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인 Mar 01. 2020

아...엄마. 제발....02

83세 엄마와의 달고 쌉쓰름한 동행기 02

(자영업분투기의 번외 편. '엄마 이야기' 살짝 들어갑니다. 02)


4년 전, 아빠가 이 비슷한 상황으로 돌아가셨었기 때문에 나는 더욱 불안했다.

아빠가 쓰러지셨다는 엄마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119 구급대와 동시에 도착해서 엄마 집에 들이닥쳤을 때 나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싸한 집안의 공기로 아... 이미 너무 늦었구나.. 직감했었다.

아빠는 부엌 베란다 입구에 쓰러져 계셨는데 응급대원 여럿이 구조 장비를 밀고 들어가서 심장마사지를 실시했다.

마치 영화의 슬로우 모션처럼 모든 것이 뿌옇고 웅성거리는 모든 소리는 소거된 채 아득히 멀리 아빠의 발이 보였다. 거실 바닥에서 울부짖는 엄마의 몸을 끌어안고 엄마를 다독이면서 눈으로는 이미 피 색깔을 잃어버린 아빠의 발을 보면서, 아빠가 이미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만약 그런 일이 다시 반복이 된다면....


나는 애써 도리질을 치면서 차키를 들고 주차장으로 뛰었다.

아... 1000번의 도리질로 육박해오는 나쁜 생각을 지워낼 수만 있다면... 근데 그럴 수는 없었다.

한번 머릿속을 틀어쥔 어두운 생각은 한 계단 한 계단 더욱 안 좋은 쪽으로 걸어갔다.

아... 나쁜 년. 어젯밤에 가볼걸. 뭐 얼마나 피곤하다고 하룻밤을 넘기니...

어제 이상쩍을 때 얼른 달려가 보지 않은 내 자신을 심하게 탓하며 시간이 새벽이라 다행히 한산한 거리로 급하게 차를 몰고 나섰다.


아.. 급할 때는 왜 이리 신호가 더 걸리는지.

숨이 넘어갈듯한 내 마음은 아랑곳없이 길목마다 신호에 걸렸다.

평소 같으면 라디오를 켤까 블루투스로 폰에 저장된 음악을 들을까... 차에 앉자마자 라디오 박스부터 조절했지만 아무 소리도 듣기 싫다. 벨트도 귀찮고. 다 귀찮다.

오로지 엄마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만을 기다리며 운전에 집중했다.      

세상에는 달리는 내 차와 그보다 더 빠르게 달리는 나의 나쁜 생각과 두 가지만 있는 듯했다.

드디어 엄마 집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입으로는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중얼거렸지만 머릿속에선 어떻게 어떻게.. 이미 울음이 터졌다.


11시간 넘게 계속 울려대는 전화 소리를 못 듣는다면 그건 잠이 아니라 혼수상태나 뭐 더 나쁜 상황이라는 논리적 추측과 그냥 오늘 피곤하셔서 오래 주무셨겠지. 올라가서 방에만 들어가기만 하면 엄마가 에구머니나 깜짝이야. 예의 그 봉두난발 귀여우신 머리채를 발딱 일으키시며 왜 놀래키냐고 반가운 타박을 하실 거야 라는 헛된 희망이 머릿속에서 격하게 뒤엉켰다.   

   

엘리베이터는 다행히 1층에 있었다.

달달 떨리는 손끝으로 엄마가 사는 10층 버튼을 눌렀다.

몸은 엄마 집을  향해 솟구쳐 올라가는데 어쩐 일인지 내 마음은 혹시 이제 내가 맞닥 뜨릴지도 모르는 그 어떤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아득하게 추락해 갔다.


아... 혹시라도 아빠의 발 그 상황을 다시 본다면.

이건 너무 잔인하다. 그 어떤 잔혹 동화보다 더 끔찍한 공포로 나는 겁에 질려있었다.

하지만 피할 수도 없었다. 나의 일이었고. 지금 나는 그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올라가야 했다.      

드디어 엄마 집 앞에 도착했다.


두 손으로 도어락 껍데기를 겨우 밀어 올리고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에 비번이 기억이 난 게 신기할 정도로 나는 거의 반 정신이 나가 있었다.

문이 벌컥 열리며 엄마!!! 하고 소리 지르려는 순간 문이 다시 뭔가에 철컥 걸리면서  멈췄다.

방범용 걸쇠가 걸려 있었고 그것 때문에 문이 약 10 cm 정도만 열렸다.

10cm 라도 열렸으니 일단 급한 대로 엄마를 목청껏 불렀다.

엄마 엄마!!! 문도 두드리고 엄마도 부르고 벨도 누르고 그런데 응답이 없었다.

깜깜한 절벽 같은 어둠이 엄마 집안에 가득했다. 나는 그 어둠이 벌컥 무서워서 고함지르기를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아........ 그래. 정신 차리자.


최소한 엄마는 응답에 답을 못하실 상황임에는 틀림이 없구나. 돌아가신 게 아니라면 혼수상태나 뭐 그런 거이신 거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일단 저 걸쇠를 부수고 들어가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119에 전화를 걸었다.


빌어먹을 코로나 때문에 평소보다 좀 더 걸린단다.

내 위치를 확인하고 10분 좀 넘게 걸릴 거라고 내게 10분간의 지옥을 친절하게 고지해주었다.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 아침시간 아파트 계단은 괴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어느 집 문이 열리고 애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라도 들렸다면 잠시라도 나의 터질 듯 단단한 불안에 작은 틈이라도 생겼을 텐데 고요한 계단은 나의 어마어마한 마음의 지옥을 더욱 오롯이 깊게 만들었다.      

가까이 사는 작은 오빠한테 전화를 했다.

혹시 모르니까 오라고 했다.

다급하게 전화가 끊겼다.      


그저께 애들 데리고 먼길 다녀온 나랑 한 통화가  엄마랑 내가 나눈 마지막 대화였나.

애들한테 잘하라고 마스크 단단히 씌우고 제발 어디 덜렁덜렁 다니지 좀 말라고

꼭 다녀야 한다면 이것저것 만지지 말고 응? 엄마의 끝없는 잔소리에 뉘에 뉘에 하면서 호시탐탐 전화 끊을 순간만 노린 내 멍청한 그 대화가 정말 마지막이었나.

   

지난번에 장을 좀 봐드린고 엄마한테 들러서 딱이 바쁜 일도 없는데 일 있어서 가봐야 한다고 아쉬워하는 엄마의 눈을 피해 대충 안아드리고 냉큼 엘리베이터로 내려와 버린 그 날이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라면 아... 나는 얼마나 나쁜 년인가.  일이 있기는 그러고는 집에 와서 퍼져 잤으면서 어쩌다 간 건데 좀 오래 놀아드릴걸..     

안 해드린 것 못 해 드린 것 어쩌면 이제 다시 해드릴 수 없는 것이 줄줄이 생각났다.

아직 엄마가 어찌 되셨나 확인도 안 되었는데 이미 내 머릿속에서 엄마는 이 세상에 안 계신 것 같았다.      

혹시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아빠 장례를 치르며 아빠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다시 아빠와 대화도 포옹도 못한다는 사실이 미칠 듯이 괴로웠는데 엄마는 물론 그 이상이겠지. 상상은 했었다.

그런데.... 그 막연한 상상이 어마어마한 현실로 닥친 바로 이 순간이 너무나 꿈같았다.

그리고 너무나 괴로웠다.


상상으로만 느끼던 고통이 실제 피부를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어스름 아침이 밝아오는 어느 아침 엄마 집 앞 비상계단에서 나는 지옥에서의 1초 1초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깨달았다.    


하나 확실한 것은 엄마와 얼마나 더 많은 추억을 쌓고 내가 얼마나 더 잘해드려도 정작 그 순간이 오면 내가 이미 해드릴만큼 해드렸다는 사실이 단 0.1도 내 후회를 덜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정말 확실했다.      


혼절이라고 하나. 나도 모르게 몸이 옆으로 쓰러지는 걸 느꼈다.

영화에서만 봤는데 이게 실제로 이렇구나.


(아..엄마.제발...03 로 이어집니다.)

이전 01화 아...엄마. 제발....0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