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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무원 친구

by 원호 Mar 25. 2025

10월 9일 한글날 아침. 혼자 쇼파에 누워 핸드폰을 뒤적거리고 있다. 네이버도 다음도, 심지어 물 건너 온 구글도 다 한글날을 축하하느라 모양도 바꾸고 글씨도 움직이고 난리인데, 나는 아침부터 마음이 찜찜하다.


10월 6일은 내 친구의 생일이다. 하필 친구는 아이디에 생일을 넣어 1006abcd 로 만들었고, 나는 그 아이디를 많이도 놀려먹고, 그 아이디로 메일도 많이 써서 잊혀지질 않는다. 그런데 막상 10월 6일에는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몇 년째 내 생일을 잊어버리는 친구에게 나 혼자 생일 챙기는게 갑자기 억울했다. 남편과도 안 해 본 밀당을 나 혼자서 하는 건지 이번 생일은 기억났는데도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 혼자서 이렇게 마음 불편해 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철부지 여고생인가보다.


메신저를 열어서 문자를 보냈다. 이렇게 계속 마음 불편하게 주말을 보낼 수는 없다.

“현진아, 오늘 벌써 10월 9일이네, 깜빡했다. 생일 잘 보냈어? 우리엄마 분당 이사오고 나서는 진짜 서울 갈 일이 없다. 그래도 우리 올 연말에는 꼭 얼굴 보자.”

“친구야…진짜 너무 보고싶어….ㅠㅜ”


그래, 애교 많은 딸 부잣집 막내 내 친구. 매일 연락한 것처럼 메시지가 오간다.

“나 지금 동 행사 지원나와서 교통통제하고 있어. ㅠㅜㅠㅜ”

“야. 진짜 너무 생각지도 못한 근황이다. ㅋㅋㅋ”

“아, 빨리 보자. 너무 보고 싶다. 나 진짜 너무 힘들어. 생일이고 뭐고 어제도 울고, 그제도 울고, 관두고 싶다.”


관공서 와서 욕하는 민원인은 너무 많아서 이제 미친년 정도 욕은 귀엽다는 내 친구는 길고 긴 수다 끝에 연말에 만날 약속을 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 했다. 그리고 자기 식 덕담도 잊지 않았다.

“그때까지 잘 지내고… 애들 절대 공무원은 시키지 말고… "


우리는 고등학교 3학년, 열아홉에 같은 반 친구로 만났다. 다들 날라리 인줄 알았지만 사실은 마음 착한 곰 같았던 내 친구. 수능 끝나면 편의점에서 꼭 컵라면 사 먹고 등교하자고 내가 습관처럼 말했었다. 7시까지 등교해야 해서 학교까지 뛰어가면서 우리는 편의점에서 컵라면 먹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다. 수능 다음날, 울면서 만난 우리는 컵라면을 먹지 못했다. 수능에서 짝수형 문제를 푼 내 친구는 홀수형으로 채점하고 엉엉 울면서 나왔다. 학교와서 그 사실을 알고는 표정이 좀 밝아졌지만 다시 채점 해보고는 “몇 개 차이 안 나는데…” 라는 말로 나를 웃겼다.


대학교 때도 우리는 자주 만나서 여고생처럼 깔깔거렸다.

그러던 친구가 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행복을 만드는 XX구청입니다.” 이렇게 전화를 받는 공무원. “네? 햄버거 만드는 데라고요?” 대부분은 이런 대답이었다고 하지만.


마흔 셋. 삶이 바쁘고 고단한 나이.


내 친구 교통통제 다하고 빨리 집에 가서, 따끈한 집에서 식구들과 된장찌개 한 그릇 먹고 힘내라. 그리고 만나서 서로 회사 욕하면서 스트레스 풀 그날까지 수다 떨 이야기들을 잊지 말고 잘 기억 해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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