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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Mar 19. 2022

19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물, 단무지, 효도를 잇는 셀프서비스




2020년 4월, 당시 나는 응급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삶에 의미를 찾지 못한 나는 자칫 쉽게 죽음에 대해 생각했지만, 사실 실행할 수 있는 용기조차 없었다. 그렇게 무의미한 한 달, 두 달을 보냈다. 처방받은 약은 생명유지장치처럼 밤에는 잠이 오게 해 줬고 낮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도록 해줬다.


천조국의 우울증은 스케일도 달라서 약물중독자도 많고 노숙자도 많고... 또 상상을 초월하는 인간관계도 많아 폴리아모리나 오픈 메리지 등등 모두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받으니까. 아무리 봐도 비정상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 정상인이라 느꼈는데 이곳에서는 내가 정신병이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그렇게 숨 막히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숨은 막혀도 나는 계속 숨을 쉬고 있었다. 일어나기 싫어도 아침이면 눈이 떠졌다. 삶은 계속된다. 나는 오늘도 살아있었다. 절망적이었지만 또 하루가 갔다. 그렇게 똑같은 날이 반복되었다. 


의사 선생님의 처방 하에 약물치료를 중단하면서 더 이상 그 선생님께 진료받을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처방은 이랬다.


Be realistic

Stay active

Take care of yourself


상담이 끝나고 이 처방을 받고 얼마나 허무하던지... 이 처방을 받으려고 그 비싼 상담료를 들였나? 이건 나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건데? 알고 있지만 할 수 없다고 느껴져서, 그만큼 절실해서 상담을 찾은 건데...?


더 자세한 내용도 있었다.


작은 일부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

고립하지 않고 주위 사람에게 상태를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중요한 결정은 잠시 뒤로 미루기.

시간이 걸리지만 분명히 나아질 것. 인내심을 가져라.

충분한 수면, 건강한 식습관, 정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약 복용하기. 알코올과 마약 금지.




그렇게 헛된 기대를 안고 상담을 여러 번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상담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걸. 상담에서는 단순히 길을 제시해주실 뿐이고, 결국 내가 극복해야 할 일이었다. 내 의지가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정말 소름 돋게도.


우울감에 허우적거렸던 것도, 우울증에서 빠져나와야 할 사람은 나였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하는 것도 나였고, 우울증을 극복해야 하는 것도 나였고, 감정적인 독립과 주체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도 나였다. 내 결혼이 행복하지 않다고 주저앉아 울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걸어 나가야 했던 것이었다.


누군가가 곁에서 나를 살뜰히 챙겨주며, 함께 영화도 보러 가주고, 외식도 나가고, 운동도 같이 해주고, 모임에도 데리고 가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아무도 안해주면 내가 해야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잘 될 수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상황은 좋아질 것이다. 내가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나의 감정은 풍부해질 것이고,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나의 세계가 커질 것이다. 




사실 인생 물 속 깊숙히 빠져서 숨 쉬기 조차 어려울 때는 아무 소리도 안들리지만 수면 위로 코만 빼꼼히 나와도 아 그 때 그런 의미였구나 하고 그 이야기가 이제야 들린다. 그런 수 많은 조언과 충고와 위로들은 소리로 울림으로 남아 이제야 내 귀속으로 들어온다.


인생은 셀프. 우울증 극복도 셀프. 그렇게 다들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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