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 엄마와의 달고 쌉쓰름한 동행기 끝
엄마의 설명을 들어보니,
어제 엄마가 초저녁에 일찍 잠이 들어 밤 1시에 깨버리셨고, 할 일도 없어서 베란다 나가 앉았다가 거실에 앉았다가 우두커니 돌아다니다 보니 이미 시간이 4-5시,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더자자 하고 문 닫고 방으로 들어가신 시간이 대략 새벽 5시쯤 될 거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작은 오빠랑 나랑 열나게 전화해댄 저녁시간과 새벽 시간에 공교롭게 엄마가 마침 안방 문 닫고 깊이 잠이 들어 계셨던 것이다. 일이라는 것이 꼬이려고 작정하면 이렇게 애매하다.
나는 놀라서 달려오고 있을 작은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괜찮으셔!! 걱정 말고 천천히 와.
오빠는 그제야 울음을 터트렸다.
10분쯤 후에 눈은 퉁퉁 부었지만 입은 웃고 있는 오빠가 당도했고
괜찮다 다행이다를 연발하며 엄마를 한참 안아줬다. 50 넘어 점점 눈물이 많아지는 오빠들이다.
아침에 전화를 안 받던 큰 오빠한테는 상황이 다 종료가 되고 나서 전화를 했다
그 지옥 같고 무참하던 순간들이 무슨 가벼운 해프닝처럼 설명되었지만 나는 기분이 오히려 들떠서 무용담처럼 떠들어댔다. 이 이야기가 한날의 이야깃꺼리가 된 것이 나는 정말 행복하고 기뻤다. 오빠도 실실 웃으며 듣는 눈치였지만 나는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엄마는 반가운 딸을 본 김에 어제 끓여 놓은 건데 먹고 가라고 삼계탕 냄비를 불에 올리셨다.
작은 오빠는 시간이 없다고 가봐야 한다고 슬슬 꼬리를 뺐다.
대충 커피라 과일을 먹여서 오빠를 먼저 보내고 나는 그때까지 입고 서있던 코트를 벗었다.
거울을 보니 얼굴 전체가 다크서클이었다.
상관없었다.
엄마가 푸짐하게 퍼준 삼계탕을 먹었다.
평소 같으면 이른 아침에 무슨 삼계탕이냐고 나는 그냥 커피 한잔 마신다고 밥도 국도 다 싫다 아무것도 안 먹겠다 뭔가를 먹여서 보내고 싶어 하는 엄마 마음도 몰라주고 계속 도리질을 치는 못된 딸년인 내가 머슴 국그릇 같은 큰 대접으로 넘치게 담아주신 삼계탕을 선 듯 받았다.
닭다리가 두 개가 다 들어 있었다. 다리가 네 개 달린 닭이 아니라면 엄마 꺼는 없는 거였다.
닭이 질기네 무가 맛이 없네 엄마는 맛만 좋은 삼계탕을 딸에게 먹이시면서도 더 맛나게 주시지 못해 애먼 닭을 향해 내내 잔소리를 하셨는데. 나는 이 순간 이 삼계탕이 맛이 있건 없건 무슨 똥맛이던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닭의 목뼈 사이사이에 알갱이 같은 살점까지 싹 싹 발라서 그 사발국을 다 먹었다.
엄마가 끓여준 따수운 것을 먹으며 따순 엄마의 손을 붙들고 별 시답잖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대단찮게 여겼던 이런 그저 그런 일상들이 결국 나였구나. 이런 시시함이 없다면 나도 없구나.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지옥을 가상으로 잠시나마 경험하고 나니 하루하루 멀쩡할 수 있는 조건들이 사실은 별게 아니구나. 새삼스럽고 절절했다.
우리 엄마는 특별히 좋은 엄마라거나 세상에 칭송받을 큰 일을 하신 분도 아니다.
그냥 사는 내내 나랑 툭닥툭닥하셨고, 아빠와의 관계에서 도대체 왜 저러실까 아빠한테 제발 그러지 좀 마시라고 나한테 잔소리깨나 들으신 그냥 보통의 할머니 엄마다.
엄마의 단점을 열거하자면 밤을 새워서라도 떠들 수 있을꺼라 평소에는 입을 삐쭉삐쭉하곤 했다.
아무리 두꺼운 옷을 입고 있어도 엄마를 부축할때마다 손끝에 느껴지는 엄마의 약한 육신이 슬프다.
약해진 육신이 더이상 세상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게 되면 결국 나는 엄마를 보내드려야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날이 될 때까지
나는 엄마의 따스한 품을 느끼고 타박 맞는 닭을 먹고 무엇보다 밑도 끝도 없는 잔소리를 더 많이 듣고 싶다.
집전화 벨소리를 최대로 키우고 핸드폰의 우아한 벨소리도 방정맞은 따르릉 소리로 바꿔서 손에 꼭 쥐어 드리며 주무실 때 제발 베개 옆에 두고 주무셔라 신신당부하고 엄마 집을 나섰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엘리베이터를 나서서 차에 시동을 걸고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내내 하늘이 정말 파랬다. 그리고 오래오래 계속 파랗기를 기도했다.
(아.. 엄마. 제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