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결혼을 결심하다가도 망설이게 될까.
오늘도 <<팀 켈러, 결혼의 의미>>의 책을 읽고, 여러 가지 생각들을 펼쳐보았다.
1월 4일, 1월 9일, 1월 10일, 1월 18일의 내용들을 생각해서 펼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왜 결혼을 결심하다가도 망설이게 될까.
사실 이 책을 보기 전, 결혼을 결심하기 전에는 이 마음이 종이 한 장을 뒤집듯 쉽게 왔다 갔다 했었다. 결혼을 결심하고 나면 달라질 줄 알았더니,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도 미래를 생각하니 불안은 없어지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잘 살 수 있을지, 잘 해낼 수 있을지부터 걱정이 되었다. 새롭게 서로를 맞이한다는 것, 각 양가부모의 새 식구가 생긴다는 것 등등 여러 가지 부분들의 걱정들부터 해서 온갖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들 말이다.
이 걱정들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 나는 이 책을 통해 느낀 점을 쓰면서,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걱정거리들을 글로 풀어내보려 한다. 쓰다 보면, 답이 생기지 않을까.
1월 4일의 원문 내용은 창세기 2장 22, 24절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성경구절로 시작한다. 인류 최초의 결혼식 장면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결혼은 혼인 신고서라는 '서류 쪼가리 일 뿐'이며 결국 중요한 것은 둘이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 육체적, 정서적, 법적, 사회적, 경제적인 면 등 모든 면에서 서로에게 자신을 주지 않겠는가?라는 구체적인 약속 맺기가 핵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외의 1월 9일, 1월 10일, 1월 18일의 내용들도 비슷한 생각거리를 던져냈다. 요즘 사회에서 젊은 이들은 결혼을 하고 싶다가도 망설이게 되는 부분. 이런 생각거리들 말이다.(대부분 뉴스들은 경제적 부분들을 포커스 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대부분 많은 듯하다.)
이 내용을 보고, 머릿속에 떠오른 첫 단어들은 결혼, 맹세, 약속, 혼인신고서의 단어들이었다. 또한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단순한 서류행정의 등록 절차일 뿐일 것인지. 여러 가지의 질문들도 떠오른다.
나 같은 경우, 단순하게 결혼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같이 살고 싶어서였다. 매주 주말에 만났다가 헤어지는 삶을 약 9년 동안 해 오니, 이제는 떨어져 있지 말고, 같이 계속 붙어있고 싶은 마음이 가득 해져서였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 땐 24시간 내내 붙어있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의 호르몬의 약 빨은 얼마가지 못했다. 유명한 학술에서도 사랑의 호르몬은 3개월이 최대치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결과에 비하면, 우린 오래가고 있지만, 때로는 약하고 잔잔하면서도 길게 이어지게 만들어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와 떨어져 있는 평일 시간. 오롯이 내 시간을 보낸 날들이 편할 때도 있었다. 그가 없지만, 멀리 떨어져서 그는 자기 할 일을 하며, 나는 내 할 일을 하는 시간. 연락은 가끔 되지만, 각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편했다. (그래서 주말 부부가 좋다는 말이 이런 시간을 사용하는 측면, 떨어져 혼자 있는 편안한 상태를 가지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럼 결혼하면 내 마음 가는대로 혼자 있을 수 없는 걸까?
같이 붙어있고 떨어져 있는 물리적인 측면만 생각한다면, 그저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치지 않고, 동거로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동거도 똑같이 붙어있다가도 떨어져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봤을 때,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히 같이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 말한 것처럼 약속의 의미가 커서 하는 것이 아닐까. 약속은 같이 살면서, 서로에게 헌신하겠다는 약속일 것이다.
그럼 결국 헌신의 문제로 이어진다. 나는 과연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해 헌신하면서 살 수 있는가? 결혼을 선택하는 기로에 서서 생각했을 때, 깊이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헌신을 하는 케이스는 무수히 많은 케이스가 있을 것이다. 아까 말한,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봤을 때, 같이 살아도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또는 헌신의 마음으로 각자의 시간을 존중해 주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또한 같이 있을 시간을 의논하여, 그때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대화를 통해 조율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집안일(집 청소, 빨래, 음식물쓰레기 버리기, 재활용쓰레기 버리기), 애완동물이 있다면 애완동물 케어, 밖에서 먹을 것인가, 집에서 만들어 먹을 것인가, 아이가 있다면, 한 명은 업무에 집중하고, 한 명은 아이 케어에 집중하는 등의 일들이 될 것이다.
헌신이라는 것이 또한 봉사라는 단어와 겸용해서 쓸 수 있을 것 같다. 게리체프먼의 <<5가지 사랑의 언어>> 책을 보면 5가지 사랑의 언어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이 나온다. 그중 봉사에 관한 챕터에 살펴보면, 봉사, 헌신에 관한 이야기들이 일맥상통하게 나와있었다. 상대방의 사랑의 제1언어가 '봉사'라면, 상대방을 위해, 헌신하여 행동함으로써 상대방은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핵심은 상대방 서로에게 맞는 사랑을 느끼는 언어(예를 들어 아내는 남편이 기저귀를 갈아준다거나, 청소를 하고, 아내는 그가 퇴근했을 때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것 등), 즉 상대방이 이런 행동을 하면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는 지침들을 부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비판, 명령, 강요가 아니라.
가끔 '봉사'라는 것이 제1사랑의 언어가 아닌, 제2,3,4의 사랑의 언어라 하더라도 서로 맞춰가는 단계에서는 이러한 사랑의 지침을 만들어 서로에게 이것만큼은 하면서 살아가보자라고 대화를 나누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지혜롭게 살아가면 좋겠다는 인사이트를 얻기도 했다.
결국 '결혼'이라는 언약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세상에 있어 동반자, 반려자에게 보상을 바라지 않고, 헌신할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건 예수님, 하나님이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고 사랑하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비슷해 보인다. 서로를 조건 없이 사랑하며,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며, 서로의 헌신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점을 기억한다면, 단순한 서류 쪼가리 종이의 결혼이 아니라, 진정한 결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한편으론 이혼을 하거나, 결혼을 결심하지 않는 사람들의 케이스는 여러 가지겠지만, 이런 측면으로 심리적 상태를 깊이 봤을 땐, 대부분 배우자에게 헌신하고 싶지 않거나, 지혜롭게 풀어가는 헌신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나마 책을 통해 알아가는 중!)
결혼 후, 어떻게 지혜롭게 같이 살아갈 것인가라는 삶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민해 본 시간이 된 듯하다.
우리 둘이 알게 모르게 지금 연애하는 중에도 서로 헌신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것이 헌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다시 되돌아 생각해 보면, 오롯이 상대방을 위한 헌신이었듯하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가 남편을 위해 하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자발적으로 자연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배우자가 헌신을 해줬을 때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었다. 헌신, 봉사, 감사는 함께 가야 하는 키워드.
연애할 때, 서로의 헌신을 연습하고, 실행한 것처럼,
결혼 후에도, 그의 상황에 따라 맞는 서로의 헌신, 봉사, 감사를 행하는 지혜로운 부부가 되길.
헌신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사랑을 완성시키는 방식이다.
결혼수업 제3장.
1. 상대방이 원하는 헌신,봉사에 대해 생각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