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지도 않은 내용이 시험에 나와 부진아 취급을 받는다면
거주 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제3문화아이들, 같은 한국아이라도 조금은 정서가 다를 수 있어요. 전혀 다른 문화에서 그곳의 또래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노력하다가, 다시 돌아온 한국은 그 아이가 떠나온 한국과는 또 다를 테니까요.
조금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렸을 때 잠깐 외국에서 살다 온 중학생 아이가 한국 학교에서 중간고사 영어문제를 틀렸대요. 영어 지문을 읽고 알 수 있는 교훈을 한국 속담 중에서 고르는 객관식 문항이 있었는데, 영어 지문은 모두 이해했지만 한국어 속담을 몰라 풀 수 없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 아이의 주변 어른들에게
“네가 무식해서 그렇다.”
“너는 한국인이, 그것도 중학생이나 돼가지고, 이 속담 하나를 모르니!”
“교과 학습 부진과 기초 학습 부진 있는데, 속담은 기본적인 상식이니 기초 학습 부진이야. 네가 부진아 되는 거야.”
라는 말을 들었대요.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에서만 거주하시고, 한국의 교육 과정만을 겪은, 그런 어른들의 눈에는 우리나라 속담 정도는 당연히 알아야 하는 상식일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한민족, 단일민족으로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역사가 있어요.
한국에서 살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한국인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지
한국을 좋아한다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한국인과 어울리려면 이 정도는 당연하지
같은 전제가 흔하게 화자 되기도 해요...
교육과정은 초중고까지의 의무교육으로 교과서나 학습 내용도 획일화되어 있고, 한국 교육과정만을 모두 이수하는 학생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각 학년마다 단계별로 완성하는 학습 목표가 있잖아요.
이런 경우, 귀국학생처럼 다른 교과과정을 이수한 학생이 어떤 부분에서는 낙오되는 일이 생기기도 해요.
그런데...
배운 적이 있었더라면 이 아이도 분명 알았을 거예요. 문제도 풀 수 있었을 거예요.
영어 시험이지 한국 속담 시험이 아니니, 이 아이는 영어 지문은 이해했으니까요.
속담을 몰라서 문제를 못 풀었다고 용기 내 엄마께 고백했는데, “네가 무식해서 그래”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상처일까요.
영어 지문은 이해했다고 용기 내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속담을 모르는 건 기초 학습 부진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어요.
이런 생각이 조금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학생이었다면 너무 상처받았을 것 같거든요.
"(알려주지 않아도) 네가 당연히 알아야지."
시험에 나올 내용이면 학생들에게 시험 대비해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하고,
한국인이라서 당연히 알아야 할 내용이라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줬어야 하죠.
우리의 진심은 학생이 무식하고 부진하기를 원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의 진심은 학생이 잘 배워서 사회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가 되도록 도와주는 거잖아요! : )
"네가 외국에서 살다 와서 속담을 잘 모르는구나. 이번 기회에 한 번 제대로 배우면 좋겠다"
속담 때문에 문제를 틀렸다면 무식하고 부진하다고 낙인찍는 것보다,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모르는 걸 알려주는 게 교육이잖아요. 아이가 아무리 '어렸을 때' 외국에서 '아주 잠깐' 살다 왔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그 선생님도 당시 잘 몰라서 그러셨을 거예요. 외국인 수가 적은 지방이나, 해외거주자가 주변에 없는 경우, 한국인들만의 공동체라면, 사실 귀국학생에 대한 이해를 못 할 수도 있죠. 선생님도 학생도 처음 겪는 상황에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어요.
만약 재외국민 특별전형 학원의 선생님이셨다면, 귀국학생들 위주의 교육과 입시 관련해서 전문적으로 알고 계셨을 거예요. 저희가 학원에 등록하면 국어 수업에 맞춤법, 띄어쓰기 등의 국문법과 속담, 사자성어 암기 목록, 역사와 국문소설 요점정리까지, 전부 다 배우거든요.
한국으로 돌아온 한국인 아이들도,
한국에 사는 외국인도,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도,
한국계 혼혈인 사람들도,
한국인과 친하게 지내는 모두가
다양성을 존중받고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고 융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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