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킹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된다고 했던가. 거의 30년을 따로 살아온 사람들이 결혼했다고 한 공간에서 한 평생을 함께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 마음고생 등등 이 소비된다.
그런 갈등은 대부분 치약짜는 방법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쌓이고 쌓여서 터지게 되는 것 같다. 치약을 어디서 짜는지 양말을 어떻게 벗어놓는지 설거지 후 뒷정리를 어떻게 하는지 등등등 셀 수도 없을 것이다. 음식을 먹더라도 맛있는 거 제일 먼저 먹는 사람 아니면 맛있는 것을 제일 나중에 아껴두었다가 먹는 사람이 다르듯. 나와 다르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서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왜 내가 한 음식을 더 맛있게 안먹어주는지, 음식이 입에 안맞는지 서운해하지만 정작 상대방은 맛있기 때문에 아껴먹기 위해 남겨두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치약을 아래쪽부터 짜는 사람은 계획적이고 배려깊고 미래 지향적인 성격, 치약을 중간부터 짜는 사람은 즉흥적이고 낙관적이며 현재를 즐기는 성격.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치약을 밑에서부터 짜라고 하루에도 열두번 잔소리를 백일동안해도 결국 스트레스 받는건 치약을 밑에서 짜는 사람일 뿐. 중간부터 짜는 사람은 모른다. 습관이 무섭다.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좋은 환경에서 모자람 없이 자란 사람 특유의 귀티와 여유. 사랑받고 자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넉넉함. 치약이 어떻게 되던말던 신경쓰지 않는 마이웨이. 굳이 치약을 있는대로 다 짜서 쓸 필요가 없는 그들만의 세상에서 치약은 한낱 사소한 문제일 뿐. 아래에서 짜든 위에서 짜든 내 인생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 찌들어 마음에 여유가 없는, 치약짜는 것 따위에 집착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싫다. 치약이든 양말이든 설거지든 내 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어떻고저떻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게 나와 같은 처지라 감정이입을 하는건지.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는 사람이 무조건 지는 게임. 중간부터 짜는 사람은 자기 맘대로 써도, 밑에서부터 짜는 사람은 매번 치약을 쓸 때마다 열받고 또 열심히 튜브 아래부분의 치약을 위로 올려놔 봐야 다시 상대방이 쓰면 리셋되는 상황. 이길 수 없는 게임. 하지만 내가 신경쓰지 않으면 플레이 할 필요가 없는 게임. 나만 포기하면 만사 문제될 게 없는 게임.
우리가 지금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현실에 급급해도, 산위에 올라가 아래를 보면 장난감마을 같아 보이고 비행기타고 하늘로 가면 보이지도 않고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보면 정말 먼지보다 작은 존재인데.
아무리 미래를 준비한다해도 현재를 즐기는 사람을 못따라간다. 마음이 현재에 있어야 행복하다. 그렇게 지금 그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부럽다. 왠지 모르게 항상 전전긍긍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조급하게 살아왔는데. 걱정한 만큼 불안이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집착을 했는지.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그 순간에도 뭐가 그렇게 불안해 했는지.
아직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내 마음하나 조절하지 못하고 참 안타깝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참는게 능사가 아니다. 티끌 모아봤자 티끌이다. 아끼다가 똥된다. 5불짜리 치약 아무리 쥐어짜고 아껴봤자 가정형편 좀 나아질리 없다. 끝에서 짜던 중간부터 짜던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이만 잘닦으면 된다. 양치는 지금하면 3분.. 안하면 임플란트 3000불.. 이라는 다짐을 하루 두 번씩 하며 잔소리를 참는다. 그래, 너가 양치를 했구나. 장하다. 잘했다. 건치미남이다. 하면서.
일상과 생활이라는 게 30 평생을 다른 습관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1년 365일을 함께하게 된다면 갈등이 없을 수가 없다. 룸메이트던 친구던 부모님이던 한 공간에 사는 것 자체가 서로서로를 배려해줘야 가능한 것이다. 내가 공평하다고 생각할 때는 상대가 나를 배려해준 것이고 내가 손해봤다고 생각해야 상대가 공평하다고 생각한다고 하니. 특히 그런 상황에서 동거인 모두를 만족시키는 가사분담이라는 게 존재할까
결혼하고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집안살림은 내 일이 된 것처럼 (나만 괜히) 부담으로 다가와 일하고 힘들거나 피곤해도 억지로 요리며 청소며 정리며 해도해도 끝이없는 집안일에 시달렸다. 매일매일 해도 티도 안나는 집안일. 그러다보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왜 남편은 나에게 수고한다는 고맙다는 말한마디 없는지 야속하게 느껴졌고 시키지 않으면 먼저 나서서 하는 일이 없는 그에게 왜 가사분담을 안하냐고 따져댔다.
그러자 남편 왈. 나는 니가 좋아서 하고 싶어서 청소하는 줄 알았어! 그래서 네가 원하는 만큼 집안일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배려했었던 거야
이럴수가. 아니 집안일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어딨냐고. 내가 안하면 집안 개판되는데 누가하냐고. 나도 하고싶어서 하는거 아니라고 다다다 다졌더니.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자기가 청소할 때가 되면 한다고. 자기가 청소하려고 해도 내가 다 해놔버리니까 할 기회가 없었다고. 내가 원하는 깔끔함 만큼은 안돼도 자기도 집안일 하고 싶다고. 그렇지만 본인이 생각하기에 더럽다고 느끼는 시점보다 내가 더럽다고 느끼는 시점이 훨씬 잦으니까 내가 일을 더 일찍해서 많이 하는 거라고...
어쩌면 가사분담에 대한 개념이 당연한 사람에게는 알아서 청소를 다 해주는 사람이 오히려 더 부담이고 자기가 가사분담에 기여할 기회를 박탈해버리는 상황이 더 불편(?)했을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본가?
청결함의 기준을 1부터 100까지 불결함의 기준을 -1부터 -100까지 두고 본다면, 원체 깔끔한 성격이었던 나는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어서 최소 30~40로 유지한다면 남편은 0 이면 더럽지 않으니 깨끗한 것, -30~-40 양호, -80~-90 그냥저냥 -100 더러움 인 것. 그것도 그의 사고는 더러움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도 오래걸리며 더러움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청소라는 해결책으로의 연결고리도 없다. 그러므로 그냥 더럽던 말던 내버려 둔 것. 자신이 치워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
이게 문제가 되는 경우는 딱 한가지 나와 만났을 때. 나는 이렇게 더러울 때까지 안치우고 뭐하냐고 지금 나보고 치우라고 내버려두는 거냐고. 너는 니가 더럽힌 것도 안치우고 집안일도 안하고 대체 집에서 하는게 뭐가 있냐고 화를 냈던 것. 나는 집은 항상 깨끗해야되며 화장실과 부엌은 집안에서도 특히 더 자주 청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주 청소해주지 않으면 쉽게 더러워지기 때문.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남편에게는 세면대나 변기는 원래 더러운 곳. 자주 청소해봤지 어차피 또 더러워질 것.
나는 애초에 둘이 쓰는 공간이고 그가 청소를 안하니 어쩔 수 없이 나라도 해야하니 억지로 했던 것이었는데... 심지어 화장실 더럽게 쓰는 건 세면대에서 면도하고 변기에 서서 소변보는 건 남편인데!!! 깨끗하게 쓰도록 배려하지도 않고 왜 자기가 더럽힌 걸 치우지 않는지 엄청 불만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화장실 청소하는 것을 좋아해서 하고싶어서 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별로 더럽지도 않은데 자꾸 청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단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사람이 세면대를 깨끗하게 쓰길 원하는 걸까 세면대가 더러우면 내가 죽기라도 하는 병에 걸리는 걸까. 사실 내가 좀 깔끔떨긴 해도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빴을 때는 화장실 개판오분전 되도 정말 물리적으로 치울 시간이 없었다 ㅠㅠ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화장실의 기능은 하니까. 그리고 세면대나 변기가 막히면 남편이 뚫어주니까. 남편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읔 나는 절대 못함ㅠ)
또 다른 예로 나는 요리하는 것을 정말 힘들어 했다. 남편은 갓 차린 집밥을 좋아해서 최소 한시간을 준비해야 하고 메인요리에 사이드까지 이것저것 꺼내서 만들어 봤자 한끼 먹을 음식. 게다가 결국 다 설거지거리로 남아서 한시간 가까이 또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를 해야 한다니. 게다가 그는 빵 한 쪽을 먹어도 접시에 예쁘게 플레이팅해서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나는 테이크아웃 용기에 그대로 먹어도 괜찮은 사람. 그래서 미리 음식을 해놨다가 전자렌지로 데워 먹거나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도 외식하자고 식기세척기를 사자고도 해봤다.
그 때 남편이 하는 말 “네가 힘들면 안 해도 되. 내가 할게. 나는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일이 전혀 힘들지 않아.” 남편의 입장은 내가 먹을 음식을 요리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기쁨이며 자신의 사랑 표현이라는 것. 오히려 내가 뭔가 가부장적인 사상에 사로잡혀서 결혼했으니 여자인 내가 요리해야 된다고 나 스스로를 옭아맨 것이다.
그렇게 그 후로도 계속 모든 부엌일을 전담하고 있다. 그리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하루에도 몇 시간을 주방에서 보내고 일은 대체 언제할런지. 맨날 시간없다고 피곤하다고 난리난리. 그래도 나는 주방일에 손 놓았다. 자기가 한다고 했으니까. 힘들면 외식하거나 식기세척기 사거나 하겠지. 지금도 할 만 하니까 하는 거겠지. 아무리 미안해도 안쓰러워도 내가 대신 해주고 싶어도. 그 꼴을 견뎌내야한다! (오은영박사님 명언)
지난 신혼기간을 돌아보며 우리가 집안일과 가사분담 문제로 싸웠던 이유를 곱씹어봤다. 나의 청결도의 기준 이하로 내려가는 순간 내가 불편해졌다. 내가 깨끗하게 청소해 놓은 집안에 남편이 어지럽히면 내가 불안해지고 남편도 좀 깔끔하게 치워주길 바랬다. 그러니까 남편의 기준에는 내가 집에서 결벽증인가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청소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널널한 남편의 기준에서는 별로 더럽지도 않은데 스트레스 준다고 느꼈을 수도 있겠다. 즉, 문제가 아닌 일을 아내인 내가 문제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 그런 상황에서는 일단 침묵이 금이다. 침묵이 비트코인이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따상하고 입을 벌리면 떡락한다. 물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내가 참고 있기 괴로워서 자꾸 잔소리를 하고 싶어진다. 바로 그 순간,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오르려고 하는 순간, 한 번 생각해보자. 저 바닥에 벗어논 양말이 왜 나를 화나게 하는가? 저 더러운 변기가 왜 나를 화나게 하는가? 저 쌓여있는 설거지가 왜 나를 화나게 하는가?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집안이 더러우면 내가 치워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깨끗하게 사는데, 집안을 어지르는 자는 남편인데 남편은 안치워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 다 큰 어른이면 자기 뒷정리는 자기가 해야지. 내가 너 식모살려고 결혼한 줄 아냐. 이런 불만이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침묵이 어려운 이유는 내가 잔소리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잔소리를 하고 싶은 이유는 잔소리 말고 더 나은 할 일을 못찾았기 때문이다. 더러운 게 싫으면 내가 청소하면 되는데 그건 하기 싫고, 남편이 자기 물건은 치워야 하는데 남편도 안하고. 내가 더 나은 할 일이 없어서 내 정신이 온통 집안일에 쏟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일이 미친듯이 바빠서 양말이나 변기, 설거지를 쳐다볼 여력도 없다면 집이 더러운 지도 모르고 지나갈텐데, 내가 신경 쓸 여유가 되니까 지금 가장 중요한 상태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결국 다 내가 나를 스스로 ‘이렇게 해야만 한다’ 라는 기준에 옭아매었던 것 그리고 그런 나의 기준에 남편을 함께 묶어두려 했었던 것이었다. 내가 자처해서 내 일로 만들고 스트레스 받는다면 남편이 일을 해내고 걱정하고 나를 위해 해줄 기회를 박탈해버리는 것이다. 남편에게도 집안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내가 침묵을 지키며 금을 캘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 사람이 청소를 안하면 내가 해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기. 이 사람 물건은 이 사람을 치울 것이라 믿기. 내 몫이다 내 책임이다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 일은 그 사람 몫이다라고 인정하기. 그 사람 선택은 그 사람 책임이라고 존중하기.
나는 집안일에서 신경을 끄고 내 관심을 집중할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영화를 본다거나 공부를 한다거나 약속을 잡는다거나 그림을 그린다거나 취미생활을 한다거나. 내 인생에서 저 양말보다 저 변기보다 저 설거지보다 더 중요한 일은 무궁무진하게 많을 테니까 어렵지 않다. 그렇게 그 영겁같은 시간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남편이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면 이 세상에서 제일 기쁘게 반응하기. 칭찬하고 인정해주고 다음번에도 또 자기 일을 해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을 정도로 좋은 기억으로 남게 해주기.
가끔은 남편이 너무나도 바빠보여 내가 자처해서 남편 일을 도와주고 싶을 때도 있다. 물론 내가 진심으로 아무 보상도 없이 남편을 도와주고 싶다면 그것도 옳을 것. 하지만 내가 억지로 남편이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내가 어떻게 안도와줘 하면서 자발적으로 식모를 자처하고 나서 너는 집에서 하는 일이 뭐냐고 원망해서는 안된다. 차라리 남편이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자기 몫을 해냈을 때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렇게 긍정적인 반응으로 상대의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
언어감지 ⇌ 남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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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힘들까봐 내가 집안일 다 했는데 고마워하지도 않아?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너가 그럴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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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가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를 위해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정말 고마워. 당신은 정말 좋은 남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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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게도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데, 나 자신도 완벽하지 않은데, 상대에게 나만의 잣대를 갖다대며 면밀히 철저히 따져대며 마이크로메니지 할 수는 없다. 입장바꿔 누군가가 엄마든 회사 팀장님이든 남편이든 나에게 그런다면 정말 답답하지 않겠는가?
학생 때, 이제 공부해야지 하고 딱 일어나려는데 엄마가 공부나 해! 하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의지는 시험 전날까지 안 돌아올 수도 있다. 남편이 아, 설거지를 좀 해야 겠다 하고 생각했는데 내가 당신 여기 설거지 쌓여있는거 안보여? 대체 집에서 하는 게 뭐가있어! 하면 설거지 하고자 했던 마음이 싹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려움은 있다. 내가 언제까지 참고 있어야되는지 어차피 청소 할거면 빨리빨리 좀 하지 뭐하고 있는지 답답할 것이다. 분명히 남편은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있을 것이고 나는 그 꼴을 견뎌야 하는데 너무너무 힘들 수도 있다. 대체 언제하나 호시탐탐 감시하게 되고 니가 하나 내가 하나 두고보자고 기싸움 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지금 그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나는 관대하다. 그가 할 때 까지 나의 인내심을 넓히고 있다. 내가 그가 변기청소를 하면 뛸듯이 기뻐하기 위해 지금 만반의 준비 중이다. 만약 그래도 남편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하면, 이 사람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 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리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이 사람이 청소를 하긴 할건데 언제 할 지를 몰라서 너무너무 괴롭다면 기한을 정해서 상기시켜주는 것도 방법이다.
그대신 명령문이나 부정문이 아니라 예쁜 말로 긍정적인 문장으로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설명하기. 주어만 나로 두고 문장의 주체를 상대에게 넘기는 것은 상대를 통제하거나 명령하려는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다. 문장의 주체를 나로 두고 내가 원하는 상황을 주입시켜두기. 그리고 남편이 내가 원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루어 줄 지는 남편에게 맡기자. 설거지도 남편 방식대로 할 수도 있고 변기 청소도 남편 방식대로 하겠지만 일단 안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언어감지 ⇌ 남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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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양말 치우라고 몇 번을 말해!
(X)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
(X) 화장실 청소 대체 언제 할건데?
(X) 내가 니 가정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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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나는 당신이 화장실 청소 해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
(V) 언제까지 화장실 청소 해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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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바닥이 깨끗했으면 좋겠다.
(O) 변기가 깨끗했으면 좋겠다.
(O) 싱크대가 깨끗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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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해서 우리는 하루에 활동하는 시간대도 다르고 일의 중요도도 달라 굉장히 많은 마찰이 있었다. 아침형 인간인 나와 저녁형 인간인 남편이 공유할 수 있는 시간대는 한정되어 있었고, 얼마 안되는 그 시간에도 나는 아침에 모든 에너지를 써버려서 휴식이 필요한데 남편은 늦게 일어나 에너지 풀충전되서 힘이 넘쳤다. 그러니 맞춰가야 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지금은 어느정도 타협하고 어느정도 받아들이고 어느정도 존중해주며 서로 노력한다. 그 평화기를 맞을 때까지 피터지게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멀리 보자면 우리가 결혼해서 같이 살고 있는 이유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와 함께 있을 때 더욱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상은 이렇게 사소한 문제로 싸운다면 우리가 큰 그림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