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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Mar 19. 2022

16 사랑과 결혼의 모순

트라우마 극복하기

죽음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축복일 수도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가 없으면서 지혜가 있는 체하는 일이다. 죽음이 사람에게 좋은지 나쁜지 모르면서 마치 그것이 가장 나쁜 것이라고 알고 있는 듯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비난받을 무식이 아니겠는가? - 소크라테스


무려 2500년 전 소크라테스가 말하길 “너 자신을 알라” 즉 “너의 무지를 알라” 라고 역설했다. 그는 우리가 실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을 얻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더 많이 알고 더 빨리 알고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어 했는데. 결국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죽은 뒤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모습이 모순이라고 자신의 죽음 앞에서 말했다고 한다. 사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언젠간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것이 자연의 순리인 것인데.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였을까.




바람은 인격 살인이라고 한다. 살인당한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살아가는데 그 비통하고도 참담한 심정을 그 누가 알아줄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어떤 일에 마음이 아프다면 내 상태를 돌려서 뒤집어 본다면 내가 그만큼 그 사람에게 기대를 가졌고 그만큼 그 사람을 믿었고 그만큼 성심성의껏 노력했다는 증거이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그 당시의 상황들을 고려하여 그 순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가 나를 작정하고 속인 게 아니라. 내가 사기결혼당한 게 아니라. 그냥 그때 내가 몰랐다 끝. 그가 원래 그런 사람인지 몰랐다. 알았으면 결혼 안 했겠지. 몰라서 그 당시의 최선의 선택을 한 것. 그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애초에 나와 꼭 맞는 완벽한 상대만 만나려 한다면 그 관계에 낭만이 있을까? 냉정한 현실만을 두고 경제적 수치와 사회적 인식과 그 사람의 배경을 샅샅이 본다면 완벽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의 우리는 그런 조건을 뛰어넘을 만큼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그 당시에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기로 결정한 것이고 그것이 그 당시에는 내가 원하는 최고의 결과이자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내가 모르는 것도 모르는 상황도 아직 많겠지만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이해하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메타인지를 높이고 생각의 관점을 넓히면서 이전에 내가 처했었던 상황이나 앞으로 내가 맞닥뜨리게 될 상황에서 조금 더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힘든 감정싸움을 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릇이 작아 한 사람이 주장하는 의도와 행동을 아직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이 본 단편적인 나의 모습에 그 사람이 생각하기에 최선의 방식으로 한 행동이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한 사람의 지식과 경험은 자신이 살아본 삶에서는 진실인 것이고, 아직 더 큰 세상을 접한 적이 없어 다른 나라에서 온 나를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고 하는 중이라고 그렇게 그 사람 말을 믿어주고 싶다.




내가 나를 위해 궁극적으로 원하는 모습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면 그러면 행복할까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한데 마음고생 안 하고 좋은 면만 보면서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다가 뒤통수 크게 한방 맞으면 어떡하지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만족한 돼지가 지금 그 순간 행복하다면 돼지의 입장에서는 충분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동물들은 배고플 때 필요할 때 사냥을 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꽃을 즐기거나 햇빛을 받거나 하는 등 자신의 기분을 좋게 하는 행동을 한다고 하는데. 차라리 그게 나을까 매 순간 불안에 떨며 일어나지도 않을 일로 걱정을 하면 소용없는 일이니.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도 대비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나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대안을 세워놓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힘든 상황이 와도 내가 견뎌낼 수 있도록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나를 단련시키는 것이 나을까. 이렇게 고민만 하다가 좋은 세월 낭비하는 것보다 그냥 그 순간 걱정이 없다면 행복을 만끽하고 걱정이 생기면 그때 그때 숙고하는 것이 나을까?


나는 왜 행복에 이렇게 집착하면서 왜 스스로 행복을 누리게 마음을 놓지 못할까. 나는 여전히 무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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