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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북 May 22. 2023

우리 아빠들은 엑스맨이야.

심장이 전혀 뛰질 않으세요.



요양병원 입원 한 달이 지났다.


나는 새롭게 조우한 불안장애라는 장애물에 허우적대며 고군분투하고 있었으나, '도저히 못 모시겠으니 데려가라'라는 요양병원의 연락이 없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 여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보통이 아니시네요' 이후로도 ' 어르신이 밤새 소리를 지르셔서 저희 다 밤 꼴딱 새웠어요'는 둥의 피드백이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어느새 잠잠해졌고, 욕창이 생기셔서 메디폼 대자를 몇 장 사서 보내달라던지 자질구레한 용품들을 요청하는 것 빼고는 조용했으니 다행이었다.


아빠는 결국 체념을 해버린 걸까. 하루에 두세 번씩 아빠 좀 어떻게 해달라는 상급병원의 콜도 지긋지긋했지만 반대로 이런 고요함 속에도 서글픔이 묻어있다.


'아빠가 어떤지 좀 물어보고 싶은데..'


너무 많이 연락하면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한참을 고민하다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노인을 요양병원에 모신 보호자는 귀찮게 연락 자주 한다 찍혀서 혹여나 그것이 아빠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도 저어 되기 마련이다.


그 기간 썬과 나눈 우리의 대화 내용은 참으로 볼만하다.


"썬, 울 아부진 이제 아예 말을 안 한대. 뭘 물어봐도 답도 안 하고. 말 걸면 고개 옆으로 홱 저어버리고. 그리곤 밤만 되면 그렇게 소리만 지른대”

"야~너희 아버지는 꿋꿋하게 고성 한 우물만 파시는구나ㅋㅋ 우리 아버님은 아주 팔팔하셔. 폭력+난동+고성+똥칠 종합세트야.”

“한 분은 인지가 밝은데 몸이 안 좋아서 문제고. 한 분은 인지는 어두운데 너무 건강하셔서 문제네.”


말하자면 썬의 시아버님은 치매 말기 상태의 인지 수준. 하지만 아흔의 연세치고 너무나 건강한 육신이 비극이라면 비극일까. 따라서 치매라는 악마가 지시하는 모든 행동을 행할 수 있는 체력이 있으셨고(아주 많이) 그로 인한 사건사고가 잦았다. 우리 아빠는 그 정 반대다. 적어도 본인이 요양병원에 왜 들어왔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병원의 컨디션이 맘에 안 든다고 소리를 지를 정도시니 인지능력도 어느정도 괜찮은 편이었고 지남력도 들쑥날쑥 하긴 했지만 또렷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벌떡 일어나 배회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다리의 근육이 사라졌고, 무언가 던지거나 때리거나 하실 수도 없을 만큼 체력이 떨어졌으니 ‘육신에 갇힌 정신’이라는 문장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몸. 와상의 아빠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소리 지르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빠는 밤마다 우렁차게 소리를 질러댔고 옆자리의 썬의 시아버지는 신나게 똥칠을…. 이하 중략. 병원에게는 참으로 민구스럽지만 어쨌든 우리의 문제적 브라더스는 사이좋게 진정제도 맞으며 병원생활에 적응을 하고 계셨고 철딱서니 없는 며느리들은


“야, 우리 아버지들 엑스맨 같지 않냐. 우리 아빤 프로페서 X, 너네 시아버지는 매그니토 같아 깔깔”

“얔ㅋㅋ진짜 그렇네 ㅋㅋㅋㅋㅋㅋ 너네 아빠가 우리 시아버지 조종하면 병원 탈출도 쌉가능ㅋㅋㅋ”

“그니까!! 한 명은 두뇌를 맡고 한 명은 육체를 맡는다!! 완벽한 콤비 아니냐몈ㅋㅋ”


라며 낄낄대고 있었으니. 질책하지 마시라- 그것도 우리 나름대로의 ‘존-버’의 방식이니.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엑스맨의 프로페서 X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하지 마비 초능력자. 그리고 매그니토는 파괴적이고 불안정한 정신을 지닌 강한 초능력자 캐릭터로 나온다.)




그렇게 딸과 며느리, 두 아버지들의 시간은 힘겹고도 고요하게 흘러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썬의 시아버지께서 폐렴에 걸리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흔의 노인에게 폐렴등의 이슈는 더 이상 인력으로 생과 사를 결정할 수 없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저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썬은 조금은 불안하고 그 남은 자리에 가득 찬 애처로움으로 시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 무렵, 나 역시 아빠가 마지막으로 입원했던 ㅇ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요양병원에서 처방이 안 되는 약물을 처방받기 위해서다. 아빠가 입원했던 중환자실의 주치의와 마주 보고 앉으니 이번에도 나에게 ‘예후가 안 좋고.. 상태가 안 좋고….’라며 운을 뗀다. 불유쾌한 대화의 반복 재생은 나를 지치게 한다. 피곤한 얼굴로 끄덕이니 아빠의 심장초음파 영상을 보여준다.


“심장이 전혀 뛰질 않으세요.”


심장이 뛰지 않으면 사람은 죽기 마련이니 약간의 과장이 섞였으려니 하며 모니터를 바라봤는데, 직접 본 아빠의 심장은 정말이지.. 뭐랄까. 다 죽어가는 애벌레처럼 꿈찔꿈찔 거리고 있었다. 힘차게 두근두근 펄떡이는 것이 아닌 움찔 거리는 아빠의 심장은 정말 뛰지 않는다.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그마저도 자세히 들여봐야 뭔가 움직이는 걸 느낄 만큼 약한 기세였다.

심장에게 애처로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랬다.

요양병원에 누워있는 고성방가 민폐꾸러기 대머리 아빠가 아닌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심장이 너무 애처로워서 눈물이 났다. 뛰어보려고 하지만 뛰지 않는 그 미세한 박동으로나마 몸을 유지하고 있는 가련한 삶의 발버둥이 그토록 애달팠다.



딸, 그리고 며느리는 그들의 생과 사를 본다.

젊은 시절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멋대로 살았던 그들의 인생이 죽음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져 버리는 것을 본다. 생(生)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던 그들에게, 육체와 정신 어느 것 하나 맘대로 하지 못하게 돼버린 사(死)의 징후는 그 누구보다 가혹한 형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젠 그들을 향한 원망과 증오는 더 이상 없다. 무겁고 잔인한 형벌을 지고 가는 뒷모습을 그저 애잔하게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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