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의 실용정신을 본받아 AI 강국으로 나아가야
1. 마을 변두리에는 벽돌을 굽는 가마가 두 곳이 있다. 하나는 벽돌이 때마침 다 구워졌는지 진흙을 아궁이에 이겨 바르고, 물을 수십 통을 길어다가 가마 위에 들어붓는다. 가마 위가 약간 움푹 파여 있어서 물을 부어도 넘치지 않는다. 가마가 한참 달아서 물을 먹으면 바로 말라 버린다. 물을 붓고는 가마가 달아서 터지지 않게 물을 타지 않도록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가마 하나는 이미 다 식었는지 한참 가마에서 벽돌을 끄집어내는 중이었다. 대체로 이 벽돌 가마의 구조는 우리 조선의 가마와는 아주 다르다. 먼저 우리나라 가마의 잘못된 점을 이야기해야지만 청나라의 가마 구조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村邊有二窰。 一恰裁燒畢, 塗泥竈門, 擔水數十桶。 連灌窰頂, 窰頂略坎, 受水不溢。 窰身方爛, 得水卽乾, 似當注水, 不焦爲候耳。 一窰先已燒冷, 方取甓出窰。 大約窰制, 與我東之窰判異, 先言我窰之誤, 然後窰制可得。
2. 우리나라의 기와 가마는 옆으로 길쭉하게 눕혀 놓은 모양이라서 가마라고 할 수도 없다. 애초에 가마를 만드는 벽돌이 없기 때문에 나무를 세우고, 진흙으로 발라서 가마를 만든다. 그리고 큰 소나무로 불을 때서 가마가 말라 굳게 한다. 불을 때서 가마를 굳게 하는 비용이 이미 많이 들어간다. 가마가 길기만 하고 높지 않기 때문에 불이 위쪽까지 타오르지 못한다. 불길이 위로 타오르지 못하기 때문에 불기운은 힘이 없다. 불기운 힘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소나무를 때서 불꽃을 세게 해야 한다. 소나무를 때서 불꽃을 세게 해야 하기 때문에 불 세기가 고르지 못하고, 불의 세기가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불에 가까이 쌓인 기와는 잘 깨지고 불길에서 멀리 있는 기와는 잘 구워지지 않는다. 도자기를 굽든 옹기를 굽든 간에 모든 가마의 모양새가 다 이 모양이다. 소나무를 때는 방법 또한 이와 같으니, 송진의 화력은 다른 장작보다 훨씬 세다. 하지만 소나무는 한번 베면 새로 움이 돋아나지 않는 나무이기 때문에 한 번 옹기장이를 만나면 사방에 있는 산은 모두 민둥산이 된다. 백 년 동안 기른 소나무를 하루아침에 다 없애 버리고는, 다시 새가 흩어져서 소나무를 찾아서 떠나가 버린다. 이렇게 가마를 만드는 방법 하나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온 나라의 좋은 재목이 나날이 줄어들고, 옹기장이들도 나날이 가난해지는 것이다.
我窰直一臥竈, 非窰也。 初無造窰之甎, 故支木而泥築薪。 以大松燒, 堅其窰, 其燒堅之費, 先已多矣。 窰長而不能高, 故火不炎上。 火不能炎上, 故火氣無力。 火氣無力, 故必爇松取猛, 爇松取猛, 故火候不齊。 火候不齊, 故瓦之近火者, 常患苦窳, 遠火者, 又恨不熟。 無論燔瓷燒瓮, 凡爲陶之家, 窰皆如此, 其爇松之法又同, 松膏烈勝他薪也。 松一剪則非再孽之樹, 而一遇陶戶, 四山童濯, 百年養之, 一朝盡之, 乃復鳥散逐松而去。 此緣一窰失法, 而國中之良材日盡, 陶戶亦日困矣。
3. 오늘 이곳의 벽돌가마를 보니 벽돌을 쌓고 석회로 막아 처음부터 불을 때서 가마를 말려 굳히는 비용이 들지 않고, 또 높이와 크기를 마음대로 할 수가 있다. 그 모양은 마치 큰 종을 엎어 놓은 것 같고, 가마 꼭대기에는 못처럼 움푹 파여 있어 물을 몇 섬이나 담을 수 있다. 가마 옆쪽에는 연기 구멍 네댓 개를 뚫어 불길이 위쪽으로 잘 올라가게 만들었다. 가마 속에는 구울 벽돌을 서로 비스듬하게 기대어 쌓아 그 공간 사이로 불이 지나갈 수 있게 해 놓았다. 아마 그 묘법은 벽돌을 쌓아 올리는 방법에 있는 것 같다. 지금 나에게 직접 만들어 보라고 하면 쉽게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입으로는 묘사하기에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今觀此窰, 甎築灰封, 初無燒堅之費, 任意高大。 形如覆鍾, �頂爲池, 容水數斛, 旁穿烟門四五, 火能炎上也。 置甎其中, 相支爲火道, 大約其妙在積, 今使我手能爲之至易也, 然口實難形。
4. 정사가 내게 물었다.
"구울 벽돌을 쌓아 놓은 모양이 '품品'자 비슷하던가?"
내가 대답했다.
"비슷하게 보이지만 다른 듯합니다."
변 주부가 물었다.
“그러면 책갑冊匣을 포개 놓은 것 같던가요?"
내가 대답했다.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닐세."
벽돌을 그냥 평평하게 쌓아 올리지 않고, 모로 세워서 방고래처럼 여남은 줄을 쌓고, 다시 벽돌을 비스듬히 세워 차례로 쌓아 올려 가마의 천장에 닿도록 쌓는다. 쌓은 벽돌 사이로 자연스럽게 구멍들이 뚫리는데, 마치 고라니의 눈과 비슷하다. 불기운이 올라오면 그 구멍들은 불을 서로 밀고 당기는 불목이 된다. 불을 끌어당기는 모습이 마치 만 개의 불구멍으로 불꽃을 빨아올려서 다음 불구멍으로 전달하여 불기운은 언제나 매서웠다. 설령 수숫대나 기장 줄기를 때더라도 고르게 잘 구워진다. 그러니 오그라들어 뒤틀어지거나 거북등처럼 갈라지는 걱정은 저절로 없어진다.
正使問, 「其積類品字乎。」 余曰 「似是而非也。」 卞主簿問, 「其積類疊冊匣乎。」 余曰, 「似是而非也。」 甓不平置, 皆隅立爲十餘行, 若堗�, 再於其上, 斜駕排立。 次次架積, 以抵窰頂, 孔穴自然踈通如麂眼。 火氣上達. 相爲咽喉. 引焰如吸, 萬喉遞呑, 火氣常猛, 雖薥稭黍柄, 能匀燔齊熟, 自無攣翻龜坼之患。
5. 지금 우리나라의 옹기장이는 먼저 가마 제작 방범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넓은 소나무숲이 없으면 가마를 만들 수 없다고만 한다. 도자기를 굽는 것을 금할 수 없는 일이지만, 소나무는 그 양이 한정된 물건이다. 가마 만드는 방식을 바꾸어야 옹기장이에게도 좋고, 소나무에도 이로울 것이다. 옛날 오성鼇城 이항복李恒福과 노가재 김창업이 모두 벽돌의 이로운 점을 이야기했지만, 가마를 만드는 방식에 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으니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이는 “수수깡 3백 움큼이면 한 가마를 땔 수 있는 땔감이고, 벽돌 8천 장을 얻을 수가 있다고 말한다. 수수깡의 길이가 한 길 반쯤 되고, 굵기는 엄지손가락만 하니 한 줌이라고 해야 고작 수수깡 네덧 개 가닥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수숫대를 땔감으로 쓰면 불과 천여 가닥으로 벽돌 만 개를 얻을 수 있다.
今我東陶戶不先究窰制, 而自非大松林, 不得設窰。 陶非可禁之事, 而松是有限之物, 則莫如先改窰制, 以兩利之。 鰲城李公恒福, 老稼齋皆說甓利, 而不詳窰制, 甚可恨也。 或云, 「薥稭三百握, 爲一窰之薪, 得甎八千。」 薥稭長一丈半, 拇指大則一握, 僅四五柄耳。 然則薥稭爲薪, 不過千餘柄, 可得近萬之甎耳。
6. 하루가 일 년처럼 지루하게 느껴졌다. 저녁 무렵이 되자 더위가 더욱 심해지고 졸려 잠까지 쏟아진다. 옆방 캉炕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투전판이 벌어져 한창 떠들썩하다. 나도 잽싸게 끼어들어 투전판에 앉았다. 연거푸 다섯 번을 이겨 백여 푼을 땄서 그 돈으로 술을 사다가 기분 좋게 실컷 마시니 어제 놀음판의 수모를 씻을 수가 있었다.
내가 말했다.
"오늘은 그냥 항복하는 게 어떤가?"
조 주부와 변 주부가 대꾸한다.
"그야 요행수로 이긴 것이지요."
다들 함께 크게 웃었다. 변 군과 박래원이 분하고 억울한지 열받아서 한 판 더 하자고 계속하자고 조른다.
나는 사양하면서 말했다.
"옛말에 뜻을 이룬 곳에는 두 번 가지 말고, 만족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라고 했네."
日長如年。 向夕尤暑, 不堪昏睡。 聞傍炕方會紙牌, 叫呶爭鬨。 余遂躍然投座, 連勝五次, 得錢百餘。 沽酒痛飮, 可雪前恥。 問, 「今復不服否。」 趙卞曰, 「偶然耳。」 相與大笑。 卞君及來源, 不勝忿寃, 要余更設。 余辭曰, 「得意之地勿再往, 知足不殆。」
[해설]
1. 연암은 조선 가마와 중국 가마를 비교하여 자원의 합리적 이용과 생산성 향상 방법을 제시했다. 조선의 가마는 대개 진흙과 흙벽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제작 비용이 많이 들고 화력을 집중하기 어려워 불길이 일정하게 퍼지지 않았다. 그 결과 옹기나 도자기 품질이 균일하지 못하고, 불완전 연소로 인해 땔감을 과도하게 소모하였다. 특히 땔감으로 사용된 것은 대부분 소나무였다. 소나무는 조선의 산림 자원과 직결되는 중요한 자원이었으나, 무분별한 벌목으로 숲은 황폐해지고 백성들의 생활 기반마저 위협했다. 연암이 보기에 조선의 가마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사회와 자연환경 문제로 이어졌다.
반면 청나라의 벽돌가마는 전혀 달랐다. 벽돌로 단단하게 만들고 석회로 마감하여 내구성이 강했으며, 내부 열 분포도 균일하게 유지되었다. 불길이 일정하게 흐르며 가마 전체에 열을 전달하므로, 적은 연료로도 고른 품질의 도자기를 구울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땔감으로는 반드시 소나무와 같은 귀한 자원이 필요하지 않았다. 연암은 청나라 사람들이 수수깡이나 기장대 같은 잡풀을 이용해도 충분히 가마를 운용하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이는 곧 조선에서 심각하게 제기되던 산림 고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열쇠로 보였다.
2. 연암은 이러한 차이를 목격하고 단순히 감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조선 사회가 여전히 전통과 관습에 얽매여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였다. 조선의 진흙가마는 기술적 낙후성뿐 아니라, 백성들의 노동과 국가의 자원을 불필요하게 소모하는 제도적 낭비의 상징이었다. 반면 청의 벽돌가마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갖춘 선진 기술의 표본으로, 연암은 이를 조선 사회 개혁의 모델로 제시하고자 했다. 가마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곧 자원의 효율적 활용, 기술 혁신, 민생 안정이라는 더 큰 주제를 드러내는 장치였다. 다시 말해, 벽돌가마에 대한 언급은 단순한 기술적 세부사항이 아니라 실학의 근본정신인 ‘실용과 개혁’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이러한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조선 백성의 삶과 직접 연결하였다. 소나무 남벌로 산림이 파괴되면 농사와 가옥, 나아가 백성들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반면 가마 구조를 개선하고 효율적 사용 방식을 도입하면 잡풀을 연료로 활용할 수 있어 숲을 보호하면서도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다. 연암은 기술적 차이를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하여, 조선의 제도와 백성의 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발전 방안을 모색했다.
3. 더 나아가 연암의 인식과 사상적 태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그는 중국의 선진 기술과 문물을 무조건 숭배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을 조선의 현실과 비교하여 개선책으로 제시했다. 즉, 그는 타자의 문물을 비판적 안목으로 수용하여 조선에 맞게 적용하고자 했으며, 이는 실학자다운 현실 지향적 태도라 할 수 있다. 결국 『열하일기』에서의 가마 비교는 연암의 실학사상이 집약된 장면이다. 조선의 낙후된 가마는 고정된 관습과 비효율의 상징이며, 중국의 벽돌가마는 합리성과 개혁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연암은 이를 통해 자원 절약, 생산성 향상, 백성의 생활 안정이라는 세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열하일기』는 단순한 여행 보고서가 아니라, 조선 사회의 기술과 제도 전반을 혁신하려는 실학적 개혁안으로 읽힌다.
이러한 연암의 실용정신은 훗날 한국 사회가 산업화와 정보화를 거쳐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는 국가 발전의 과정과 긴밀히 맞닿아 있다.
4. 연암의 실용정신과 국가 발전: 산업화·정보화·AI시대의 교훈
산업화, 정보화,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로 이어지는 국가 발전은 언제나 실용정신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산업화를 가능케 한 국가 인프라였고, 1990년대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은 정보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오늘날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AI·에너지 고속도로’는 이러한 흐름을 계승하여, 국가의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마련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AI G3’로 도약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국가 AI전략위원회를 확대 개편하고, 과학기술부총리직을 부활시켰다. 이는 범정부 차원에서 AI를 총괄 조율할 수 있는 실행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GPU 슈퍼컴 구축, 데이터 거버넌스 확립, 10조 원 규모의 AI 예산 확대는 모두 국가 차원의 인프라 투자라는 점에서 과거 산업화·정보화 정책의 연속선상에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산업의 혈관, 초고속 인터넷망이 디지털 경제의 토대였다면, 이제 AI·에너지 고속도로는 국가 전체의 생산성, 자원 활용, 생활 질과 직결될 것이다.
5.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연암 박지원의 실용정신을 떠올릴 수 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조선의 진흙가마와 청나라의 벽돌가마를 비교하며, 단순한 기술의 차이를 넘어 자원의 합리적 이용·생산성 향상·민생 안정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짚어냈다. 낙후된 진흙가마가 산림 고갈과 사회적 낭비를 초래한 반면, 벽돌가마는 최소한의 자원으로도 균일한 품질을 확보하며 사회 전반에 긍정적 효과를 주었다. 연암은 이를 현실에 맞게 변용하려는 개혁적 태도를 보였다.
6. 오늘날 AI 시대의 국가 전략도 이와 같은 실용정신을 필요로 한다. 첨단 기술을 무조건 추격하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현실에 맞는 제도와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GPU 확보, 데이터 인프라 강화, 부처 간 협력 체계 구축은 기술 자체보다 사회적 파급효과와 국가적 효율성을 중시하는 접근이어야 한다.
결국, 산업화의 고속도로, 정보화의 인터넷망,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의 AI·에너지 고속도로는 정확한 현실인식과 실용정신을 발휘해야 성공할 수 있다. 연암이 벽돌가마에서 발견한 합리성과 개혁 정신의 본질은 오늘날 국가 발전 전략의 핵심 교훈이 되며 꼭 필요한 인식이다.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혁신하는 제도적 전환점이어야 하며, 이를 통해서만 대한민국은 지속적인 성장과 AI 강국으로의 도약을 이룰 수 있다. 시대는 변해도 본질과 필요는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