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Jan 24. 2023

개인주의 남편이 아내를 위해 하는 일

결혼이 원래 이런 걸까?




아침에 남편이 자고 있을 때 나는 출근했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남편은 집에 없었다. 혼자 저녁을 먹고 혼자 청소를 하고 혼자 잠에 들 때 즈음 남편은 들어와 혼자 밥 차려 먹고 혼자 설거지하고 새벽에 잠이 든다. 퇴근하고 돌아와 남편이 있으면 나는 카페로 나가거나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돌아와 씻고 바로 잠들었다.


우리는 외출도, 외식도, 데이트도 안 한다. 티비 시청이나 영화 감상도 스포츠 응원 등 그 어느 것도 함께 하지 않는다. 친구와의 약속도, 파티에 초대돼도, 여행을 계획해도 같이 가지 않는다. 전부 각자 한다. 따로따로. 어떤 날은 단 한마디의 대화조차 없었던 적도 많았다. 남편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의 결혼생활에는 생활이 없었다. 결혼은 했는데 생활이 없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같이 하지 않았다. 남편은 항상 시간이 없었다. 정확히는 아내를 위한 시간이 없었다. 숙면을 취할 시간, 본인 친구를 만날 시간, 자신을 위해 요리하고 운동할 시간은 있어도, 나를 위한 시간은 없었다. 밖에서 뭘 하고 다니는지, 집에서는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취직 준비의 기간은 길어지기만 했다. 남편은 아직도 준비 중이다.


나는 남편을 붙잡고 사정했었다. 하루에 10분 20분만이라도 서로를 위해 시간을 내면 안 되냐고, 주말이면 30분만이라도 함께 산책이라도 나가자고... 결혼하면서 남편의 나라로 이민까지 왔는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는 너무 외롭고 힘들다고. 그러자 남편은 나에게 대답했다. 자기한테만 의존하지 말고 결혼 밖에서 내 인생을 찾으라고. 타인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의무가 없다고, 각자의 행복은 각자의 책임이라고.


나는 남편에게 울며 호소했다. 그럴 거면 대체 결혼은 왜 했냐고! 왜 나랑 결혼했냐고! 나를 사랑하기는 하냐고!! 왜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냐고!!! 남편은 나를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대답했다. 자기가 꿈꿔왔던 결혼생활은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며 서로를 응원해 주는 그런 모습이라고 했다.




남편의 사랑


나는 우리를 위해 결혼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희생하며 이민까지 왔는데, 너는 대체 하는 게 뭐가 있냐고 물었다. 남편의 논리에 따르면, 남편과 결혼하기로 결정한 것도 나의 선택이며 남편의 나라로 이민오기로 결정한 것도 나의 선택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와의 결혼과 나의 이민이 가능하도록 자신도 필요한 절차를 진행했다는 것 자체가 노력했다는 것이라고...


개인주의인 남편은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다. 원래부터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인 나에게는, 그리고 우리의 결혼생활에서는, 약간 NPC 같은 존재로 남기를 바라는 것 같다. 남편은 남편의 인생을 플레이하는 것이고, 나는 나의 인생을 플레이하는 것이니, 각자의 인생 게임에서 접점이 있겠지만 결국엔 개인 플레이 하는...


남편은 자신은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나에게도, 결혼생활에도.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바뀌는지에 나의 행복을 걸지 말라고 했다. 내 행복은 나의 소관이니 나 스스로 행복해지라고. 자신은 나를 바꾸려 하지 않는데, 왜 나는 자기를 바꾸려고 하냐고. 나는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앞으로 변할 모습의 남편을 사랑하는 것 같다고. 자신이 얼마나 변할지에 조건을 달지 말고, 지금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그러니까... 개인주의 남편이 아내를 위해 하는 일이 있다면 그저 아내의 개인생활을 존중해 주는 것뿐이었다. 실제로 남편은 내가 일을 하던, 놀던, 모임을 나가던, 수업을 듣던, 게임을 하던, 봉사활동을 가던, 여행을 가던, 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아닌 나는 모임이고 뭐고 나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었다. 남편이 시간을 내주질 않으니 미치기 직전에 뭐라도 하는 거였다. 내가 원하는,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의 형태가 분명히 있는데, 그 사랑이 채워지지 않으니 너무나도 공허했기 때문이다.




Dog Cafe Tycoon




남편의 노력


NPC의 사랑을 받으려면, NPC가 줄 수 있는 사랑의 형태를 인정하고 그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NPC가 줄 수 있는 사랑의 능력치를 파악하고, 그 사랑을 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커피콩 위에서 뛰는 에너지 넘치는 강아지를 뜨거운 커피 붓는 일을 시키면 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만약 이 강아지를 다른 게임으로 보내도 기질에 맞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시키면 잘할 것이다. 몇 마일을 달려 편지를 전송하거나, 트레이드밀 위에서 뛰면서 전력을 만들어내거나 등등...


얼음을 퍼주는 강아지에게는 큰 수저가 필요하다. 만약 포크나 뒤집개로 바꾼다면 얼음을 못 퍼줄 수도 있는 것이다. 컨베이어벨트가 조금이라도 빠르게 또는 느리게 간다면 강아지는 그 속도를 맞출 수 있도록 연습할 수도 있다. 이 강아지는 차례대로 이동하는 컵에 격순으로 얼음을 붓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머그잔과 유리컵의 차이를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모를 수도 있다. 그 차이를 구분할 능력을 연습할 수 있겠지.


개 껌을 좋아하는 강아지는 개 껌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개 껌이 손잡이에 매달려 있지만, 개껌을 던져서 가져올 수 있도록 방향감각과 운동신경을 훈련할 수도 있다. 개껌과 비슷한 물체 중에서 진짜 개 껌을 분별하거나, 숨겨져 있는 개 껌을 찾는 후각을 발달시킬 수도 있다.




남편은 퀘스트와 아이템을 거부하는 플레이어다. 내가 이렇게 해주면 좋겠어 저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아무리 말해도, 자신에게 납득되지 않으면 절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외식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면 집에서 만든 음식이 더 좋다고 하고, 데이트를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면 집에서 이미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냐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너는 대체 나에게 해주는 게 뭐냐고, 나에 대한 사랑을 뭘로 표현하냐고 물어봤다. 남편은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해주고 같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나는 음식은 사 먹거나 내가 만들 수 있으니 차라리 요리할 시간에 나랑 시간을 좀 보내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아껴준 그 시간을 남편은 교수님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결국 나는 남편이 나를 위해 내가 원하는 시간을 내주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요리부터 뒷정리까지 최소 한두 시간은 걸리는 일을 남편에게 맡겼다. 그것이 자신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했으니까. 그래 네가 사랑을 한 번 표현해 봐라 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남편은 지금까지 몇 년간 장을 보고, 요리하고, 설거지까지 담당하고 있다.


물론 개인주의인 남편은 온전히 나를 위한 요리는 하지 않았다.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자신이 먹을 시간에 요리할 때 2인분을 만들어 나와 나눠먹을 뿐이었다. 남편이 외출해 있는 경우 저녁시간에 맞춰서 집에 오거나, 내 끼니를 챙기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남편이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요리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남편이 요리할 때 옆에서 대화하기도 하고, 남편이 설거지할 때 뒤에서 안아주기도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 남편에게 음식을 넉넉히 만들어 회사에 점심 도시락으로 가져가면 참 좋겠다는 말을 했다. 남편은 3인분을 요리했다. 브런치가 먹고 싶다는 말을 하면 팬케이크나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줄 때도 있었다. 과일을 깎아 냉장고에 넣어두기도 했다. 그러면 그 과일을 다 먹고 남편에게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말해줬다. 여기까지 오는 데 3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남편은 한결같았다. 장점도 단점도. 남편은 여전히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같이 먹어주지 않는다. 한식이 먹고 싶다고 하면 한식당 가서 먹고 오라는 말을 하지 같이 가지는 않는다. 일 년에 한두 번 내 생일이나 특별한 날 레스토랑에 겨우 간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우리는 따로 하루를 보낸다. 여전히 남편이 잘 때 출근하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남편은 나가고 없다. 다만 남편이 집에 있는 날에는 저녁을 차려준다. 내가 잘 준비를 하려고 누웠을 때쯤 들어와 본인의 저녁을 요리할 때 맛있게 된 음식이 있다면 침대까지 와서 꼭 한 입씩 먹여준다.



그게 남편의 최선이었다. 이 사실을 내가 인정해야 한다. 남편은 나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남편에게 최선을 다해 노력해 줘서 고맙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최선을 다해준 남편을 꼭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온 마음을 다해.


그리고 내가 결정해야 한다. 결혼을 유지할 것인가, 이혼할 것인가. 나의 선택이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실제 했던 노력들

1. 대화

- 말하는 법

- 듣는 법

2. 감정

- 알아채는 법

- 표현하는 법

3. 현재

- 최선을 다하는 법

- 만족하는 법

4. 배우자

- 인정하는 법

- 존중하는 법

5. 행복

- 기대하는 법

- 허용하는 법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s://m.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Contents.ink?barcode=480D211040150#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https://class101.net/plus/ko/products/DCNO3sPxKUBstRcB0ui9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8414149


이전 10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