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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Sep 22. 2024

머리 노란 남편은 과연 고마워했을까?

거두는 거 아니랬잖아...

바로 어젯밤, 서러움 대폭발해서 울고 불고 난리 난 일이 있었다.


내가 남편에게 네가 최선을 다해 시험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아. 너도 내가 최선을 다해 너를 지원해 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라고 물었더니... 남편 왈.


“most of the time”


내가 이민 와서 외노자로 하루도 안 쉬고 일하면서 지금껏 우리가 이렇게 지낼 수 있었는데. 모.스.트. 오.브. 더. 타.임. 이라고? 네가 3년을 수입이 0원인 채로도 빚 없이 공부만 할 수 있게 가능하게 만들어 준 게 누군데!




이 대화는 남편이 5월에 시험을 보고 6월에는 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장담을 한 뒤의 이야기이다. 남편이 스스로 6월부터 일을 시작한다 했으니, 내가 남편에게 지금 뭐라도 지원하라고 미국은 파트타임도 채용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지금 지원해야 6월에 일할 수 있지 않겠냐고 채용 사이트 검색 결과를 보내면서 벌어진 일.


남편은 자기 공부하는 데 방해되지 않기를 바라고, 나는 본인이 6월에 일을 시작한다는 말을 했으니 지켜야 하지 않겠냐며 그럼 대체 6월에 어떻게 무슨 일을 할 거냐고 따지면서 대화가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도 결국 감정적으로 격양돼서 내가 자신을 무능력하다고 느끼게 만든다고,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고 자신의 의사를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껴진다고 했다. 최악으로 자신이 지금 이 상황에서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시험을 안 보고 미루는 것 뿐이라 느껴진다고


사실 남편의 이 발언에 억울해서 팔짝 튈 건 나였다. 


수험생이 벼슬이라고 나는 항상 남편에게 시험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를 매우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100번 말할 거 참고 참다가 한 번만 말 꺼내고... 조금만 수 틀려도 진상 진상, 아주 얼마나 눈치를 보는지 모른다.




대체 무슨 선택권이 박탈되었고 무슨 의사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걸까? 


남편의 자격지심일까? 단순한 능력부족일까? 본인이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은 머리로는 알지만 일을 시작하기 두려운 심리일까? 본인이 일을 안 해도 이제까지 불편함 없이 지내왔으니 당연한 권리라도 된 것일까?


사실 나는 남편이 어떤 마음인지 이해는 간다. 


어릴 적 내 마음과 비슷하겠지. 자신에게 바라는 원대한 꿈이 있고 당연하게도 곧 이뤄질 것이라 믿는데, 옆에서 잔소리하면 짜증 나는 그런 중2병처럼 행패 부리는 거다. 그깟 돈 얼마나 번다고 생색이냐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돈 벌고 말지 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그동안 공부하느라 고생했으니 스스로에게 보상으로 한동안 쉬었다가 일하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 뭐 사람이라면야, 그럴 수 있지.




그러나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자신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긴 아니까, 일을 하고는 싶지만 이렇게까지 힘들게 구직을 하고 싶지는 않고, 또 아무 일이나 하고 싶지 않겠지. 일평생 치열하게 산 적 없고 벼랑 끝에 몰린 적 없는데, 이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간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긴 하지만 이 사람 생각은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면 남편이 원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본인이 스스로를 무능력하게 느끼더라도, 와이프가 자신을 믿어주고 응원해 주기를 우쭈쭈 우쭈쭈 해주길 바라는 심리일 것이다. 다른 곳에서 자신감이나 자존감을 찾을 수 없으니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에게 불똥이 튀는. 그래서 생판 모르는 남이나 입에 발린 좋은 말만 해주는 친구를 더 찾게 되는 거지. 


어머나~ 그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다니 당연히 끝나고 보상받아야죠!

매일 꾸준히 공부하시다니 정말 훌륭합니다~

이번 시험 당연히 통과되겠죠! 충분히 자격 있어요!

앞으로 더 큰 일을 하실 텐데 정말 대단해요~


그 친구들이 하는 그 예쁜 말들이 6년 간 수입 전체를 갖다 바치며 학바라지 한 아내의 잔소리보다 더 듣기 좋을 테지.


나도 처음 몇 년은 그래 주었다. 3년 동안 8번이나 무기한으로 시험을 미루기 전에는. 남편은 본인이 시험을 3년을 미룬 것은 생각도 안 하고 변한 나를 탓하고 있다.




불속성 효자, 캥거루족, 등골 브레이커...!


물론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아는 걸 굳이 굳이 말한다는 건 결국 자신의 인정욕구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 남편이 짜증 내는 것도 본인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이고 내가 억울함에 이렇게 구구절절이 글을 쓴 것도 보상심리의 일환이겠지.


그걸 알면서도 나는 남편에게 좋은 말이 안 나온다. 


아마 나에게도 억울하디 억울한 내 감정이 먼저라서 그런가. 그동안의 내 희생은 내 시간과 내 청춘은 누가 보상해 주나. 사실 보상받을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빨리 미련 털고 이 관계에서 빠져나오든가, 아니면 리셋해서 새롭게 관계 역학을 바꿔나가든가 해야 하는데.


참~ 알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머리 검은 댕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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