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통해서는 탈중심적 구조화가 가능할까?
게임은 원래부터 설계된 세계다.
어떤 행동이 가능한지, 누가 승자인지, 무엇이 옳은지 이 모든 것을 미리 결정해둔 공간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자유롭게’ 플레이하지만, 그 자유조차 사실은 개발자가 의도한 일련의 선택지 안에서만 허락된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게임에서 진정한 탈중심은 가능한가?”
“계획되지 않은 자유, 권위 없는 구조가 과연 설계될 수 있는가?”
아나키즘은 중앙 권위 없이도 질서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게임도 그런 식으로 디자인, 개발될 수 있을까? 이번 글은 바로 그 역설을 파헤쳐 보려 한다.
개발자/디자이너는 게임 속 세계를 창조한다.
그들은 환경을 배치하고, 장애물을 두며, 유저의 행동을 유도한다. 즉, 게임 디자인은 곧 보이지 않는 권력의 구조다. 유저는 자유롭게 행동하지만, 그 자유는 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제한되고 유도된다.
이 구조는 마치 철학자 미셸 푸코가 말한 “규율사회”와 비슷하다. 감시당하지 않아도, 벌을 받지 않아도,
사람은 스스로 규칙에 순응하게 된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강제하지 않아도, 유저는 시스템이 의도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구조에서 ‘탈중심적 디자인’은 거의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부 게임들은 이 구조를 교란하고 재해석한다. 유저가 규칙을 해석하고,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게임의 의미마저 다시 구성하게 만드는 기획. 이런 게임은 권위를 내려놓고, 유저에게 창조의 권한을 넘긴다.
1. 마인크래프트(Minecraft)
단지 ‘블록을 조작할 수 있는 세계’만 제공한다. 퀘스트도, 목적도 없다. 유저는 그 안에서 도시를 만들 수도, 파괴의 신이 될 수도 있다. 의도된 플레이가 사라진 곳에서, 유저는 스스로 크리에이터, 디자이너가 된다.
2. 드워프 포트리스(Dwarf Fortress)
극도로 복잡한 시스템만 존재할 뿐, 플레이 방식은 아무것도 안내하지 않는다. 죽음도, 혼란도 모두 플레이의 일부이며, 유저는 그저 해석할 뿐이다.
3. 디스코 엘리시움(Disco Elysium)
캐릭터의 정치적 사상, 철학적 성향을 선택하고, 그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선택지는 단지 분기점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해석의 방식이다.
이 게임들은 통제를 해체하거나, 권위를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아나키즘적 구조를 실험한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탈중심화된 구조를 설계하고 싶다면 개발자/디자이너는 어떤 조건을 고려해야 할까?
1. 목표 없는 구조, 혹은 다중 목표의 구조
하나의 엔딩이나 승패가 아닌, 유저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게 유도하는 구조이다. 샌드박스, 생존형, 또는 RPG형 자유 내러티브에서 흔히 나타난다.
2. 시스템의 해석 가능성 열기
정답이 아닌 해석이 가능한 시스템. 즉, 유저가 각자 다르게 읽고, 행동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설계이다. 오픈월드, 대사 선택, 유저 주도형 내러티브에서 가능하다.
3. 도구 중심 설계
콘텐츠가 아닌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유저가 세계를 스스로 구성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로블록스, Dreams, RPG Maker 등은 모두 이 철학 위에 설계되었다.
4. 정지된 권위가 아닌 흐르는 권위
디자이너가 규칙을 세우는 게 아니라, 유저가 규칙을 만들고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동적인 시스템이다. 특정 게임 모드, 서버 기반 커뮤니티, 유저 주도 밸런싱 등을 예로들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을 통해, 게임은 더 이상 폐쇄적 구조물이 아니라, 열려 있는 자율적 실험장이 된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게임은 중앙 권위의 기획 구조 위에 서 있다. 서사도, 시스템도, 인터페이스도 통제를 전제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그 틀 안에서도 질서를 풀고, 권위를 분산시킬 수 있는 여지는 존재한다.
탈중심화된 개발/디자인이란, 개발자/디자이너가 ‘존재하지 않는’ 게임이 아니라, 개발자/디자이너가 스스로의 권력을 제한하는 개발/디자인 철학이다. 유저를 창조자이자 해석자로 인식하고, 게임의 구조를 함께 만드는 협력적 구조물로 여기는 태도.
그게 바로 아나키즘적 게임 개발의 출발점이다.
게임은 모순적인 매체다.
그 자체로 규칙의 집합이지만, 동시에 자유를 체험하는 가장 역동적인 공간이다. 탈중심화적 개발/디자인은 그 모순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틈에서 새로운 실험을 제안한다.
“유저는 단지 따라야 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세계를 다시 쓰는 존재인가?”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통제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사상의 실험실로서의 게임을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