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다시 쓰기
현재를 살지 못하고 나는 항상 미래를 기대하거나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이것도 우리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던 나의 심리였다. 나에게 현재는 언제나 크고 작은 문제가 많았다.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고 항상 내 성에 차지 않았다. 아주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는 지금 상황 전체를 부정해버렸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나는 행복하겠지, 또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이 부분은 좋았는데 하며, 현재를 놓치고 있었다. 무드셀라 증후군, 기억 왜곡을 동반한 일종의 도피 심리, 향수에 젖어드는 일종의 퇴행 심리라고 한다.
내가 나의 이런 상황을 깨달은 시점은 내일이 더 이상 기대되지 않을 때 즈음이었다. 이곳에서의 나의 하루하루는 너무나도 똑같은 날들의 반복이었다. 이미 지나간 어제도 포장되고 오늘도 결국 어제가 될 텐데... 그리고 내일도 오늘이랑 똑같을 것인데. 아무리 과거를 미화해보려 해도 미래의 꽃길을 그려봐도 희망이 없을 만큼 무기력하고 무의미했던 그 순간, 그제야 현재가 눈에 들어왔다. 궁지에 몰려 더 이상 도피하지 못하고 나에게 지금 현재만이 남았을 때.
그리고 그때, 남편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겪지는 않았겠지만, 이런 깨달음이 없이도 자연스럽게 현재를 살아가는 이 사람이 신기했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바로 코앞에 있었던 현재를 오랫동안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는 작은 일에 전전긍긍하며 큰 그림을 놓치고 있었다. 아주 사소한 결점에도 마음을 닫고 , 아주 하찮은 이유를 대며 눈을 감았다. 정작 중요한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나는 여전히 지금, 여기, 이 순간을 탈출하고 싶어 한다. 허상의 무언가, 불가능한 어떤 상태, 존재하지 않을 그 어느 날을 쫓아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상상하는 완벽한 환경,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상황, 현재를 감내하지 않는다면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어쩌면 그게 지금일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인정하려 하지 않을 뿐. 지금 나의 상황에서 아주 작은 불만이나 아주 작은 유감이 미래로 과거로 회피하고 싶어 지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 이런 나의 상황이 나의 최선이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지금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민자들을 설명하는 클리셰 같은 표현이 있다. 그분들은 이민 올 당시의 한국을 기억하며 한국이 얼마나 발전하고 변화했는지 모르실 뿐만 아니라 생각을 바꿀 의지도 없다고. 50, 60년 대에 이민오신 이민 1세대 분들은 한국을 떠날 때 전쟁 직후 황폐했던 한국의 모습이 평생의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80, 90년 대에 이민오신 분들은 독재정치나 IMF 경제위기 만의 한국밖에 모르실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국인의 정을 기억하며 그리워하시거나, 그 당시에 당연했던 사고방식과 평생을 그렇게 해오신 습관들이 굳어지셨을 수도 있겠다.
내가 처음 해외 거주하게 된 년도는 2004년. 그 후로 한국과 해외를 왔다 갔다 했다. 나는 왜 한국에서 더 오래 살았는데도 양쪽 다 적응 못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을까? 내가 이곳에 적응하길 거부하는 건가? 나는 왜 한국에서 제대로 적응하지도 못했으면서 왜 이렇게 한국을 그리워할까? 한참 고민했었다.
그.런.데. 내가 딱 그런 상태였던 것을 깨달았다. 나는 2000년 대 초반의 한국을 그리워하며 계속 그런 세기말 + 밀레니얼 감성을 찾아 헤맸던 것 같다. 그 당시 유행했던 노래들, 패션, 시트콤, 그리고 농담까지. 아니 대체 왜 20년이나 지난 지금? 내가 가장 왈가닥이고 제멋대로고 그래서 나름 행복했던 그때의 한국에 빠져서 아직도 상황 파악 못하는 중인 건가? 나는 벌써 OB 가 되어가는 건가? 내가 늙은이라니...! 고인물이라니!
사실 한국에 가서 몇 안 되는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나는 겉도는 느낌을 계속 지울 수 없었다. 전학을 여러 번 했던 나와는 달리 그 친구들은 이미 같은 동네에서 20년의 세월을 보낸 친구들이다. 동네에 가게가 바뀌고 새로운 건물이 생기고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인생의 큰 변화를 모두 겪은 친구들. 그에 반해 내가 아는 그 동네와 친구들은 2000년에 멈춰있었다. 그래서 내가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 십수 년의 공백에 내가 이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은, 그 공간들은 그대로였는데 내가 잘못 느꼈던 것이다.
나의 기억에는 그 친구들과 내가 함께한 그 옛날 밖에 없었다. 물론 서로 소식을 전하고 안부인사를 하지만, 심지어 단톡방에서 매일 대화했던 친구들도 오랫동안 못 보니 실물로 만났을 때 약간의 어색함이 느껴졌다. 내 기억 속의 그 사람과 실제 그 사람과 분명 다른데. 그리고 나는 분명 실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존중하는데. 왜 아련한 기억 속의 그 모습이 그리울까? 그 친구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느낌에 뭔가 상실감이 들기도 한다. 사실 나도 많이 변하고 나의 취향도 선호도도 생각도 감정도 많이 변했다. 분명히 나는 매일 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체 왜 그랬을까?
수능, 대학, 취업, 결혼, 출산, 육아, 내 집 마련, 노후준비에 부모님께 효도까지... 한국에서 인정받는 인생의 정석을 모두 훌륭하게 겪어내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 물론 최선을 대했을 것이고 뼈를 깎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몇 살에는 뭐를 몇 살에는 뭐를 끊임없는 요구와 조건을 충족시키며 당당하게 사회적으로 능력을 인정받기가 어디 쉬운 일일까. 내가 친구들의 인생에 단계별로 함께 발전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매번 지름길을 가거나 샛길로 빠지거나 아니면 완전히 우회해서 다른 길로 가서 그럴까? 그 당시에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했는데, 그 길을 나 혼자 가려니 외로워서 그런 걸까? 왜 나는 가보지 못한 길을 계속 돌아보며 그리워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