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반 근무 후 퇴사날의 기억
하늘이 높고 날이 맑았다. 벌써 5월이다. 걸을 때마다 가벼운 봄바람에 핑크색 주름치마가 맨다리에 경쾌하게 와 닿는다. 두꺼운 티셔츠 속 등에는 살짝 땀이 베어 아이스아메리카노 마시기 딱 좋은 날이다.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잘다녀오라며 현관에서 손을 흔들어주고 나도 바삐 길을 나선다. 오랜만의 출근길이다. 집앞에서 택시를 타고 고작 삼십분이면 족한 길이지만, 이 회사에 직접 오는 것은 오늘이 두 번째이다. 그리고 마지막이기도 하다.
오늘은 출근할때마다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노트북도 없다. 하루 종일 사람들하고 인사하기로 마음먹고 발걸음도 가볍게 손가방 하나 메고 왔다. 실은 이제 남은 업무도 없다. 어제 마지막 프로그램팀회의에서 공식적 인사와 인수인계도 마무리 했다.
새로운 건물은 북판교 금토동이다. 판교라고는 해도 새로 조성되는 타운에 먼저 입성해서인지 사무실 타운이 너무나 고요하다. "해고반대", "임금동결 왠말이냐", "무기한 휴직은 불법" 등 노조에서 건물바로앞 횡당보도에 내건 플랭카드만이 아우성 치듯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이제 막 새로 짓고, 이사를 마친, 깔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적막이 감도는 건물에 서둘러 들어서는데, 앗뿔싸.. 사원증이 없다. 마지막 출근에도 사원증을 챙기지 않은게 나답다.
사원증을 놓고 온 사람들에겐 반대편 데스크에서 임시사원증을 발급해주고 있었다. 오늘까지는 여기 직원이니, 당당하게 임시사원증을 목에 걸고, 처음 온 지하 실험실을 지나 오층으로 간다. 경기가 얼어 붙으면서 실험실 투자를 하네마네, 장비는 뭐를 넣네마네하고 한동안 시끄러웠는데, 결국은 이렇게 번듯한 실험실들이 생겼다. 그래도 커피숍하나 없는 새 건물은 어딘지 쓸쓸하다. 나중에 건물팔기 좋게 하려고 입점매장은 하나도 들이지 않았다는 흉흉한 소문이 마음에 남아 더 쓸쓸한 일층을 지나, 원가절감을 많이 한 것 같은 투박한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 자리로 간다. 먼저 출근해 있던 Y님과 간단히 인사했다. 나의 마지막 출근 길에 인사해주려고 들르신듯 하지만 특별히 내색하지 않으셨다.
S님도 출근해서 인사를 건네신다. S님은 아실까? 내 퇴사에 본인의 지분률이 꽤 높다는 사실을…
"S님, 이따 점심 같이 드실래요? K님하고 먹기로 했는데?"
"그래. 따로 두분이 할말 있었던건 아니고?"
"에이. 그냥 인사나 드릴려는 거지. 그런게 어딨어요."
"그래, 그럼 같이 먹자"
점심약속을 정하고 어색한 내 자리에 앉았다. 지난 주말에 미리 짐을 비운 나의 자리는 고요했다.
코로나가 갑자기 퍼져나가던 19년 12월말,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수 없어서 나와 진영이는 먼저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당분간이라는 마음이었기에 짐을 챙길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두어달쯤 지나, 20년 2월부터는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반드시 장비를 가지고 업무를 해야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열외는 없었다. 근무하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간혹 코로나 확진이라든가, 의심증상이 나서 격리가 된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었다.
어색하게 자리에 잠시 앉아있다가 전화로 약속시간을 확인하고, 일어나서 건물 앞 커피숍으로 갔다. 이사한 건물 입구의 바로 앞에도 큰 커피숍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굳이 다른 곳으로 갔다. 이사한 건물의 입구까지 미리 파악해서 인사과 사람이 낸 커피숍이라는 말을 들은터라 괜히 배알이 꼴려 커피 한잔도 팔아주기가 싫다. 언제나 그랬듯이 해준 거 없이 미운 인사과다.
곧 내가 앉은 작고 예쁜 커피숍으로 I선배가 들어오고 우리는 커피 두잔을 시켜 마주 앉았다. 나와 동갑이 지만 도톰한 맨투맨티에 청으로된 미니스커트를 입은 선배가 산뜻해보였다. 나는 대학교 때 1년 휴학을 해서 휴학을 하지 않고 바로 입사한 43기 1년 선배들과 동갑이다. 아직도 이전 회사 기수로 이야기하는 게 우습지만 몸에 벤 습관이고, 이 안에서 관계를 이해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옛날 사람들이 만나면 늘 그렇듯 우리는 옛날 이야기를 했다. 뜬금없는 소문에 시달리느라 지친 선배가 내뱉는 말이 안쓰러웠다.
"내가 그때 소문 얘기했었잖아요. 얼굴모르는 애 지나가면, 재도 뒤에서 수근거렸겠구나 싶어서 다 미워."
새로가는 회사에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언제부터 출근인지, 이런 것들을 물어보고는 응원도 잊지 않았다. "가서 빨리 자리잡고 나불러요." 나는 그러마하고 못미더운 약속을 했지만, 진심으로 이 선배와 다시 일하고 싶었다.
I선배와 헤어지고는 커피숍에서 나와 7층으로 갔다. 새로 지은 건물의 옥상에는 조경을 정성스레 꾸며놓았다. 나중에 간단한 조직활성화 행사도 할 수 있도록 꾸민거라고 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H차장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우. 너어무 오랜만이다. 잘지냈어요?"
과제 시작할 때만 해도 차갑고 쌀쌀맞았던 H차장은 사실 알고보면 살갑고 정많은 아줌마였다.
우리는 옥상에서 오월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작년에 미국에서 까탈스러운 VP가 출장을 올 때 품질 팀 사람들이 미리 선물을 준비해서 엄청 감동을 했고, 다음번 한국출장 올 때, 가방하나에 가득 차도록 한국 사람들 선물을 들고 왔단다. 우리는 을이고 지난 5년간의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어서, 본사의 높은 임원들이 올 때는 정말 최선을 다해 갑을 위해 일했다.
일하는 엄마의 공통 관심사는 당연히 일과 아이들이니 할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우리는 옥상에서 내려왔고, 계속 연락하자고 카톡연락처를 확인했다. 이제 회사 메신저가 되지 않을테니 어색하지만 친한 사람들과는 전화번호와 카톡을 확인하는 중이다.
서둘러 자리로 와서 목을 빼고 대표님 나오셨나 확인해본다. K님의 자리로 슬금슬금 걸어가서, 머뭇거리며 "가실까요?, 지금 괜찮으세요?" 했다. 오늘 점심은 대표이사인 K님과 먹기로 했다. 자주 출근하지 않는 분이지만 특별히 오늘은 내가 점심을 청해서 출근하신 듯하다. K님은 내가 신입일때, 시골아저씨 같은 얼굴에 핑크티를 즐겨입던 부장님이었다. 몇해 뒤 승진해서 전자의 상무를 거쳐 미국회사에 사업부가 매각되고 얼마지나지 않아서부터 대표이사자리를 맡았다.
K님과 S님과 함께 어색하게 요즘 안부를 물으며 근처 갈비탕 집으로 갔다. 새 건물로 이사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모두 주변 맛집을 잘 모르는 터라, 주로 간판이나 메뉴, 아니면 동료의 입소문을 믿는 수밖에… 금방 나온 갈비탕맛은 평이했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그동안 가본 근처 밥집 이야기도 하고, 오늘 시킨 메뉴 품평도 했다. K님이 계산을 하시고 나서 내가 죄송함을 목소리에 가득 담아 말햇다.
"커피는 제가 살께요."
"하하, 그래. 그러자."
K님의 경쾌한 대답과 함께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아까 I선배와 갔던 커피집이다. 이번에는 커피를 받아서, 밖에 앉았다. 5월의 날씨는 밖에서 기분좋게 커피를 마시기에 충분했다.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바로 길건너편의 노조원들 구호소리가 점점 커지는 느낌이다.
"OOO은 물러나라! OOO은 물러나라!"
뭐 왜 물러나야되는지도 앞에 외치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고, 대표인 K님이 물러나라는 말은 귀에 박히도록 선명하게 들렸다.
"OOO님 물러나래요."
S님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른 척 하기도 힘든 크기이기는 했다. K님은 얼굴이 빨개져서는 손을 머리뒤로 깍지끼면서 껄껄 웃었다.
"이 정도는 되야 셀럽이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이런 일들이 절대 익숙해지지 않고, 누구도 반갑지 않다. K님이 사무실 출근을 좀처럼 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회의를 들어오는데는 노조와의 껄끄러운 대면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리라. 그런데도 나와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출근해 준 것 같아 고마웠다. 2년지나고 다시 돌아오라는 말이 빈말이라도 고마웠고 든든했다.
K님은 내가 퇴사를 한다고 할 때, 바로 나에게 메일을 보냈다. 따로 회의를 한번 하자고, 왜 나가고 싶어졌는지 선배로서 들어봐주고 싶다고. 나는 그저 새로운 일을 해보려고 한다고 에둘러 말했다. 상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은 비겁했을지도 모른다. 끝까지 굳이 나쁜 사람이 되지 않고, 적당히 나는 갈 곳이 있으니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 그런데 내가 생각한게 답은 아닐 수도 있으니 굳이 다른 사람에게 말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변명할 수는 있겠다.
점심을 먹고 바로 노조 천막으로 갔다. 점심시간이 끝나서 이제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도 하나둘 천막으로 돌아왔다. 나와 과제를 같이 했던 사람들. 과제를 같이 안했어도 다 어떻게든 일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라 모두가 익숙하다. 쥬스한잔 마시면서 옛날을 추억하고, 지금을 씁쓸해하고 서로의 행운을 빌어주었다. 그 사이에도 노조임원인 내 동기도 천막으로 들어왔다.
"오빠, 이따 만나!"
내가 회사에서 오빠라고 부르는 몇안되는 사람들, 몇남지 않은 동기들이다.
동기들과 커피숍에 둘러 앉았다. 둘러앉았대야 너댓명. 14명으로 시작했던 우리 차수는 여섯만이 남았고, 이제 내가 떠나면 다섯만 남는다. 동기들하고는 그저 오랜만에 만나 일상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또 볼 것이므로, 특별한 인사는 하지 않는 걸로.
사무실에 올라가서 나랑 마지막까지 일을 함께 했던 Y님, S님과 커피를 한잔 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는 심의회 한다고 함께 12시까지 회의하던 Y님과 S님은 나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분들이다.
마지막 인사 메일은 쓰지 않았다. 아니라도 퇴사자가 많은 회사에서 누군가의 마지막 메일을 받는 것은 나를 불안하게 할 때가 많았으므로.
사원증을 반납하고, 다시 건물을 나섰다. 18년 반의 회사생활이 끝나고 나는 새로운 길을 앞에 섰다. 바람이 산들산들 좋아서 굳이 비장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년전 처음 그회사를 떠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 처럼 새로운 길이 꽃길이어도 아니어도 괜찮을 거라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모두의 인사를 마음에 담고, 새로운 길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