말 몇 마리는 왔고, 몇 마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사가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군뢰가 한 쌍의 말을 타고 나팔 불면서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다른 말 한 쌍은 앞에서 끌면서 갈대숲을 헤치고 나아갔다.
나는 말 위에서 차고 있던 작은 칼을 뽑아 갈대 하나를 베었다. 껍질이 단단하고 속은 두꺼워서 화살은 만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붓대를 만들기에는 딱 좋았다. 이때 놀란 사슴 한 마리가 갈대를 뛰어 넘어갔다. 마치 보리밭고랑 사이를 날아가는 새처럼 빨랐다. 우리 일행 모두는 놀랐다.
一隻船沿岸飛下, 軍牢領三房轎馬而來。 張福呼昌大曰, 「汝亦來乎 葢幸之也。』 使兩漢點視行裝, 則俱得無恙矣。 裨譯所騎, 或來或否。 於是正使先發軍牢一雙騎而吹角引路。 一雙步而前導, 颼飀穿蘆荻而行。 余於馬上拔佩刀, 斬蘆一竿。 皮堅肉厚而不堪作箭, 只合筆管矣。 一鹿驚起, 超越蘆荻, 如麥際飛鳥, 一行皆驚。
7. 십 리를 가서 삼강三江에 이르렀다. 강물은 맑아 비단처럼 아름다웠다. 강 이름은 일명 '애라하愛剌河'"라고도 하는데, 어디에서 발원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압록강과는 서로 십여 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강물이 넘쳐흐르지 않는 것을 보아 서로 다른 곳에 발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가에는 배 두 척이 있었다. 배 모양은 우리나라의 놀잇배와 닮았지만, 배의 길이나 넓이는 모두 우리나라 배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배의 구조는 상당히 튼튼하고 꼼꼼하게 잘 만들었다. 배를 부리는 사람들은 모두 봉성 사람들이었는데, 여기서 사흘 동안이나 우리를 기다렸다고 했다. 양식이 다 떨어져 배가 고파서 참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行十里至三江。 江淸如練, 名愛刺河。 而不知何處發源, 與鴨綠江相去不過十里, 而獨無潦漲之意。 其各地發源可知矣。 有兩隻船, 類我國上游船, 而長廣皆不及。 制甚堅緻, 刺船者皆鳳城人。 待此三日, 糧盡告飢云。
8. 대체로 애라하 강은 양국 사람들 모두에게 왕래가 금지된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관이 불시에 대국에 가서 외교 문서를 전달하는 등 왕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청나라의 봉성장군鳳城將軍이 배를 배치해 둔 것이라고 했다.
배를 대는 곳이 몹시 질퍽질퍽했다. 나는 되놈(만주족) 한 사람을 불렸다.
"웨이”
아까 시대한테서 배운 말이었다. 그자가 흔쾌히 삿대를 내려놓고 다가왔다. 나는 얼른 몸을 날려 그의 등에 업혔다. 그는 흐흐 웃으면서 나를 배에 올려놓고 '후유' 하고 긴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흑선풍黑旋風”도 자신의 어미가 이토록 무거웠다면 아마도 기풍령沂風嶺을 업고 오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주부主簿 조명회趙明會가 이 말을 듣고 껄껄 웃었다. 내가 말했다.
“저 미련한 놈이 난리 중에 어미를 업고 피란을 다녔던 제나라의 효자 강혁江革은 몰라도 『수호지』에 나오는 이규李逵는 아는 모양이군."
조 주부가 말했다.
“저놈이 말속에는 여러 가지 숨은 뜻이 있습니다. 본래 그 말은 이규의 모친이 이렇게 무거웠다면, 비록 이규가 아무리 괴력怪力을 가진 자라도 모친을 업고 고개를 넘지 못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이규의 어미는 나중에 호랑이에게 잡아먹혔으니, 그 말의 속뜻은 이렇게 살찐 놈을 굶주린 호랑이에게 먹이로 주었다면 좋았겠다는 뜻입니다."
나는 크게 웃으면서 물었다.
"저놈이 말을 하면서 어찌 쉬이 이런 의미가 담긴 말을 한단 말이오?"
조 주부가 대답했다.
"이른바 눈을 뜨고도 고무래 정丁자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저런 놈들을 두고 하는 말이지요. 하지만 저런 이야기는 패관 기서稗官奇書에 자주 나오는 내용인데, 저런 놈들이 입에 늘 달고 사용하는 표현들이지요. 이른바 관을 중심으로 사용하는 관화官話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葢此河, 彼我不得往來之地。 而我國譯學及大國, 移咨不時, 有交關之事。 故鳳城將軍爲置船隻云, 船泊處甚沮洳。 余呼一胡曰,「位。』 葢俄者纔學于時大也。 其人欣然捨槳而來。 余騰身載其背, 其人笑嘻嘻入船。 出氣長息曰, 「黑旋風媽媽這樣沉挑時, 巴不得上了沂風嶺。』 趙主簿明會大笑。 余曰, 「彼鹵漢不知江革, 但知李逵。』 趙君曰 「所謂目不識丁。 正道此輩, 而稗官奇書。 皆其牙頰間常用例語。 所謂官話者是也”
연암 박지원은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고, 생각이 깊으면서도 유머가 넘친다. 연암 박지원은 오랜 세월 동안 ‘진지함’과 ‘사유의 깊이’를 지식인, 지성인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열하일기』속에는 유쾌하고 유머로 가득 차 있어서 재미있다. 그 웃음은 비웃음이 아니라, 함께 웃는 웃음이며, 세상과 삶을 관조하는 여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흑선풍 이야기 인용’이다. 연암은 진흙탕을 건너기 위해 처음 보는 중국인의 등에 업히는 다소 민망한 상황에 놓인다. 당시로선 사대부 신분으로서 체면을 구기는 일이지만,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인이 던진 한마디, “흑선풍의 어미가 이렇게 무거웠다면 기풍령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우스갯소리를 유쾌하게 받아들이며, 그 뜻을 음미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흑선풍’은 『수호전』의 인물 이규의 별명으로, 어머니를 업고 고개를 넘은 효자로 유명하다. 중국인의 말은 박지원 당신이 흑선풍의 어미만큼 무겁기 때문에, 아무리 이규라도 업고 고개를 넘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농담이다. 즉, 연암이 체중이 많이 나간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놀린 것이다. 심지어 흑선풍의 어머니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혔으니, 차라리 이처럼 살찐 사람을 호랑이 밥으로 주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농담을 한 것이다.
조명회가 이 말에 담긴 뜻을 해석하자 연암은 진지한 반응 대신, “저런 자가 어떻게 그런 뜻을 다 알았단 말인가?”라며 크게 웃는다. 이 웃음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다. 유머는 관계의 단절을 이어주고, 낯섦을 친밀함으로 전환하게 한다. 연암은 국경을 넘어 만난 이방인에게도 ‘웃음’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언어로 다가간다.
안대회는 「북학파 문인의 작품에 나타난 해학과 농담의 분석」 논문에서 북학파 문인들의 유머를 ‘일상의 정서’이자 ‘교유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유득공과 박제가가 서로를 땅딸보, 수염쟁이로 부르며 조롱 섞인 시문을 주고받듯, 연암도 자신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친한 사이란 내가 느끼는 대로 말하고 표현하고 농담하며 놀리더라도 받아주는 사이이다. 내가 조금 웃기는 행동을 하거나 모자라는 짓을 해도 너그럽게 봐주고 넘어가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 막연한 사이다. 체면을 깎아내리는 말에도 결코 언짢아하지 않고, 오히려 웃고 받아넘기는 그 태도는 마음의 여유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사이가 좋은 사이다.
고미숙 또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책에서 연암의 유머를 단순한 기질이 아니라 생의 철학으로 본다. “유머는 『열하일기』라는 고원을 관류하는 기저음”이라 말한 고미숙은, 유머야말로 연암이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이며, 말세의 풍속을 견디는 정신적 무기였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연암은 “세상이 나와 말이 통하지 않기에 우언(寓言)과 웃음으로 얼버무렸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이는 고립된 천재의 푸념이 아니라, 세상의 무거움을 유머로 견뎌낸 고도의 사유 능력이다.
흑선풍 일화에서 드러나는 연암의 언어 능력은 단순한 기지나 말재주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는 농담을 통해 순간의 긴장을 풀고, 낯선 이와의 거리를 좁히며, 동시에 고전을 인용해 문화적 맥락까지 겹쳐놓는다. ‘흑선풍’ 이야기를 농담의 소재로 끌어들이면서도, 그 의미를 음미하고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체면조차 해학으로 승화시키는 솜씨는 너그러운 마음과 유연함, 문학적 감각, 인간적 따뜻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언어표현이라 할 수 있다.
웃음은 곧 사유다. 유머는 회피가 아니라 성찰이다. 연암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세상을 진지하게 비판하는 대신, 웃음으로 뚫고 나갔다. 체면과 위계로 중무장한 조선 사대부의 세계에서, 연암의 유머는 새롭고 유쾌했다. 그러나 바로 그 유쾌한 웃음이 세상을 풍자하고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연암의 소망을 담고 있었다. 『열하일기』 속에 나오는 「호질」과 「허생전」의 풍자로 이어져, 연암의 작품은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고전으로 남게 되었다.
연암은 「호질」을 촛불 아래에서 밤새워 필사했다. 중국인 점포 주인이 “그걸 왜 베끼냐”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조선에 돌아가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배꼽 잡고 웃게 하려고.” 이 말은 어쩌면 연암 문학의 가장 아름다운 진심일 것이다. 연암 박지원의 「호질」을 읽다 보면, 고리타분한 양반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통쾌하게 드러내는 장면에 저절로 웃음이 터진다. 호랑이에게 질책받는 선비의 꼴은 시대 권위에 대한 통렬한 조롱이자, 인간 본성에 대한 유쾌한 통찰이다. 연암은 결코 단순히 희화화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웃음을 통해 사회를 비추고, 통념을 해체하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흑선풍 이야기는 그래서 단지 유머가 아니다. 그것은 연암이 말로 세계를 부드럽게 풀어내는 방식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인 거리를 웃음으로 잇는 능력의 발현이다. 이 한 장면에 박지원이라는 인물의 기지와 골계, 그리고 무엇보다 깊고 따뜻한 인간미가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고미숙의 말처럼, 유머는 따뜻한 가슴에서 나오고, 연암은 그 가슴으로 세상을 웃기며 다시 그렸다. 흑선풍의 농담과 『호질』의 풍자는 그렇게 하나의 문맥 위에서 연결된다. 웃음은 가볍지만, 그 웃음이 무너뜨리는 세계는 깊고 무겁다. 연암은 그 무거운 세상을 웃음으로 이긴 사람이었다.
시대나 상황이 웃음을 빼앗을지라도, 우리는 웃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유쾌한 해학과 낙관적 신념, 그 둘이 만들어내는 정신의 에너지는
가장 절망적인 시대조차 웃으며 견디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