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를 살아내야만 한다
결혼하면서 내가 남편의 나라로 이민 온 만큼 남편이 외국인인 나에게 책임감을 느껴주길 바랐다. 이민자로서 동양인으로서 차별과 위험에 매일 노출되니 이전보다 주의하고, 하루종일 다른 언어를 사용해서 소통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한국에서 가족과 친구, 직장을 떠나온 나의 희생을 고마워해줄 줄 알았다. 인지상정으로.
그.런.데. 개인주의 남편은 상상 밖이었다. 이민을 온 건 나의 선택이니 자신의 책임이 아니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자신의 의무가 아니고, 자신은 내 삶의 전부가 될 수 없다며 결혼 밖의 삶을 스스로, 알아서 찾으라고 했었다. 남편은 왜 나랑 결혼했을까? 남편에게 결혼이란 뭘까? 남편이 한국으로 이민 왔어도 이런 생각을 할까? 남편에게 나는 어떤 존재이지? 특히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재를 살아내야만 했다.
나는 지금 이곳에 살고 있다.
나는 지금 오늘을 살고 있다.
나는 지금 내 삶을 살고 있다.
아내에게 10년 간 복수심을 품고 살았던 남편의 사연이 방송에 소개됐었다. 시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기를 아내가 거부하여, 10년 후 장모님을 모시기를 남편이 거부한 것. 두 어머니는 쓸쓸하게 돌아가셨고, 부부는 이혼을 준비 중이었다.
나도 남편에게 복수를 상상했던 적이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남편이 한국으로 이민 와 살면서, 남편이 한국 문화에 적응 못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방관하며, 나는 내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상상. 어느 날 남편이 눈물을 보이며 호소하는데, 내가 “한국으로 온 건 네 선택이잖아? 나에게만 의지하지 말고 네 인생을 찾아봐! 네 행복은 네 책임이야~”라는 말을 하는 상상.
나는 그런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피가 쫙 빠지는 느낌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만약 나라면 그렇게 생각은 하더라도 차마 우는 얼굴에 대놓고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할 것 같다. 남편은 나에게 여러 번 상처 줬지만, 그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 알면서 그런 말을 해버리는 내가 더 이상 인간적인 삶을 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설사 남편에게는 타격이 전혀 없더라도, 내가 과연 그 말을 하고도 남편을 예전처럼 사랑할까? 나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을까?
언제든 이혼할 수 있지만 지금은 이혼하지 않기로 선택했다면, 내가 바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남편에게 복수를 꿈꾸며 10년의 세월을 마음속에 칼을 갈고 있을까? 남편의 인간관계를 다 망쳐버리고 남편에게 화풀이할까? 이게 정말 내가 바라는 결혼생활일까?
사실 나는 여느 신혼부부처럼 사이좋은 부부관계를 원했다. 우리가 결혼해서 행복하기를 바랐다.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의 꿈을 응원해 주고 도와주며, 함께 나이 들고 싶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추억을 만들고, 바보 같은 농담에도 배꼽을 잡고 웃어주는, 항상 손을 놓지 않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사이. 서로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지고, 나 혼자 있어도 언제나 곁에 있다는 든든한 느낌이 들 정도로 믿음이 두터운 사이. 그게 내가 바라는 결혼생활이었다.
내 인생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모두 내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복수를 하고 싶으면 복수하면 되고, 용서를 하고 싶으면 용서하면 된다. 화를 내고 싶으면 화내면 되고, 웃고 싶으면 웃으면 된다. 불행하고 싶으면 불행하면 되고, 행복하고 싶으면 행복하면 된다. 내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판단이어야 한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상관없이 내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내릴 판단이 어떤 것이든 옳을 것이다. 나 스스로를 믿어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원한다면 그것은 나의 결정이었다. 타인이 아무리 나에게 나의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고 평가해도, 내가 결혼을 유지하기로 선택했다. 타인이 나에게 앞으로도 계속 불행할 것이라고 나를 가엾이 여겨도, 그것 역시 내가 판단할 일이었다. 우리의 결혼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다른 결말이 펼쳐질 수도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결혼생활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내가 결혼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결혼생활을 해나가면 된다. 내가 평화로운 결혼생활을 원한다면 그것을 위해 하고 싶은 노력을 했다. 평화로운 대화를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대입해 보고, 평화로운 관계를 위해 안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나의 대인관계에서 나는 그렇게 변하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원하는 나의 모습이기 때문에, 만약 남편에게 효과가 없었다면 다음에 내가 만날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노력이 조건부적인 행동이 아닌, 내가 판단하기에 옳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하고 싶었다. 상대가 나에게 어떻게 대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남편이 나에게 상처를 줬다해서 나도 남편에게 똑같이 상처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한 번만 더 거짓말한다면 이혼이라는 반응적인 결과보다는 내가 이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이혼을 결정하고 싶었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적어도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지금 이 순간을 되돌아봤을 때,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고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도록. 상대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1. 대화
- 말하는 법
- 듣는 법
2. 감정
- 알아채는 법
- 표현하는 법
3. 현재
- 최선을 다하는 법
- 만족하는 법
4. 배우자
- 인정하는 법
- 존중하는 법
5. 행복
- 기대하는 법
- 허용하는 법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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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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