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인 Mar 01. 2020

아... 엄마. 제발.... 03

83세 엄마와의 달고 쌉쓰름한 동행기 03

정신이 몽롱해지려 할 때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조용하던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흔들리는 다리를 겨우 버티고 일어섰다. 

10층 벨이 띵 울리며 여섯 명의 응급대원들이 코로나 때문인지 다들 거창한 방역복을 입고 쏟아져나왔다.     

 

아빠 때 봐서 익숙한 응급용 바퀴 달린 침대가 따라 내렸다. 

어떻게 되시죠? 언제부터 연락이 안 되셨죠? 지병이 있으셨나요?

아득한 정신에 그런 질문들에 대답을 하는 것도 엄청난 의지력이 필요했다.      

걸쇠를 부수는 일이 시작되었다. 

여러 명의 응급대원들이 좁은 공간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는 아파트 전체에 울렸다. 

아.. 이소리에 엄마가 반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이라도 일어나신다면 지금이라도...

나는 부질없는 기도를 하며 대원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처음에는 무슨 책받침 같은 것으로 걸쇠를 밀어서 열어보려고 한 참을 시도했다. 

그걸로 안되는지  공구통에서 다른 도구를 꺼내려고 남자 대원 두엇이 머리를 수그렸다.  

그사이에 뒷줄에 서서 집을 주시하던 대원중 하나가 어? 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누가 계시는데요? 


그때였다.

문틈 어둠 속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세요?!!!     

엄마도 놀라서 질러대는 고성이라 발음도 정확치 않았지만 분명 엄마 목소리였다. 

너무 애타게 기다린 나머지 환청이 들리나 귀를 의심하며 문쪽으로 성큼 다가서니.


“누구세요? 어떤 일이세요?” 놀람에 갈리진 엄마의 목소리가 더욱 분명히 들렸다. 

엄마다. 

나는 비명처럼 엄마!!! 엄마!!!! 를 외치며 구급대원들을 밀치고 10센티 틈에 얼굴을 들이밀며 

문을 흔들었다.      


아....... 언젠가 우리 큰애를 꼬맹이 시절 그 애를 잃어버려서 몇 시간을 찾아 헤맬 때. 

그러다가 멀리서 그 아이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걸 봤을 때. 

정말 딱 이런 기분이었다. 

천국을 경험하는 순간이지만 누구에게도 느껴보시라 결코 권할 수 없는 기분.   


피차 놀라긴 마찬가지지만

일일이 설명도 필요 없을 정도로 상황은 간단했다. 

엄마는 안방에 계셨던 것이다. 주무셨던 기절하셨던 이제 아무 상관없다. 

당신 발로 일어서셔서 말도 하시니 살아 계신 것이다.           

문이 열리고 엄마는 잠이 깊이 들었었다고 둘러대시며 

갑자기 펼쳐진 상황에 어리둥절 하셨다. 


늙은 엄마 한나절 연락 안된다고 지레 놀라서 여러사람 고생시킨것 같아 구급대원들한테 참 미안했지만 지금 내가 누구 사정 볼 상황이 아니었다. 죄송하게 되었다는 인사도 못챙기고 나는 눈물부터 터졌다. 터진김에 그낭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괜찮으시니 다행이라고 자기들은 괜찮다고 덕담들을 했고

나는 겨우 마음을 수습하고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려니 울랴 인사하랴 정신이 더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신발도 안벗은채 뛰어 들어가서 엄마를 왈칵 끌어안았다.      


아.................. 엄마의 몸이 따듯하다. 

따듯한 엄마의 몸을 다시 안을 수 있다니. 

엄마는 그야말로 자다가 날벼락같은 상황에도 딸이 반가왔는지 까치집같은 머리를하고

연신 빙긋빙긋 웃으셨다.     

간단한 상황 정리와 내 인적사항을 적어서 마지막 구급요원이 문을 닫고 떠났다.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거실 신발장 앞에서 엄마를 오래오래 안고 울었다. 

엄마 무슨 일 난 줄 알았다고. 이제 됐다고 이제 됐다고. 

왜 전화 안 받았냐는 타박 같은 건 없었다. 

원래  애 잃어버렸을 때도 10분 20분 잃어버리면 애가 나타났을 때 도대체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냐고 막 혼내지만 한 시간 두 시간 길게 잃어버리면 너무너무 고맙다고 엄마가 잘못했다고 그저 철철이 울기만 한다.      

엄마 고마워 

엄마 고마워. 

나도 그저 고맙다는 말만 나왔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그간 엄마한테 하고 싶었던 말을 훌쩍훌쩍 꺼이꺼이 두서없이 중얼거리며 손으로는 엄마의 따듯한 손과 몸을 연신 쓸어내렸다.        


(아..엄마.제발...04 로 이어집니다.)

이전 02화 아...엄마. 제발....0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