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정답에 속하지 않아
으로 엄마가 아이와 놀아주는 실험을 보여줍니다.
서양의 엄마는 아이와 놀면서 명사를 주로 사용한다고 해요.
“그건 어떤 종류의 특별한 트럭이지? 이런 트럭은 뭐라고 불러?”
“몰라요. 이건 모래가 아니라 물이에요.”
“그럼 그 물은 오렌지색 물이니? 아니면 파란색 물? 초록색 물?”
“초록색 물이요”
“그걸 어디로 가져갈 거야?”
“병원으로요”
“병원?”
“네. 왜냐하면 이것은 약이 되는 물이거든요.”
“아, 약이 되는 특별한 물이구나.”
동양의 엄마는 동사를 주로 사용한다고 해요.
“그럼 이제 우리 오늘 뭐 할 거야?”
“삽으로 푹 푹 푹 이렇게 뜨는 거야.”
“엄마는 이거로 흙을 떠서 콕콕콕콕 담아가지고 엎어버린다!”
“이제 뭐 할 거야 그거로? 엄마 밥 해줄래? 맛있는 밥 해줘. 거북이 밥, 꽃게 밥.”
한 아이가 태어나서 부모님이나 양육자와 처음으로 하게 되는 소통 방식에서도 동서양의 차이가 나타난다는 사실이 정말 흥미로워요.
니스벳 교수가 들었던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미국의 슈퍼마켓에 갔더니 엄마들이 아이에게 '이게 뭐니?' '사과요' '저건 뭐니?' '오렌지요' 하는 식으로 명사로 대답하도록 가르치는 걸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번엔 미시건 대학교의 한 언어학자가 중국에 가서 중국인 엄마와 아이가 말하는 방식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동사가 많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앉아, 먹어, 뛰어와 같이 행동을 요구하는 동사를 많이 썼다는 것이지요. 왜 이런 문화 차이가 있는가 하는 흥미로운 질문이 생기게 되지요.
펄 카이핑 l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의 차이가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언어선택의 차이처럼 보여도, 그 안에 굉장히 중요한 시사점이 들어있어요. 동사는 명령문으로 사용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동사 위주로 놀아주는 경우, 아이에게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명령하는 것 같이 들리기도 해요.
‘놀이’에도 정답이 있는 거죠. 모래놀이 교구이니, 삽으로 모래를 퍼서, 모형틀에 담아서, 뒤집어 엎어서, 정해진 모래 모양을 만들어야 하는 놀이인 거예요. 그게 저에게는 정답을 주입하고, 나의 행동을 규제하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예전에 어린이 센터에서 봉사활동 하면서, 정말 다양한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봤어요. 짧은 시간이지만 만약 아이가 있다면 이럴 것이라는 간접체험을 하게 되는데, 만약 제가 아이와 놀아준다면 어떻게 놀아주고 싶은지 고민하게 됩니다.
안전하게 장난감을 사용한다는 전제 하에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창의적으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놀이라면, 어떻게 놀아주는 것이 좋을까요?
그 장난감으로 어떻게 놀 지를 아이의 선택으로 남겨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장난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장난감으로 어떻게 놀고 싶은지, 모두 아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아이는 훨씬 더 재밌게 놀이를 즐길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트럭으로 하늘을 날수도, 약이 되는 물을 운반할 수도, 거북이와 꽃게가 뛰어놀 수도 있는 거죠.
아이가 재밌게 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의 정도, 안전하게 놀려면 이렇게 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알려주는 것의 정도, 그 미세한 부모의 차이에 따라 아이들의 행동이 결정되는 것 같아요.
을 배울 때에도 저는 이런 차이를 느꼈어요.
한국 학원에서는 정확한 동작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자세를 하나하나 교정해 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그런 선생님의 세심한 관심이 아주 감사했어요.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최대한의 효과를 받아갈 수 있도록, 선생님께서 열정적으로 수업하시는 거라 생각해요. 이왕 시간 내서 운동하는데, 제대로 정확히 확실히 배우면 좋으니까요.
그런데 미국 학원에서는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주시고 말로만 설명하셨어요. 어떤 동작을 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기 때문이 어느 정도로만 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만, 수강생에게 직접적으로 자세를 고쳐주지는 않았어요. 각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만큼, 자유롭게 운동을 하게 두는 분위기였어요. 물론 수강생이 선생님께 여쭤보면 교정해주시기도 했어요.
차이가 어느 방식이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에 맞춰서 적절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놀이나 운동의 목적이 안전을 위해 규칙을 가르쳐야 할 때는 단호하게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마음껏 재미있게 놀 수 있으려면, 창의성과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겠죠.
의 정답이 있어서 그 정답만을 위해 일한다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이 가능할 거예요. 경제 발전이나 기술 발전, 공공시설 등 사회 전반적인 상향 평준화가 가능하죠.
전국 어디서든 빠른 속도의 인터넷 보급,
지하철 스크린도어 설치,
깨끗한 수세식 공용 화장실,
공교육 의무화와 사회복지 등등...
모두 우리나라이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입니다.
만이 강요되는 사회,
정답이 없는 사회,
정답이 있어도 강요하지 않는 사회,
전부 다른 정답이 있는 사회...
아마 어떤 사회든 그만의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제3문화아이 뿐만 아니라 누구든 어느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이동하면서 약간의 혼란을 겪을 수도 있어요.
철썩같이 믿었던 어느 한 사회의 정답이 다른 사회에서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강압적인 환경에서만 자랐다가 자유로운 사회에서 문화충격을 받을 수도 있고,
선택을 존중받는 환경이 당연했는데 매번 부정당하는 경험에 위축될 수도 있죠.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성장발달기에 그런 경험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시킬 수 있을지 아이들과 꾸준하게 대화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른으로서 모범을 보여줄 수도 있고, 아이 스스로의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고, 선택에 따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줄 수도 있어야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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