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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북 May 12. 2023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절대 이 병원에선 안 나갈 거야


ㅇ병원의 응급실 앞에서 1시간째 대기 중인 아빠의 다리를 슬그머니 담요로 덮어본다.

3월 초 봄 볕이 추운 바람을 타고 비춘다. 아직 날이 차다.


"썬, 우리 아빠 결국 병원 왔어. 1시간째 응급실에서 대기 중이야."

"왜??"

"아빠 병명으로는 응급실 처치가 불가하대, 아빠 상태 가지고 회의 후 결정한다고 기다리라는데 1시간째 이러고 있다"

"헐.."


일이 생겼다 싶으면 항상 썬에게 먼저 카톡 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내가 들고 오는 소식은 대부분 난제였다. 이번에도 그러했고 둘이 머리를 맞대어봐도 별다른 답이 안 나오는 킹 오브 노답이었으니 카톡을 하면서도 답답한 마음이 가득했다.




남편의 말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 응급실에 먼저 도착한 나는 구급 대원과 함께 응급실로 들어오는 아빠를 확인 후 수속을 마치고 응급실에 들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두 명의 간호사들이 방호복을 입고 나와 아빠의 상태를 체크하며 갸웃거리더니 자기들끼리 한참을 이야기하고 또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는가 싶더니 "뒤통수의 찰과상과 당뇨발로는 현재 응급실 치료가 불가하세요. 현재 병상이 꽉 차있고 코로나로 인해 경증의 찰과상은 동네병원이나 중소형 병원에서 치료하시게끔 안내드리고 있습니다."라는 절망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다급해진 내가 "아뇨 아뇨 우리는 당뇨발로 온 게 아니에요. 심부전이 악화되셔서 몸에 부종이 차오르고 있어요. 응급실 들어가셔야 합니다"라며 단호하게 버텼고 심부전이라는 소리에 내부 회의 후 결정하겠다는 간호사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응급실의 문은 한 시간째 열리지 않았다. 불안했다. 어떻게 도착한 응급실인데. 이대로 다시 리턴해서 동네 정형외과나 가라니.. 아득히 지옥 같은 시간들을 버텨왔고 이 병원을 거쳐야 요양병원을 갈 수 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지점. 나는 물러설 곳도, 물러설 마음도 없었다.


'절대 이 병원에선 안 나갈 거야. 무조건 응급실로 들어갈 거야.'

이런 결심을 불경처럼 웅얼대다 보니 불현듯 10년 전쯤의 이 자리에서

"절대 이 병원은 안 올 거야!!"라고 소리치던 어린 내가 떠오른다.






이십 대 초반쯤 되었을 때 일이다.

아빠가 갑자기 새벽부터 끙끙대는 소리를 내고 거실에 소변을 보시는 둥 이상한 행동을 하다 아침 일찍 자는 나를 깨워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다'라며 정신없이 보채는 통에 119를 불렀다. 원래 다니시던 ㅅ병원으로 이송을 부탁했지만 아빠가 구급차 안에서 나 죽는다며 소리를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고 응급상황일 경우 원칙적으로는 집과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는 구급 대원의 말에 ㅇ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ㅇ병원은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형병원 중 하나였고 그래서 그런지 응급실은 완전 포화상태였다. 점점 길어지는 대기시간에 아빠는 '답답해!! 가슴이 답답해!!'라고 연신 소리를 지르다 그 옆에서 멀뚱대는 나를 잡아끌어 어떻게든 해보라며 짜증을 부리셨으나 스물 초반의 내가 뭘 어찌할 방법이 있겠는가. 아빠의 성화에 나름 용기 내서 처치 중인 간호사에게 다가가 '저기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물어봤고 ' 기다리세요'라는 단호한 대답에 주눅이 들어 되돌아오자 아빠는 '부모가 당장 죽을 거 같다는데 넌 어디가 모자라냐. 왜 아무것도 못하고 있냐.'며 윽박지르는 통에 우리 부녀는 멀찌감치 앉아 각자 짜증만 열심히 내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아빠 차례가 왔고 젊고 파리하게 생긴 응급의가 다가왔다. 그는 아빠를 응급실 한켠의 침대에 눕히고 한쪽 다리를 들어보세요. 팔을 들어보세요. 왼쪽 팔을 들어 오른쪽 귀를 잡아보세요 등의 운동신경 테스트 같은 걸 시켰는데 아빠가 자꾸 못 알아듣고 시키는걸 제대로 하지 못하자 "어르신 여기 놀러 오셨어요? 놀러 오신 거 아니잖아요." 라며 짜증을 내고 있었고 옆에서 이 노인과 모르는 사이가 되고 싶어요 라는 뉘앙스를 온몸으로 뿜어대고 있던 나도 자식은 자식이었는지 그 장면에 화가 났다. 우리가 설마 여기에 도시락이라도 싸들고 놀러 왔겠는가?? 당황하는 의사를 무시한 채 아빠를 일으켜 휠체어에 태운 후 사설 구급차를 불러 원래 다니던 ㅅ병원 응급실로 이동했다.


응급실 입구에서 "씨발 이 병원 절대 다신 안 올 거야. "잇사이로 짓이기듯 내뱉는 욕설과 함께.


아빠의 병명은 급성 심근경색과 경미한 뇌졸중이었다. 심장에 스텐트 두 개를 박고 뇌졸중 전담 병실에서 보름간 치료를 받고 나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거기서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팔다리나 휘적대다가 그대로 골든타임을 놓쳤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그 병원은 영원히 돌팔이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그런 내가 10년 후 이 자리에서 여길 꼭 들어가야겠다며 버티고 있다니.


이 글을 쓰면서 몇 번은 언급했지만, 또다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환자를 인계해야 귀환할 수 있는 구급 대원들도 졸지에 나와 같이 한 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서로 지친 시선들이 오가는 가운데 방호복을 입은 구급 대원의 고글 안쪽에 맺힌 땀방울까지도 죄스럽게 느껴진다. 건조한 한숨과 적막한 침묵을 깨는 건 아빠였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눈알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눈치를 살피더니 "우리 언제 들어가냐?"라고 물어보는 아빠는 힘없이 쪼그라든 노인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집안에 우두커니 앉아 소리만 질러대는 노인은 온데간데없다. 나에게 겨눠진 매서운 분노의 칼끝이 치워지자 나 역시 부드럽고 온화해졌다. 아니 그것은 어찌 보면 인간 대 인간으로서 본능적인 연민일 수도 있다.


"응. 병원에서 심사하는 게 있대. 불편하겠지만 조금만 참자 아빠"라고 아빠를 달래니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눈을 감는다.


간호사들이 당뇨발이라고 판단한 왼쪽 엄지발가락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신경도 못쓰고 있었는데 발가락도 좋지가 않다. 어디에 부딪혔는지 상처가 나 딱지가 지고 그 주변이 까맣게 변해있었는데 다리를 주욱 흝어보다 보니 바지 밑단을 타고 뚝뚝 흐르는 진물도 보였다. 진물이 또렷하게 번져있는 베이지색 면바지는 아빠의 애착바지다. 저놈의 바지를 입고 가시겠다며 그 와중에 기어코 악다구니를 한판 하셨다는데.


멍하니 남편과의 통화를 회상해 본다. 차에 있으라며 나를 대기시키고 혼자 올라간 남편이 문을 열고 본 집안 풍경은 여기저기 구겨져 처박혀있는 피 묻은 휴지들과 곰돌이 푸마냥 속옷까지 탈의한 채 소파에 걸터앉아 있는 아빠였다. 구급 대원들이 찢어진 뒤통수의 상처를 지혈과 함께 간단히 봉합하는 처치를 했고 그 후 병원으로 가기 위해 베드에 눕히기까지 장정 4명이 필요했다고 한다. 거대한 풍채에 부종까지 차 있었으니 그럴만하다. 그 좁은 집에 남자 다섯이 꾸겨져서 낑낑대는 와중에 본인이 입고 싶은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혀달라며 떼를 쓰는 아빠를 보며 처음으로 니가 아버님한테 그렇게 짜증을 낸 이유를 알겠다는 남편의 말이 생각나 웃음이 픽 났다.


그렇게 아빠는 집을 떠났고, 혼자 남은 남편이 마주한건 담요의 무덤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아빠가 앉아있던 소파 위,  소변은 늘 집에 두시던 소변통에 보신듯했으나 터져 나오는 설사는 어찌할 수 없었는지 그곳에 고스란히 흔적이 남은 듯했다. 원체 깔끔했던 성격의 양반이라, 나름대로 대처를 해둔 것이 본인이 앉았던 소파 위를 이불이나 담요 따위로 켜켜이 쌓아둔 것인데 그것 역시도 모두 오물 범벅이 되어 모두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남편은 그것들을 거대한 쓰레기봉투에 담아 처리하기 전 통보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던 것이었고, 별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건조한 말투로 상황을 전했으나 나는 눈물이 핑 돌고야 말았다.


오물이 묻은 이불과 담요들은 모두 내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나씩 선물해 줬던 것이다.

여름엔 열이 많은 아빠가 덮기 편한 인견 재질로 된 얇은 홑겹 이불을, 가을엔 보드라운 블랭킷을 사드렸다. 그때마다 아빠는 활짝 웃으며 아이처럼 좋아했고 "네가 보내준 이불 덮고 있는데 너어무 좋다!! 아주 고맙다~~"라며 껄껄대던 아빠의 목소리가 생생한데... 하나둘씩 바스러져가는 추억들에 더 이상의 기대도 희망도 없었건만 기어코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야 하는 상황까지 맞닥뜨리니 더 이상 얼마나 더 참아내라는 건지 하늘이 야속해져 왔다.


하지만 감정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다. 아빠를 응급실에 모시는 게 중요하다.


불안할 때마다 까득대던 엄지손톱에 쓰라림이 느껴지려는 찰나 응급실에서 또 다른 의료진들이 나와 아빠를 살펴보기 시작했고 마침내 한 시간 하고도 삼십 분 만에 승인이 나서 겨우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수많은 검사를 하기 위해  응급실 안쪽으로 향하는 와중 바짝 마른 손이 나를 향해 힘겹게 인사를 한다. 아빠는 "우리 딸내미만 옆에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라는 말을 계속 우물거렸다.


속이 곪아 터지는 기분이 든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인데....

이렇듯 상처가 될게 뻔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져 내 속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아빠의 마음이 미웠으며 또 그것을 너그러이 받아줄 수 없는 내 소갈머리에도 화가 났다. 그러던 중 아빠의 병원이송소식을 알게 된 요양보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 병원 갔다면서요? 아유. 어떻게 해.. 결국 가셨구나, 안쓰러워서 어떻게 하누... 그래 잘 모시고.. 별일 있으면 연락해요.. 불쌍해서 어째.. 아이고 불쌍해라...."


별안간 더러워지는 기분에 통화를 서둘러 끝마쳐야 했다. 무언가가 메슥거리며 목구멍에서 얼씬대는 통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썬에게 연락했고 그제서야 내내 속을 막고 있던 오물 덩어리 같은 분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야, 오늘 아빠 보니까 완전 사람 꼴이 아닌데? 다리도 다 곪아 터져서 진물이 뚝뚝 흐르더라. 우리 요양보호사는 나한텐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병원 절대 보내지 말라고 해놓고선!!! 바지 벗고 다니기 시작하니까 무섭다고 병원 보내라고 손 딱 떼더니.. 막상 보내놓으니 지금 나한테 전화해서 또 불쌍하대 또!!! 뭐가 그렇게 불쌍한 건데!!! 불쌍은 내가 불쌍하지.. 시발 나만 개호로새끼야. 와중에 아빠는 나만 있었으면 이 꼴이 되지 않았을 거라고 계속 그러고 있다. 하!! 나만 보면 소리 지르고 욕하던 게 누군데.."


"말도 마. 우리 요양보호사는 아예 아버님 데리고 살라 그랬어. 그게 안되면 윗집 아랫집으로라도 살라고 하시더라. 별소리 다 들었어. 처음엔 자신만만하게 이 정도면 뭐 요양원까진 가실 정도 아니라고 맡겨두라고 하시다가 좀만 상태 안 좋아지심 당장 요양원이든 병원이든 모시고 가라고 재촉하고.. 그럴 때마다 어이없고 황당했지 뭐."


당시 나에겐 잠시 숨이라도 돌릴 수 있게 도와주는 도피처 같은 존재가 요양보호사였기에 신성불가침의 존재였다. 그래서 조그만 불만들은 대충 묻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아빠를 병원에 눕히고 나니 요양보호사에게 아빠의 입원을 도와달라는 것이 마치 큰 범죄라도 모의하는 것인 양 한없이 저자세였던 나와 불쌍한 노인 절대 병원 보내지 말라, 안쓰럽다고 쯧쯧 거리는 요양보호사가 대비되어 보였다. 그게 너무 슬프고 억울했으며 화가 났다. 그녀는 허락하지도 않았건만 아빠를 마음껏 불쌍해하고 있었으며 그 행동들은 내 선택들에 대한 부정과도 같았다.


'네 선택은 지금의 최선이 아니야' 


그것은 고민 끝에 -선택-버튼 누른 후 제발 내가 누른 게 맞는 것이기를 빌며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나에겐 무척 모욕적인 것이었다. 썬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하니 이런 상황들은 우리가 어리기 때문에 벌어지는 상황인가? 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우리가 젊기에 어설픔은 필연적이고 그것을 이유로 타인에게 올바른 효도를 가르침 당해야 하는가? 


'젊으니까 더 잘해야지.'

'젊으니까 모시고 살면 되지.'


우리가 만난 요양보호사들은 은근슬쩍 저런 뉘앙스를 섞어 우리를 대했고 첫 만남 때 느껴지던 위화감이 바로 이것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았다. 만약 우리가 중년의 보호자였데도 당연하게 모시고 살라 할 수 있었을까. 우리 앞에 깔려있던 수많은 서사를 무시하고 단순히 노인들이 불쌍해서, 안쓰러워서 너희들의 잔인한 선택을 철회하라.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대기실에 앉아 씩씩대다 초코우유를 한 모금 들이켜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오랜 공복과 긴장이 나의 감정을 더 날카롭게 만들고 있었던 듯싶었다. 어쨌든 우리는 아빠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계획이었고 요양보호사의 존재유무와는 관계없이 결국엔 저 상태가 되어 병원에 실려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말엔 힘도 없고 책임도 없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으므로 이 분노는 그녀의 몫이 아니다. 그냥 내 기분만 더러울 뿐.


"그래도 해볼 수 있는 데 까진 다 해봤으니 덜 후회될 거야. 너희 아버님은 집에서 드시고 싶으신 거 다 드시고 입원하시는 거잖아"


썬의 말대로 우리가 버둥댈 수 있는 시간을 준 것도 요양보호사이기에 주인을 잘못 만난 분노를 낚아채어 주머니에 꾹꾹 쑤셔 넣었고 곧이어 응급실에서 걸려온 보호자를 찾는 전화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아빠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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