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의 MBTI는 ENFJ, 따뜻한 유머와 해학을 갖춘 "껄껄 선생"
1. 성의 둘레는 3 리 밖에 되지 않지만, 벽돌이 수십 겹으로 쌓여 있다. 성을 쌓는 방법이 웅장하고 화려하며, 네 귀퉁이가 네모반듯하여 마치 되박을 놓아둔 것 같다. 지금 성은 겨우 성벽을 절반밖에 쌓지 않아 그 높이는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성문 위의 성루를 짓고 있는 곳에는 긴 사다리가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기중기를 세워 공사를 하고 있다. 비록 공사 규모는 엄청나게 컸지만, 기계가 편리해서 벽돌을 나르고 흙을 실어오는 것을 모두 기계를 움직여 옮겼다. 어떤 기계는 위에서 끌어올리기도 했고, 어떤 기계는 저절로 밀고 저절로 이동하기도 했는데 자재를 옮기는 방법이 다양했다. 모두 일은 반으로 줄이고, 효과는 배가 되는 기술이다. 모든 것은 본받지 않을 만한 것이 없다. 다만 갈 길이 너무 바빠서 전부 구경할 겨를도 없었을뿐더러, 설사 하루 종일 자세히 본다고 하더라도 짧은 시간으로 급히 배울 수도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城周不過三里, 而甎築數十重, 制度雄侈, 四隅正方若置斗。 然今裁半築, 則其高低雖未可測。 門上建樓處, 設雲梯浮空駕起工役。 雖似浩大, 器械便利, 運甓輸土。 皆機動輪轉, 或自上汲引, 或自推自行, 不一其法。 皆事半功倍之術 莫非足法。 而非但行忙, 難以遍觀, 雖終日熟視 非造次可學 良可歎也。
2. 점심을 먹고 난 뒤 변계함, 정 진사와 함께 먼저 출발했다. 강영태康永泰가 문밖에까지 나와서 읍을 올리고 전송한다. 헤어지는 것이 몹시 아쉬운 표정이다. 그리고 우리가 돌아올 즈음에는 곧 겨울이 될 테니, 달력 하나만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청심환 한 알을 꺼내 선물로 주었다.
食後, 與卞季涵鄭進士先行。 康永泰出門揖送, 頗有惜別之意。 且囑歸時當値冬節, 願賷賜一件時憲。 余解給一丸淸心。
3. 한 점포를 지나가는데 금색 글씨로 '당當'이라고 쓴 간판이 하나가 걸려있다. 옆 줄에는 '다만 무기는 전당을 잡지 않는다는 유군기부당惟軍器不當이라는 다섯 글자가 쓰여 있었는데, 이곳은 전당포다. 예쁘고 잘 생긴 소년 두세 명이 그 안에서 걸어 나와서 말을 막으면서 잠깐 찬바람이나 쐬고 가라고 했다. 그래서 다 함께 말에서 내려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 점포 안의 분위기는 모든 것이 강영태의 집보다 더 훌륭했다. 정원 가운데 커다란 단지가 두 개가 있다. 단지 안에는 연꽃이 몇 포기 심겨 있고, 오색 붕어도 기르고 있다. 한 젊은이가 손바닥만 한 작은 반두를 들고 작은 항아리 옆으로 가더니, 빨간 벌레 몇 마리를 떴다. 항아리 속에는 벌레가 물 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게의 알처럼 작았고, 모두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청년이 다시 부채로 단지 가장자리를 두들겼다. 그리고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고기를 부르니, 고기가 모두 물 위로 나와 거품을 머금고 뿜었다.
過一鋪, 掛一面金書當字牌, 旁書, 「惟軍器不當」 五字。 此典當舖也。 有數三美少年, 走出舖中, 遮馬請少刻納凉, 遂相與下馬隨入。 其凡百位置, 更勝康家, 庭中有二大盆, 種三五柄蓮子, 養得五色鮒魚。 年少手持掌大紗罾, 向小瓮邊, 臽了幾顆紅蟲, 浮沉盆中。 蟲細如蟹卵, 皆蠕蠕。 少年更以扇敲響那盆郭, 念念招魚, 魚皆出水呷沫。
4. 한낮이라 불볕이 내리쬐는 바람에 숨이 막혀 더 오래 머물 수 없어서 길을 떠났다. 정 진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갔다. 내가 정 진사에게 물었다.
"성을 쌓은 방식을 보니 어떻던가?"
정 진사가 대답했다.
"벽돌이 돌보다 못한 것 같았습니다."
내가 말했다.
"자네가 잘 몰라서 하는 말이네. 우리니라는 성을 쌓을 때, 벽돌을 쓰지 않고 돌을 쓰는데 이는 좋은 방법이 아닐세. 무릇 벽돌이란 한 틀로 찍어내 모두 같은 규격이라 만 개의 벽돌도 그 모양이 다 똑같다네. 게다가 힘을 써서 갈고 다듬는 고생을 할 필요가 없네. 한 가마에서 구워 내기만 하면 만 장의 벽돌을 제자리에 앉아서 그냥 얻을 수 있고, 더욱이 사람을 모아서 옮겨 나르는 고생도 할 필요가 없네. 모든 벽돌의 크기가 똑같고 반듯해서 힘은 덜 들고, 효과는 두 배나 되네. 가벼워 나르기도 편하고 쌓기도 쉬우니 벽돌만 한 게 없네.
반면에, 돌에 관해 말하면 산에서 캐낼 때는 여러 명의 석공이 필요하고, 수레로 운반할 때는 여러 명의 인부를 써야 하지 않는가. 이미 운반해 놓은 뒤에는 또 여러 명의 석공이 깎고 다듬어야 하고, 깎고 다듬기를 또 며칠 더 해야 하지 않는가. 벽돌을 쌓을 때도 돌 하나를 쌓기 위해 여러 몇 명의 인부를 더 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언덕을 깎아 내고 그곳을 돌로 덮어 놓는다고 해도, 그것은 진흙에다 돌로 만든 옷으로 덮어 놓은 꼴이네. 겉으로는 빼어나고 좋은 것 같지만 속은 위태롭지 않은가. 돌은 원래 그 모양이 들쭉날쭉 고르지 못하네. 만약 늘 작은 돌조각으로 돌덩이 밑바닥을 괴고, 언덕과 성벽 사이는 자갈을 채우고 진흙을 섞어 넣기 때문에 장마가 한 번 지나가고 나면, 창자 속은 텅 비어 버리고 배만 불룩하게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지. 그런 상황에서 돌멩이 하나라도 빠져 버리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 것은 뻔한 상황이 아니겠는가. 또 석회의 성질은 벽돌에는 붙지만 돌에는 붙지 않네.
내가 예전에 박제가와 성을 쌓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때 어떤 사람이 ‘벽돌이 단단하다고 한들 돌을 당해낼 수 있겠냐?’라고 말하자, 박제가는 버럭 큰 소리로 ‘벽돌이 돌보다 낫다는 것이 어찌 벽돌 하나에 돌 하나를 비교하는 말이겠는가’라고 말했는데, 이 대화는 정말 맞는 말이 아니겠는가. 대개 석회는 돌에는 붙지 않아 석회를 많이 쓰면 쓸수록 더 쉽게 갈라진다네. 그러면 돌이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 돌은 항상 제 혼자 겉돌아 겨우 흙덩어리에 붙여 고정할 뿐이었네. 벽돌은 석회로 붙여 놓으면 마치 아교풀로 나무를 붙이는 것과 같고, 금을 녹여 붙일 때 붕사를 넣는 것과 같네. 만 장의 벽돌을 한데 모아 갖풀로 붙여 성을 하나 만드는 것이네. 그러므로 벽돌 한 장의 단단함은 확실히 돌과는 비교할 수가 없네. 하지만 돌 한 개의 단단함 역시나 벽돌 만 개를 붙여 놓은 단단함에는 미치지 못하네. 이로 보면 벽돌과 돌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더 이롭고 해로우며, 편리하고 불편한지는 쉽게 판단할 수가 있네."
日方午天, 火傘下曝, 悶塞不可久居。 遂行, 與鄭進士或先或後, 余謂鄭曰, 「城制何如」, 鄭曰 「甓不如石也。」 余曰, 「君不知也。 我國城制不甎而石, 非計也。 夫甎一凾出矩則萬甎同樣. 更無費力. 磨琢之功, 一窰燒成, 萬甎坐得。 更無募人運致之勞, 齊匀方正, 力省功倍, 運之輕而築之易, 莫甎若也。 今夫石劚之於山, 當用匠幾人, 輦運之時, 當用夫幾人, 旣運之後, 當用匠幾人, 以琢治之, 其琢治之功, 又當再費幾日。 築之之時, 安排一石之功, 又當再用夫幾人, 於是削崖而被之, 是土肉而石衣也。 外似峻整, 內實臲卼。 石旣參差不齊, 則恒以小石撑其尻跗, 崖與城之間, 實以碎礫, 雜以泥土, 一經潦雨, 膓虛腹漲, 一石踈脫, 萬石爭潰, 此易見之勢也。 且石灰之性, 能黏於甎, 而不能貼石, 余嘗與次修論城制。 或曰 '甓之堅剛安能當石', 次修大聲曰, '甓之勝於石, 豈較一甓一石之謂哉'。 此可爲鐵論。 大約石灰不能貼石, 則用灰彌多, 而彌自皸坼, 背石卷起, 故石常各自一石, 而附土爲固而已, 甎得灰縫如魚膘之合木, 鵬砂之續金, 萬甓凝合, 膠成一城, 故一甎之堅, 誠不如石, 而一石之堅, 又不及萬甎之膠。 此其甓與石之利害便否。 所以易辨也。」
5. 정 진사는 말 위에서 구부정하게 앉아 떨어질 지경이다. 아마 졸고 있은지 꽤 오래된 모양이다. 내가 부채로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큰 소리로 꾸짖으며 말했다.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어째 잠만 자고 듣지 않는단 말인가?”정 진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 벌써 다 들었습니다. 벽돌은 돌만 못하고, 돌은 잠만 못하다는 것 아닙니까.”
나는 화가 나서 한 대 때리려고 하다가 서로 크게 웃었다.
鄭於馬上傴僂欲墮, 葢睡已久矣。 余以扇搠其脅大罵曰, 「長者爲語, 何睡不聽也。」 鄭笑曰, 「吾已盡聽之 甓不如石 石不如睡也。」 余忿欲敺之, 相與大笑。
6. 시냇가 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시원한 바람을 쐬었다. 오도하五渡河까지 오 리마다 망대가 하나씩 있었다. 이른바 일 번 망대, 이 번 망대, 삼 번 망대라는 것은 모두 봉화를 올리는 봉화대를 말하는 것이다. 벽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마치 성과 같았다. 높이는 대여섯 길 정도 되었는데, 마치 필통처럼 아주 둥글었다. 위에는 성가퀴가 만들어 놓았는데, 많이 훼손되어 있다. 무엇 때문에 보수를 하지 않을까? 길가에 간혹 관이 있는데 돌무더기를 쌓아 눌러놓았다. 여러 해 동안 방치하여 나무가 썩어 부서지고, 개대 뼈가 다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끄집어내어 불사른다고 했다. 길가에는 무덤이 많이 있다. 봉분은 뾰족하고 뗏장도 입히지 않았으며, 백양나무를 많이 심어놓았는데 줄이 반듯하다.
至河邊, 得柳陰納凉。 五渡河, 五里之間, 一臺子, 所謂頭臺子, 二臺子, 三臺子, 皆烽堡也。 甎築如城, 高五六丈, 正圓如筆筒。 上施垜堞, 多毁壞而不修葺何也。 道傍或有柩, 累石壓之。 年久露置, 木頭朽敗, 葢待其骨枯, 擧而焚之云。 沿道多有墳塋, 其封高銳, 亦不被莎。 多樹白楊, 排行正直。
7. 길을 걸어다시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걸어가는 사람들은 어깨에 침구인 포개鋪盖(요와 이불)를 짊어지고 다닌다. 포개가 없으면 여관에서 머무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간사한 도둑으로 의심하기 때문이었다. 안경을 쓰고 가는 사람은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말을 탄 사람은 모두 검은 장화를 신었다. 걸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푸른 베로 만든 장화를 신었는데, 신발 바닥에 모두 베를 수십 겹으로 덧대었다. 미투리나 짚신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송참松站에서 묵었다. 다른 이름으로는 설리참雪裹站(봉황시 설례촌薛禮村)이라고도 하고, 또 설유참雪劉站라고도 부른다. 이날은 칠십 리를 왔다. 어떤 이가 말했다.
“이곳이 옛날에 진동보鎭東堡라는 곳입니다.
行旅步走者絶少。 步走者, 必肩擔鋪盖。 寢具謂鋪盖。 無鋪盖者, 店房不許留接, 疑其姦宄也。 掛鏡而行者, 養目者也。 乘馬者, 皆着黑緞靴子, 步行者, 皆着靑布靴子, 其底皆衲布數十重。 絶不見麻鞋藁屨。 宿松店, 一名雪裡店, 又號薛劉店。 是日行七十里, 或曰, 此舊鎭東堡也。
[해설] 연암은 사상체질로 보면 태양인이고, MBTI는 ENFJ이고, 따뜻한 유머와 해학을 갖춘 "껄껄 선생"이었다
1. 연암 박지원은 학문적 성취뿐 아니라 인간적 매력과 유머 감각으로도 빼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열하일기』를 비롯한 다양한 산문을 통해 자신의 지적 통찰을 드러내는 동시에 독자에게 즐거움과 해학을 선사했다. 그의 삶과 글을 통해 연암을 이해할 때, 현대 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MBTI 유형은 ENFJ로 분석할 수 있으며, 이는 그가 “껄껄 선생”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에는 태양인은 “타고난 바탕은 막힘이 없이 통하는 [疏通] 장점이 있고, 재주와 국량은 교우(交遇)에 능하다.”라고 했다. 연암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했다. 담소를 좋아하여 누구 하고나 격의 없이 며칠이고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면서도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과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
2. 연암은 외향적(E) 성향이 뚜렷했다. 외부 세계와 사람에 대한 관심이 크고, 말수와 감정 표현이 풍부했다. 그는 사교적이면서도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겼으며, 친구와 지인들과의 우정을 깊이 나누었다. 이러한 외향성은 단순히 사람들과의 친교에 그치지 않고, 그가 직접 보고 느낀 사회와 풍경, 사건들을 글 속에 생생히 녹여내는 기반이 되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이 목격한 사소한 사건조차 놓치지 않고 기록한 것은 그의 섬세한 관찰력과 타인과 세계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반영한다.
연암은 또한 직관형(N) 인물이었다. 그는 기존의 제도와 관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사상과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북학론 논의나 성곽 축성 문제를 다룰 때, 그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과 구조, 사회적 의미를 직관적으로 분석했다. 예컨대 정 진사와 벽돌 이야기에서 연암은 바윗돌과 벽돌의 장단점을 비교하며, 조선의 전통적 축성 방식과 중국식 성곽의 효용을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이런 분석력은 그가 단순한 지식인이 아니라 사회를 꿰뚫어 보는 전략가이자 혁신가였음을 보여준다.
연암은 사고형(T)과 감정형(F) 성향의 조화를 이루어 그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는 논리적 사고로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고, 제도와 정책, 학문적 논의에서 탁월한 판단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따뜻한 감정과 인간미를 겸비했다. 고미숙은 연암의 유머를 ‘천재의 유머, 유머의 천재’라고 극찬하며, 그의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해학적 재치를 강조한다. 연암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글과 행동 속에 녹여내며, 독자와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3. 연암의 유머 감각은 단순한 웃음 유발을 넘어서는 차원이었다. 『열하일기』 도강록의 일화에서 장광설이 이어지는 중 정 진사가 졸고 있을 때, 연암은 재치 있게 부채로 옆구리를 찌르며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어째서 졸며 아니 듣는 게요!”라고 말한다. 정 진사는 웃으며 “내 이미 다 들었소. 벽돌은 바윗돌만 못하고, 바윗돌은 잠만 못하다면서”라고 대꾸한다. 이처럼 연암의 유머는 지적 논의와 해학적 상황을 동시에 녹여내는 기술이었다. 긴 논의 속에서도 적절한 익살을 덧붙여 독자의 흥미를 유지하고, 사회적·제도적 문제를 풍자적으로 비판하는 방식은 그가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웃음을 추구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는 또한 판단형(J) 성향이 강했다. 체계적 사고와 계획성을 갖춘 그는 자신의 사상과 지식을 실천으로 연결하는 결단력과 실행력을 지녔다. 북학론 연구와 성곽 논의, 『열하일기』 기록에서 드러나는 일관된 논리 전개와 목표 지향적 사고는 그가 단순히 사색에 그치지 않고, 현실과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실천적 지성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4. 이처럼 연암 박지원은 ENFJ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외향적(E)으로 사람과 사회에 에너지를 쏟고, 직관(N)으로 상황의 본질을 꿰뚫으며, 감정(F)으로 따뜻한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판단(J) 성향으로 체계적 사고와 실행력을 갖춘 그는 활발하면서도 사색적인 성격, 지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인간미, 사회적 통찰력과 풍자 능력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었다. 연암 박지원은 천재이자 인간적 따뜻함과 해학을 갖춘 “껄껄 선생”이었다. 그는 학문과 사상 속에서 지혜를 탐구함과 동시에, 사람과 사회를 즐겁게 만들 줄 아는 유머의 대가였다. 『열하일기』와 다수의 산문에서 그의 유머와 풍자는 오늘날까지도 독자에게 웃음과 통찰을 제공하며, ENFJ적 성격 특성과 결합된 그의 독보적 매력을 잘 보여준다. 연암 박지원은 단순히 조선 시대 문인을 넘어, 인간의 지성과 감성, 창의와 유머가 조화롭게 결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례로 기억될 만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