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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개인주의 남편과도 행복할수 있을까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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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홍이 Jan 21. 2023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줘”

어쩌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일

내가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여파가 컸던 말이다.

“let me be”

나를 내버려 둬. 나는 내가 되고 싶어. 번역도 애매하지만 그런 느낌적인 느낌은 알겠다.

나는 사랑을 위해 너무나도 많은 노력을 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했던 사랑을 주는 방식이자 인생을 사는 태도였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학교에서 사회에서 노오력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우리는 여행도 빡세게 하고, 노는 것도 내일이 없을 것처럼 열심히 논다. 이제까지 살면서 아무것도 안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남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관심과 노력과 희생을 자처했다. 그런데 남편은 그냥 자기를 내버려 두라고 한다.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그게 자신이 바라는 결혼생활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할 수가 있지?

아무것도 안 할 거면 대체 결혼은 왜 한 거지?

인정하는 법

1. let it be

남편은 사랑한다면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해줘야 한다고 했다.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고, 고치려 들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내가 남편의 단점들을 고쳐주면서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려는 노력은, 자신이 바뀔 미래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지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자신은 좋은 사람,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한 차도남이 아닌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혼했다고 해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바꾸거나 친구에게 거리를 두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결혼했으면 가정에 충실하고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조심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는데...

남편은 나를 사랑하기에 나를 바꾸려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니 바뀔 준비가 되어있는데! 남편은 내가 자신을 바꾸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뭘 하든 상관없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맞춰가면서 서로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결혼을 원했는데!

남편이 원하는 사랑을 내가 줄 수 있으려면 나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야 했다.

내가 원하는 사랑을 남편에게 받을 수 있으려면 남편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야 했다.

우리는 결혼해서는 안 되는 관계였을까?

그러다 깨달았다. 전제가 잘못되었다. 우리는 사랑을 주기만 하고 있었고 아무도 그 사랑을 받고 있지 않았다.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주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을 사랑을, 어쩌면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사랑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둘 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방법이 다를 뿐 사랑하는 건 같았다. 그래서 나는 주는 사랑보다 받는 사랑을 선택했다. 나는 결혼 생활에서 사랑받는 아내가 되고 싶었으니까, 남편이 사랑하는 방식을 인정했다.

2. let it shine

사랑을 못 받아본 사람은 티가 난다는 말, 나는 그 말이 정말 싫었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어야 사랑받는 티를 내지. 자기가 사랑 줄 것도 아니면서 박탈감 줄 거까지 없지 않나.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사랑 못 받은 티를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에 대한 나의 평가는 무조건 교수님과의 사건에 머물러 있었고, 그 자체로 이미 -1000을 찍었다. 내가 그만큼 상처받았으니까. 남편이 아무리 자기 나름의 노력을 해도 내 마음은 짜게 식어 있었다. 내가 얼마나 더 많이 희생하고 얼마나 더 많이 노력했는데! 고작 이거 해줬다고 교수님과의 사건이 없어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만큼 우울했고 그만큼 불행했다. 주변 사람들이 정말 좋은 남편이라고 칭찬하면 꼬박꼬박 반박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은 남편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나는 그 소리가 너무나도 듣기 싫었다. 남편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부부 사이의 일에 왜 남이 왈가왈부하는지, 이미 상처받은 나에게 그들은 2차 가해자처럼 느껴졌다.

나의 그 피해의식은 너무나 짙게 깔려 있어서, 어느 순간 나 스스로가 섬뜩했다. 남편과 교수님이 어떤 연락을 주고받았었는지 알리고 싶은 충동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의 심리상태는 너무나도 어둡고 불안한데, 겉으로만 보면서 나와 나의 결혼 생활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써도, 나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다른 사람에게 뭔가 불편함을 느끼게 하거나, 대화하기 어렵게 만든 것 같았다.

내가 묘사하는 남편은 언제나 부족하고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남편은 나와 같이 있는 것보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고 인정받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남편에게 항상 칭찬만 해주고 남편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전부 들어주는 사람을 찾은 거였다.

나는 그동안 남편에게 제대로 된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생각됐다. 남편이 개인주의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 역시도 자기중심적이기만 했었다. 내가 원하는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그 사랑을 받지 못하니 티를 냈던 것이다. 남편이 사랑을 주는 방식으로 사랑을 받고, 내가 받은 그 사랑을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했다. 남편이 남편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우리의 결혼생활이 그 환경이 되어주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