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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Aug 26. 2023

약간 한국말이 서투신 것 같아요

0개 국어 능력자? ‘언어’는 하지만 ‘말’은 못합니다.





이상적


으로는 제3문화아이들에게 모국어와 영어, 그리고 현지어까지 다중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3문화에서 국제 공통어로 사용한 영어 역시 원어민에 가까운 수준을 갖추지 못하며, 모국어 역시 상당 부분 잊어버리게 되는 상황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또한 현지 문화에 적게 노출된 경우에는 현지 언어 역시 기대보다 학습이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그 이상적인 다중 언어 실력에 반해 실제 모국어를 포함한 모든 언어에서 학습적으로 평가했을 때 중급 정도의 수준에 머물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그들의 모국어에도 결코 능숙해지지 않는다는 다중 언어 학습과 관련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이끈다 (Pollock & Van Reken, 1999) 는 우려도 많습니다.




언어


는 문화를 담는 그릇, 역사의 거울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만큼 언어는 우리의 생각과 세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제3문화아이들이 그들만의 문화 내에서도 각기 다른 소속감과 사회화의 정도를 느끼고, 그 중심에는 공통어로 사용되는 언어 실력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제2언어로서 영어 습득 또는 학습의 중요성과 그에 따르는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 있어요.


민감하고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이 또래집단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겠죠. 어쩌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보다는 친구들 사이에서 받는 사회적 압박이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새로운 문화로 동화하기 위해 가장 핵심인 부분은 제2언어의 학습입니다. 그리고 모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이 모여, 현지 언어보다 더욱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될 언어는 국제 공통어 Lingua Franca 인 영어가 됩니다.


여기서 외국어가 아니라 제2언어라고 칭하는 이유는 능통한 모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더해서 외국어로 학습하는 환경이 아니라, 모국어도 습득 중인 과정에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새로운 언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더하여 대부분의 구성원이 영어 역시 모국어가 아닌 제2언어로서 습득 또는 학습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표준화된 언어보다는 실용적인 사용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각기 다른 언어에서 단어를 빌려오거나, 비문법적인 문장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거나, 해당 집단 내에서만 통하는 유행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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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를 배울 때, 우리는 각 언어에 어울리는 또 다른 인격을 형성합니다. 언어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화와 정서도 함께 학습하게 됩니다. 제3문화아이는 모국어, 현지어, 공용어까지, 이렇게 세 가지의 인격과 그에 적합한 정체성을 습득하게 되는 거죠.


언어 학습은 모든 제3문화아이들이 극복해야 하는 가장 도전적이고 힘든 경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언어 습득의 면에서 어른보다 더욱 효과적이라고 여겨지지만, 필연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갈등과 제2 또는 제3언어의 자아나 성격으로 인해 혼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이중언어 구사자, 또는 다중언어 구사자들은 언어 전환 (code-switching) 이 일어날 때마다 자신의 다른 모습이 불려 나오는 느낌일 수 있습니다. 저도 한국어로 말할 때와 영어로 말할 때, 성격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느낌을 받아요. 예를 들어서 한국어로 대화할 때는 더욱 보수적이게 되고, 영어를 사용할 때는 조금 더 자유로운, 열린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제 마음을 저도 모르겠는 상황이 많아지고, 저희 남편도 갑자기 달라지는 저의 반응에 당황하기도 해요.




자아


는 매우 역동적이고 유연합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언어 습득과 자아 형성은 무리 없이 적응될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차이에 따라 사춘기의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변화가 동시에 방어적 메커니즘을 낳는다’(Brown, 2001) 고 볼 수도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주로 청소년기에 새로운 문화에서 새로운 언어를 습득해야 하는 제3문화아이는 언어 자아가 약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모국어의 보안에 매달린다’ (Brown, 2001) 는 경우도 있고, 취약감, 방어력, 억제력 제고를 일으키기 때문에 종종 제2언어를 배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언어 자아와 문화적 정체성을 재구성하도록 강요받으며,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사회와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감각을 정리하고 재구성’ (Norton, 1997)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모순된 방식으로 다면화되어 있다.’ (Miller, 2000) 고 합니다.




언어상대성


이라는 이론으로 명성 있는 Lera Boroditsky 박사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고 형성한다’ (How language shapes the way we think) 고 하였습니다. 똑같은 사건을 설명할 때에도 문법이나 문장 구성에 따라 판단의 경중이 달라지며, 결과적으로 그 사건에 대한 기억과 해석에 영향을 줍니다.




특히 목격자의 증언과 같이 사실여부가 관건인 경우,  각각의 목격자들이 중요하게 기억하는 부분이 언어에 따라 다른 연구 사례도 있습니다.


영어의 경우 주어가 필수인 문법이기 때문에 모든 문장에 어떤 행위의 주체가 중요하게 표현됩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누가 그랬는지를 더 잘 기억하는 것이죠.


스페인어나 일본어의 경우 목적어가 강조되어 수동태 문장으로 더 많이 표현한다고 합니다. 누가 그랬는지 보다는 사건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영어구사자가 범인식별절차에서 범인의 생김새를 더 정확하게 기억했다고 합니다.


한국어의 경우에도 주어나 목적어가 의미상 분명한 경우 생략 가능합니다. 이를 주어가 강조되는 언어 (예를 들어 영어) 구사자가 들었을 때에는 문장의 주체가 모호하여,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요.




따라서


제3문화아이와 그들의 정체성은 어린 시절 내내 형성되고 협상되며, 각기 다른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다른 역할로 전환됩니다. 그들은 한 개인의 위치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재구성하며 말하고, 읽고, 쓸 수 있는 대안적이고, 더 강력한 정체성을 주장하여 언어 습득을 향상할 수 있다’ (Norton, 2013) 고 합니다.


제2언어의 사회적 규범, 선호도 및 기대치에 대해 상충되거나 양면적인 감정을 경험할 수’ (Duff, 2007; Mori, 2004) 있으며, 특히 언젠가는 본국으로 귀국해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본국 문화로의 재동화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해외


경험이 많으면 한 국가에서만 나고 자란 사람보다 자연스럽게 언어 실력이 향상하겠죠. 하지만, 학술적인 언어 실력의 의미보다는 조금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정서의 차이입니다.


<결혼지옥> 이라는 프로그램의 오은영 박사님께서 한 부부의 갈등을 분석하시며, 남편분께 한국말이 서툰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해외에서 선수 생활을 오래 하신 남편 분은 어떻게 보면 제3 문화 아이의 정체성을 갖고 계시는 분이에요. 모국어 실력이 의사소통에 있어서 능력의 부재가 아니라, 즉 공감을 못하거나 생각이 많이 다른 게 아니라, 미묘한 뉘앙스의 언어적 정의가 다르다고 설명해 주셨어요.




언어


로 대화한다는 행위는 언어뿐만 아니라 그 언어가 통용되는 문화의 사고방식, 소통방식 감정표현 방식, 행동방식,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방식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the principle of language ego)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외국어를 완벽하게 원어민처럼 구사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정서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의 기술적인 면, 문법이나 발음, 어휘 등은 완벽하게 마스터했다 하더라도, 원어민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완벽하게 답습하기는 불가능할 거예요. 개인차도 물론 존재하겠지만, 문화적으로도 선천적이고 내재적인 차이가 분명하기 때문이죠.


그 미묘하고 섬세한 차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위의 예시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도치 않게 오해가 쌓여가고, 정서적으로 지지해 줄 수 없게 되는 상태까지 치달을 정도로 말이죠.


제3문화아이는 제1 문화, 국적, 그리고 언어가 분명합니다. 해외에서는 외국인이라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의 차이를 예상할 수 있지만,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어려움을 느낄 수 있어요. 특히 같은 한국인인데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많을 거예요.


이는 갈등이 없어야 했을 상황에 갈등을 만들 수도,

갈등이 될 만한 상황에서 적절하게 대처할 수도 있는


관계에서 감정의 벽을 만리장성으로 쌓을 수도,

오해를 할 만한 상황에서 유연한 해결책이 되어줄 수도 있는  


어쩌면 지구촌 시대에 무척이나 필요한 '스펙'이 될 수도,

또는 누군가를 눈치 없는 사회 부적응자나 또라이로 만드는 '프레임'이 될 수도 있는 대단한 능력입니다.





결국


아예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입을 닫아버리게 되기도 합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조차 잃어버리게 되기까지 해요. ‘언어’는 하지만 ‘말’은 못 합니다. 반대로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여러 언어로 소통하면서, 각각의 언어로 적절하게 표현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어요. 문화 차이를 나에게 유리하게 활용하여 나의 무대를 세계로 넓혀갈 수도 있을 거예요.


언어를 배우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내가 하고 싶은 말’ 입니다. 언어란 기본적으로 소통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의 문제이죠. 사랑과 관심을 표현할 때에도, 토론에서 의견을 피력할 때에도, 갈등이나 불만을 제기할 때에도, 억울함을 호소할 때에도... 모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내 말이 누군가에게 들려졌을 때, 언어 효용성이 높아지며 언어 실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거예요.


그 소통이 상대에 따라, 예를 들어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이나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에 따라, 방식이 굉장히 달라집니다. 모국어를 타국어로 통번역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에 맞게 예의를 갖추고 듣는 사람에게 오해의 소지가 없게 그 언어에 맞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 그리고 상대의 의도도 꼬아 듣지 않고 적절하게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죠.




제가


한국어로 계속 글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해외생활을 하면서 새롭게 배운 교훈과 가치관을 글을 쓰면서 잘 소화시키고 내재화시켜, 다중 언어로 인한 다중 인격을 하나로 통합시키고자 하는 노력이에요.


제가 갖고 있었던 생각과 감정들, 저의 모국어에서 발생한 사고방식 역시 전부 이해하고 인정하며,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생각들, 깨어있길 바라는 가치관들, 더욱 발전시키고 싶은 발상들에 한계를 두지 않고 저의 것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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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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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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