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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인 Mar 01. 2020

아...엄마. 제발....01

83세 엄마와의 달고 쌉쓰름한 동행기 01


그냥 평범한 저녁이었다. 

다음날 아침 지옥같은 경험이 펼쳐질 줄 1도 예상 못한 깜깜하게 평범한 저녁이었다.


엊그제 금요일 저녁 엄마가 전화를 안 받으신다고 혹시 혼자서 교회 저녁 예배를 가셨나...

작은오빠가 전화를 할때까지는 뭐. 그러실수 있지. 

혼자 사는 83세 엄마. 언제나 이랬다 저랬다 하시니까. 

일찍 주무시나 보지.. 좀 이따 내가 다시 전화해볼게라며 전화를 끊었다. 

노인네. 초저녁잠 좀 줄이셔야지. 그러다 치매라도 오면 진짜 큰일인데.


시계를 보니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엄마가 다니는 교회도 금요예배가 없었다.      

나도 이제 막 저녁을 먹고 치우고 좀 쉬어야지... 에구구구... 다리를 길게 뻗고 누웠던 참이었다.      

재미는 없지만 시간은 잘 가는 티비 프로그램들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지만 속옷 속의 가시처럼 내내 엄마가 왜 전화를 안 받으실까 궁금증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30분마다 전화를 눌러보면서도 원래 초저녁 잠이 깊이 들어, 내일 일찍 다시 해봐야지. 애써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려 이리저리 마음을 달랬다.     

 

가까이 사는 오빠라도 달려가 본다 해주면 좋으련만 오빠 역시 '내일 전화해보자' 이렇게 문자가 왔다.

으이그.... 아들 키워 놓아봤자야... 나도 안 가보는 주제에 작은 오빠가 살짝 서운했다.      

엄마는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20분쯤 떨어진 수지 아파트에 혼자 사신다.

역시 20분쯤 떨어진 곳에 작은 오빠네가 살고 큰 오빠는 서울에 산다.

5년 전쯤 암을 앓고 이제 거의 완치가 되셨지만 워낙 큰 병 끝이라 몸이 많이 마르셨고 허리니 다리니 안 아프신 곳이 없다.     

 

얼마 전에는 방에서 넘어지시면서 갈비뼈가 두 대가 부러졌고 그거 매 잡아 놓느라 갑옷 같은 보호대를 내내 차고 계시다.  다 좋은데 밥 먹고 소화가 안된다고 이노무 복대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고 불만이 대단하셨는데 나는 83세인 엄마의 상황에서 이만한 건강이라도 유지하시는 게 오히려 감사해서 깁스가 아니고 복대인데 암말 말고 열심히 차고 계시라고 엄마를 달래 왔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스스로 거동하시고 밥해 잡숫고 여기저기 다니시고 그러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으셔서 혹시라도 자식들이 같이 살자느니 어디 좋은 요양원 있느니  이런 소리 할까 봐 일부러 허리도 더 꼿꼿이 펴고 다니시는 귀여운 할매다.   

   

교회 갈 때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고 은근슬쩍 내게 귀뜸해서 나로 하여금 철마다 나들이 옷도 장만해드리게 하는 용병술까지 부리실 수 있는 아직은 건강한 정신도 나로서는 반갑다.      

그런 엄마한테도 이번 코로나 사태는 어이없고 황당해서 나는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철없는 이유를 대시며 처음 몇 주간은 기를 쓰고 교회 이런저런 예배를 참여하시더니 기어이는 교회가 예배를 온라인 으로 대체한 지난주부터 꼼짝없이 집에 묶여계시던 중이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젊은 사람도 낮에 잤다 밤에 잤다, 원래 그래. 초저녁에 주무셨겠지.. 나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나도 잠을 청했다. 10시 반쯤 마지막으로 전화를 시도해본 후였다.

원래 내일 아침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상태에서 잠이 들면 깊은 잠을 못 자는 법이다.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 여행 일정이 있다거나 김치 담는다고 배추를 소금에 절여놓고 잠깐 눈 붙인다고 들어가서 잘 때나 그럴 때는 내가 이게 잔 건지 만 건지 내내 뒤척이다 깨게 되는 법이다.  

    

어제 아침 내가 그랬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눈이 떠졌다.

엄마가 초저녁에 잠이 드셨으니 필시 새벽에는 깨서 꿈적거리실 거야.

그러면서 일어나자마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역시 답이 없다.


어? 이러실 리가 없는데 8시 너머에 전화를 안 받으셨다면 거의 열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전화 소리도 못 들으실 정도로 10시간 넘게 푹 주무신다고? 80대 노인이?

집으로도 해보고 핸드폰으로도 해보고 계속 통화버튼을 누루지만 답이 없다.

건강하신 때에도 어디 남에 집에 가서 잠자고 오고 그런 것은 안 하시는 분이었다.

갈비뼈까지 부러지셔서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교회도 못 가시는 상황에서 어디 하루 좋은데 마실이라도 가셨나... 이런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엄마는 집에 있다.   

    

이전에도 엄마가 내내 전화를 안 받아서 급하게 엄마 집으로 달려간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방에서 부스스 자다가 나오시며 에고.. 전화소리를 못 들었네.. 하셨었다.

나는 놀랜 김에 괜히 엄마한테 왜 전화를 안 받으시냐고 발까지 동동 굴러가며 화를 냈었다.

일부러 안 받으신 것도 아닌데. 달려오는 내내 울컥울컥 불안했던 마음이 일순간에 해소가 되면서 안도 겸 응석 겸 나는 엄마한테 제발 전화 좀 잘 받으시라고 팔짝팔짝 뛰었었다.      


근데 이건 좀 느낌이 달랐다.      


(아..엄마.제발...02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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