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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듣고읽고본 것

by 원호

크리스마스 즈음 예원이 생일 케익을 샀더니 영화 티켓 1+1 쿠폰이 생겼다. 언제 영화 한 번 봐야지 하고 생각만 해오다가 이 쿠폰 덕에 실행력 있게 영화를 예매했다.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겠냐고 물었지만 3시간넘는 러닝타임에 질렸는지 안보겠다고 했다. 명준이하고 둘이 오붓하게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지호가 용기를 내서 영화멤버는 셋이 되었다.

22년 12월 31일 오후 3시 20분.

영화 시작 시간에 거의 딱 맞춰 영화관에 도착했다. 발권을 하고, 팝콘도 큰 걸로 두 개 넉넉하게 사고, 제로 사이다 두 잔으로 양심도 챙겨서 영화관에 앉았다. 이미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이 긴 시간을 지호가 잘 버틸지 걱정은 되지만, 오랜만에 보는 영화에 맘이 설렌다.


세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게 갔다. 영화를 오랜만에 봐서 그런건지, 정말로 훌륭한 오락 영화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걱정했던 지호도 잘 참았다. 내 앞에 앉은 커플도, 지호 옆에 앉은 아이들도 중간에 한 번씩 나갔다 들어왔지만 지호는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영화에 집중했다. 아직은 어른보다 키가 작은 지호를 위해서 어린이를 위한 받침을 의자에 올려주었는데, 다음에는 저것도 필요없어질 것 같다.


영화에는 행성에 사는 나비족이 아닌 사람 소년이 등장한다. 전쟁고아로 태어났는데, 캡슐에 타기엔 너무 어려서 행성에 남겨진 그는 주인공 가족의 아이들과는 형제자매와 같은 사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납치되고 나서 형제자매 같던 아이들은 그를 찾아나서거나 그리워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그 들 중 누구도.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큰 키의 파란피부의 나비족옆에서 작은 키에 머리를 마구 기른 그는 내 기억속의 한 사람을 찾아냈다.


성도 기억나지 않는 그의 이름은 에릭 수석이었다. 십년도 더 전인 그 때, 한동안 회사는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 경쟁사에서 연구원들을 경쟁적으로 모셔왔고, 그는 그런 분위기 속에 한국으로 넘어온 미국인이었다. 에릭수석은 세련된 이름과는 다른 외모의 사람이었다. 누가봐도 한국인의 외모인 그는 작은 키와 작은 체구에 굽은 등, 조금 큰 얼굴에 여드름 진 피부,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차별적인 이야기지만 그는 연구원이 아닌 회사에서 청소나 설비를 봐주시는 분으로 보일 때가 많았다. 그런데 한국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 사내 어학원에서 배운 한국어로 더듬더듬 "감사합니다"같은 간단한 한국어를 했지만, 그의 발음은 그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켰다.


내가 미국 연구소 회의에 참여할 일이 많아지면서 그와 나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면서 나는 "저 아저씨입고 있는 저 이상한 남방에 DIOR 이라고 써있는거 보고 기절할 뻔." 하는 식으로 그의 외모를 비웃는 것을 그만두었다. 뒤에서 사람들과 아무렇지 않게 나눴던 무례한 말들을 반성했다.


회의가 끝나고 가끔 함께 커피를 마실 때는 담담한 얼굴로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나는 늘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 지 고민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네 살때 목포였던가 전라도 어딘가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장애있는 아이는 한국에서는 입양이 어려워 외국으로 많이 입양되었다는 이야기를 TV에서 본 것도 같다. 평범한 중산층 백인 부모님 사이에서 자랐고, 아무리 바빠도 일년에 한 번 씩은 그분들께 얼굴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여느 자식들 처럼 이야기 했다. 한국에 온 뒤로 주말에는 성인이 된 입양아들 모임에 나간다고 했다. 시간이 오래 지나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만 그 모임에서 만난 입양아들 몇몇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실제 한국부모님을 찾았는지는 결국 물어보지 못했다.


에릭수석은 장애인이었다. legally blind. 정확히 어느 정도로 안보이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적인 빛이나 방향은 구분할 수 있다고 했고, 미국법으로는 맹인에 해당된다고 했다. 그의 한쪽눈은 그냥 보기에도 남들과 달랐다. 그는 일반 컴퓨터로 업무를 하다가 도저히 힘들어서 안되겠다며, 미국회사에서 그랬듯 본인의 장애에 맞는 특수 키보드, 모니터 등을 회사에 요구했지만, 회사에서는 그런 규정도 예산도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출처는 알 수 없지만 에릭수석이 까탈을 부리고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다는 뒷말도 돌았다.


이런 일들을 심심찮게 목격하면서 나는 그가 왜 한국에 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는 왜 낯선 이곳에 왔을까? 장애인에 대한 처우가 나쁠 줄 몰라서 어리석은 선택을 한걸까, 아님 경쟁사 임직원에게 제시한 높은 연봉때문에 낯선 곳의 위험을 감수한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낳아준 부모를 찾기 위해서 였을까? 그와 친한 B와 커피를 마시다가 이 이야기를 물었던 적이 있었다. B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미국에서 나와서 영어가 능숙해서인지 에릭수석과 가깝게 지냈다.

"에릭수석은 왜 한국에 왔을까? 일하기는 HP 가 더 나을 거 같은데. 언어도 그렇고. "

"결혼할려고 왔겠죠. 거기서는 너무 외톨이니까."


성의없는 그 말에 괜히 물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은 했다. 그는 주류가 되고 싶었던게 아닐까. 힘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물에 물감이 퍼지듯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자연스레 섞여들어가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B이었던가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본 에릭수석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오래 여기 머물지 않고, 다시 원래있던 미국계회사의 싱가폴 지점으로 돌아갔다. 재계약을 하지 않은 건 회사의 뜻인지 그의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작별인사 없이 떠났다.

몇 해 뒤에 우리 사업부가 그 미국회사로 팔리면서 나도 그 회사 직원이 되었고, 어느 날 기억속에서 에릭수석이 떠올라, 사내 시스템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이름은 기억나지만 성은 기억나지 않아서 시스템에서 검색된 모든 Eric의 사진을 확인했지만 그는 없었다.


항상 물에 떨어진 기름처럼 혼자였던 에릭수석이 지금은 기름 같은 사람들을 만나 잘 어우러져 어딘가에서 행복한 중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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