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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23 기묘일 01]

생동감 있게 묘사하되 그 속에 참된 본질을 담고 있어야 한다.

by 백승호

1. 7월 초3일 기묘일

새벽에 큰비가 내리다가 아침과 낮에는 화창하게 맑았다.

밤에 다시 큰비가 내리더니,

初三日己卯 (曉大雨 朝晝快晴 夜又大雨達曙)


2. 간밤에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비가 오늘 새벽까지 계속 내려 또 하루 머물렀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장맛비가 활짝 개고 맑은 햇살이 비치고 선들선들한 바람이 분다. 날씨가 맑고 밝은 것을 보니 한낮에는 무더울 듯싶다. 땅바닥에는 석류꽃이 온 사방에 깔려 있었다. 꽃물이 스며들어 진흙땅은 붉게 물들었다. 수국은 이슬에 촉촉이 젖어 있었고, 옥잠화는 눈처럼 빛났다.


3. 문 앞에서 퉁소, 갈피리, 징 소리가 나서 얼른 나가 보았다. 결혼 행렬 지나간다. 채색한 사초롱紗燈籠 여섯 쌍, 푸른 일산日傘 한 쌍, 붉은 일산 한 쌍,퉁소 한 쌍, 날라리 한 쌍, 태평소 한 쌍, 운라雲鑼(징) 한 쌍이 함께 가고 있었다. 행렬 가운데에는 네 사람이 푸른 가마를 한 채 메고 간다. 가마 몸체의 사면에는 얇은 유리로 만든 창문이 달려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색실로 만든 술을 달아 늘어뜨렸다. 가마 몸체의 허리 높이쯤에 굵은 나무로 두 가닥을 양옆으로 대었다. 그리고 그 가마채 앞뒤로 푸른색 굵은 밧줄로 가로질러 매고, 그 가로지른 밧줄 가운데에 짧은 가마채를 끼워 넣어 두 사람이 앞뒤로 서서 가마를 메었다. 네 사람의 여덟 다리가 발을 맞추어 가니 가마는 흔들거리지도 않고 가만히 허공에 떠서 가는 듯했다. 가마를 메고 가는 방식이 정말 절묘했다.


4. 가마 뒤에 수레 두 대가 따라간다. 모두 검은 베로 방처럼 휘장을 쳤는데, 나귀 한 마리가 끌고 간다. 한 수레에는 네 명의 노파가 타고 있었다. 얼굴은 모두 늙고 추하게 생겼지만, 붉은 분을 발라 꾸몄다. 정수리 부분은 머리카락이 다 벗겨져 불그래하게 빛나는 것이, 마치 표주박을 엎어 놓은 것 같았다. 하늘을 향해 곧게 세운 짧은 쪽머리에는 꽃을 가득 꽂았다. 양쪽 귀에는 옥 귀고리를 달았고, 검은 상의에 노란 치마를 입었다. 또 한 수레에는 젊은 여인 세 사람이 타고 있다. 붉은색이나 푸른색 바지를 입었을 뿐 모두 치마를 두르지 않았다. 그중에 한 처녀는 제법 예쁘다. 아마 늙은이들은 신부의 유모이고, 어린 처녀는 몸종일 것이다.

말을 탄 삼십여 명이 빽빽하게 둘러싼 속에 뚱뚱하고 우악스럽게 생긴 한 남자를 빙둘러서서 호위하면서 가고 있다. 입가나 턱 밑에는 검은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고, 예법에 따라 구조망포九爪蟒袍를 입고 있다. 흰 말 위의 금색안장에 앉아 은색 등자를 밟은 채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었다. 뒤따라 오는 세 대의 수레에는 옷이 가득 실려 있다.


又留。 朝起開牕, 積雨快霽。 光風時轉, 日色淸明。 可占午炎, 榴花滿地, 銷作紅泥, 繡毬浥露, 玉簪抽雪。 門前有簫笳鐃鉦之聲, 急出觀之, 乃迎親禮也。 彩畵紗燈六對, 靑盖一對, 紅盖一對, 簫一雙, 笳一雙, 觱篥一雙, 疊鉦一雙, 中央四人, 肩擔一座靑屋轎, 四面傅玻瓈爲牕, 四角嚲彩絲流蘇。 轎正腰爲杠, 以靑絲大繩, 橫絞杠之前後, 再以短杠, 當中貫絞, 兩頭肩荷。 四人八蹄, 一行接武, 不動不搖, 懸空而行, 此法大妙。 轎後有兩車, 皆以黑布爲屋, 駕一驢而行。 一車共載四個老婆, 面俱老醜, 而不廢朱粉, 顚髮盡禿, 光赭如匏, 寸髻北指, 猶滿揷花朶, 兩耳垂璫, 黑衣黃裳。 一車共載三少婦, 朱袴或綠袴, 都不繫裳。 其中一少女, 頗有姿色。 盖老是粧婆乳媼, 少的是丫鬟也。三十餘騎簇擁, 着一個胖大莽漢, 口旁頤邊, 黑髭鬆鬆, 權着九爪蟒袍, 白馬金鞍, 穩踏銀鐙, 堆着笑臉。 後有三兩車, 滿載衣。


[해설]『열하일기』의 생동감 있는 묘사와 문학적 의의

1. 글이란 것은 살아 있는 영상처럼 생동감 넘치게 묘사해야 한다. 물론 눈앞에 있는 그대로를 그림같이 묘사한다고 하여 다 좋은 글이 아니다. 생동감 있게 묘사하되 그 속에 참된 본질을 담고 있어야 한다. 『열하일기』에는 생동감 넘치는 묘사가 두드러진다. 연암의 눈에 비친 이국적인 자연 풍경과 기상 변화를 놓치지 않고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서 그 당시의 날씨 변화와 풍경을 현장에서 보듯 할 수 있다. 『열하일기』의 상세한 묘사는 낯선 땅을 여행하는 사람의 눈에 비친 새로운 모습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청조 중국의 발달된 문물을 다각도로 관찰하고 민간 풍속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그 당시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2. 우선 주목할 부분은 기상 변화와 풍경 묘사다. 7월 초3일 기묘일의 기록에는 장맛비가 그친 뒤의 풍경이 세밀하게 포착되어 있다. 창문을 열었을 때 맞이한 맑은 햇살, 선들선들한 바람, 땅바닥에 흩어진 석류꽃, 붉게 물든 진흙, 이슬에 젖은 수국과 눈처럼 빛나는 옥잠화. 이 모든 요소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감각적 체험의 재현이다. 독자는 글을 읽으며 자연스레 현장에 서 있는 듯한 몰입감을 느낀다. 이러한 묘사는 여행자가 낯선 이국 땅에서 마주한 감각적 충격과 감흥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특히 계절과 날씨의 변화가 사건의 배경으로 제시되면서, 여행의 사실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3. 결혼 행렬의 묘사에서는 연암의 관찰력과 표현력이 절정을 이룬다. 악기의 울림으로 시작되는 장면은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사초롱과 일산, 퉁소와 태평소, 운라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행렬의 묘사는 화려한 색채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특히 가마를 메는 방식을 기술한 부분은 공학적 정밀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가마의 구조, 술 장식, 밧줄의 매는 방식, 메는 사람들의 발걸음까지 일일이 기록하면서도, 그것이 단순한 기계적 기술이 아니라 한 폭의 장면으로 살아 움직이게 한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독자는 청나라의 문화와 풍속을 마치 영상으로 보는 듯한 생생함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연암의 묘사가 단순히 화려한 장식물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노파들의 외모와 치장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풍자적 시선이 두드러진다. 늙고 추한 얼굴에 붉은 분을 바르고, 머리카락이 벗겨진 정수리를 드러낸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리면서도 삶의 씁쓸한 단면도 남긴다. 이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사회적 관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 신랑 모습 묘사도 ‘뚱뚱하고 우악스럽게 생긴 남자’라는 표현을 통해 외적 위세 뒤에 감추어진 속성을 풍자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연암은 묘사를 통해 단순히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다.


4. 문학적으로 볼 때 『열하일기』의 묘사는 몇 가지 중요한 기능을 가진다. 첫째, 현장감 재현이다. 독자는 글을 읽으며 이역만리의 땅을 직접 여행하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둘째, 문화적 관찰이다. 연암은 청나라의 풍속과 문물을 치밀하게 기록함으로써 동시대 사회문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남겼다. 셋째, 사건의 무대화이다. 풍경과 날씨, 행렬의 장엄함은 사건을 드라마틱하게 부각하며, 단순한 기록을 문학적 장면으로 승화시킨다. 넷째, 풍자와 성찰이다. 연암의 묘사는 단순히 시각적 재현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처럼 『열하일기』의 생동감 있는 묘사는 여행기의 사실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확보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현장감 있는 기록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와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도구다. 연암의 붓끝에서 묘사된 풍경과 인물들은 단순한 사실의 모사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영상이 되며, 그 속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이 스며든다. 따라서 『열하일기』는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묘사의 힘을 통해 사실성과 비판성을 아우르는 한국 문학사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연암은 글쓰기의 본질, 즉 생동감 있는 묘사 속에 본질을 담아내야 한다는 원리를 작품 속에서 완벽하게 구현했다. 『열하일기』의 세계는 지금도 독자에게 낯선 땅을 여행하는 실감을 주면서, 동시에 그 시대 사회의 단면과 인간 군상의 본질을 성찰하게 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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