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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인 Dec 08. 2021

핀란드 랩소디 01

-비행기에서 쓰러지면 벌어지는 일들

그 시절의 출장은 참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남편과 둘이 런던을 거쳐 맨체스터로 바잉 투어를 계획하면서

우리는 직항 비행기가 비싸니까 가격이 좀 저렴한 핀에어 (핀란드 항공사)를 이용하기로 했다.


헬싱키를 거쳐서 런던으로 들어가는 루트로 그게 좀 쌌다.

직항을 타면 좋은데 둘이 갈 때는 항공권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혼자 갈 때는 직항

둘이 갈 때는 경우 편을 자주 이용했다.      

6월인가 7월인가 여름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출발하는 날짜 며칠을 앞두고 나는 몸이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감기 기운인가. 몸살인가... 잘 아프지 않은 체질이라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냥 이러다 말겠지.. 하면서 약도 먹는 둥 마는 둥 그렇게 며칠을 버텼다.


보통 감기 기운이 있어도 3-4일 후면 괜찮아지곤 했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아픈기가 싹 가시지를 않고 계속 우리... 하게 아팠다.


이러다 출장 때까지 이러면 어떡하지? 불길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일모레가 출장일인데 한밤중에 열이 심상치 않게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응급실을 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설상가상 장마철이라 마침 비가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아... 이 비를 맞고 병원으로 뛰어다니면 없던 병도 생기겠다 싶어서 그냥 오늘은 넘기고 내일 하루 시간 있으니까 환전하러 나간  김에 병원도 들러야지. 나는 끙끙 소리를 내며 그 밤을 넘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냥 홍수가 나든 떠내려가든 병원으로 갔어야 했는데 참 멍청한 결정이었다.

     

여하튼 다음날 점심이 지나서 병원에 들렀고 감기라는 진단을 받고 약을 받아왔다.

이상하게 낮동안에는 열기운 별로 없어서 나는 그냥 약을 먹고 여기저기 돌아도 다니고 내가 출장을 간사이 아이들을 차질 없이 학교도 다니고 밥도 냠냠 잘 먹을 수 있도록 단속도 하고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그러다가 오후 무렵 아...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건 내가 평소 느껴보던 열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불덩이였다.

희한하다... 감기로 이렇게 열이 오르나?  

그러나 정작 문제는 나는 내일 출장을

떠나야 하는 몸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상태로는 비행기에 오르게나 해줄까 싶었다.

안 되겠다 방법이 없다.

응급실로 가자.

이미 오후가 늦은 시간이라

일반병원으로 가기는 늦었다.

이러다가 내일 비행기 못 탄다.

응급실로 가자.      


애 낳으려고 한밤중에 갑자기 진통이 시작되어서 응급실로 뛴 적은 있지만 내가 몸이 아파서

스스로 응급실에 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분당 서울대 병원 응급실.

갑자기 분당 인근에 원인모를 바이러스라도 퍼졌나. 아니면 장마철에 퍼붓는 비에 놀라서 단체로 경기라도 일으키셨나. 분당 주민들이 여기다 모여있나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복도에 만들어둔 예비 병상까지 모두 환자로 가득가득했다.


(이미지출처-서울대병원홈페이지)


다른 병원을 갈래도 비가 너무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어서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할 엄두가 안 났다.

남편이 나를 데리고 갔는데 그냥 여기서 기다렸다 진료를 받는 게 낫겠다고 어디서 허름한 침대를 하나 구해다가 나를 눕게 해 주었다.      


두어 시간을 기다렸나... 진료받기를 거의 포기하려던 무렵.

드디어 하얀 가운을 입고

"나는 피곤한 의사입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

라는 경고를 온몸으로 보내며

젊은 의사가 나한테 다가왔다.


어디가 아프세요?

나.. 열이 많이 나고 온 몸이 아프네요

그래요? 한번 봅시다.

젊은 의사는 내 열을 재고 이리저리 청진기로 검진을 하더니 모로 누워있던 내 몸을 홱 돌려서 똑바로 눕게 했다. 그리고는 아랫배 쪽을 꾹꾹 눌러보더니 방광염인가? 하고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중얼거렸다.


일단 방광염 검사를 해볼게요. 그러더니 간호사를 시켜서 피도 뽑아가게 하고

나한테는 소변도 받아오게 시켰다.

한 시간쯤 후에 그 피곤의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결과가 나왔는데요. 방광염이 아닌데요?


엥? 제가 언제 오줌보가 아프니 좀 봐주세요.라고 했나요? 저도 제가 왜 아픈지 몰라요.

그러니까 너를 찾아왔지요

나는 황당해서 따지고 싶었지만 야단법석 응급실 좁은 침상 위에서 이를 악물로 끙끙 앓느라고

이미 충분히 지쳤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말 걸지 마' 의사한테 제대로 따질 기력도 없었다.

아... 그러면 저는 뭔가요. 죽을병인가요? 방광염이었어야 하는데 아니면 저는 뭔가요..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지만 나는 그냥 눈을 감았다.

온몸을 한참 이리저리 촉진하던 의사가 또다시 혼잣말을 했다.

척수염인가?

(척수염은 또 뭔가? 열이 높으면 둘 중에 하나라는 건가? 젊은 양반. 혼잣말만 하지 말고 설명을 좀 하게나)


척수염 감사할게요. 의사는 짧게 말했다.

피야 혈관으로 뽑고 소변이야 가서 받아오면 되지만 척수는 어떻게 검사하지?

미쳐 궁금할 새도 없이 간호사는 거창한 척수액 검사 장치를 들들들 밀면서 침대 발치로 들이닥쳤다.


 병원은 척추검사가 장기인 건지.

원래 그 검사를 그렇게 자주 하는 건지

준비는 신속했다.

트레이 위에  스탱인데 은인지 생긴 건 주사기 같은데 재질이 금속이라 언 듯 총처럼도 보이는 팔뚝만 한 물체가 놓여있었다.

나를  모로 눕히더니 등을 허옇게 까올렸다.


중간에 구멍이 뻥 뚫린 녹색 천을 식탁보 펼치듯 펄럭 펼쳐서 등전체를 덮으니.

안 그래도 열기운에 달아오른 뜨거운 등짝이 차가운 소독포에 닿자마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2차로 차가운 소독약을 들이붓듯 발라대니 나는 이빨이 딱딱 부딪히게 추웠다.

검사받아 죽는다더니.

검사 시작도 전에 추워서 기절할 판이었다.


그 무섭게 생긴 은색 왕주사기는 척수액을 뽑아내는 도구였고 나는 이제 곧 그것에

깊이 찔릴 판이었다.

오냐. 해보자. 까짓것 애도 세 개나 낳은 내가 척추든 뼈든 까짓 주사기에 좀 찔린 들 죽기야 하겠나.

이를 악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좀 아플꺼에요. 좀 참으세요. 안 참는다고 봐줄 것도 아니면서 꼬박꼬박 경고를 줬다.

곧 주사기가 내 등을 뚫고 척추를 관통하는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주사기라는 것이 응당 피부를 뚫고 아야야 하는 느낌과 함께 혈관이든 근육이든 어딘가 살을 아프게 할 수는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버 왕주사기가 내 뼈를 뚫고 들어오는 느낌은 이건 아픔이라기보다 온 몸이 흔들리는 층격이었다.


남편에서 전해 들은 내용으로는 그 관을 타고 맑고 투명한 물 같은 척수액이 흘러나왔고 종이컵으로 반절 넘는 물을 빼가서 저렇게 많이 가져가도 되나.. 싶었다고 했다.    

너무 많이 빼가는 거 아닙니까 항의해서 반 컵쯤 다시 돌려준다 한들 그걸 다시 뼈 속에 욱여넣을 방법도 없으니 이미 떠나간 버스였다.   


여하튼 다시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흘렀고 다시 한두 시간 후에 의사는 또 고개를 꺄우뚱 거리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방광염도 아니고 척수염도 아닌데요? 왜 그러지?

아... 누가 이 멍청한 레지던트 좀 내 앞에서 치우고 제대로 된 의사를 좀 데리고 와주세요 나는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이 의사는 온몸의 기관이 방광이랑 척추밖에 없는 동물들이 사는 별에서 의학공부를 했던가.

방광에 염증이 없으니 이번에는 척추염일 거라는 신박하고 심플한 발상의 전환.

아메바도 그보단 복잡하게 아프겠다


기력도 지식도 없는 환자는 그저 조용히 의사님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온몸에 존재하는 장기 순서대로 왜 열이 나는가에 대한 검사를 다해볼 작정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서가 방광과 척수라니. 방광이야 그렇다 치고 다짜고짜 척추를 들볶아서 그 안에 물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지만 딱 봐도 알량하게 들어있을 것 같은데 반 컵 분량이나 뽐아내도 괜찮은 것인지 환자를 이렇게 더 불안하게 해도 되는 건가. 화가 났다.


원래 열이 나는 환자를 그렇게 처리하는 것인지. 그 의사의 대처법이 특이했던 것인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여하튼 의사도 지쳤던지. 거기서 마무리하고 대충 감기일 거라고 해열제 먹어보고 내일도 아프면 다시 병원으로 오라고 총알같이 설명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쌩 가버렸다. 자기도 갸우뚱거리느라 지쳤겠지만 나야말로 기진맥진해서 그 양반을 더 잡을 힘도 없었다.


감기약인지 진통제인지 약만 한아름 안고 우리는 다시 천둥번개를 뚫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일이 이렇게 일단락되었으면 좋으련만 이때부터가 진짜 시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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