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인 Dec 22. 2021

졸리다 건들지마라 .

러시아 문신 씹어먹는 한국 아줌마.


러시아는 영국이나 일본에 비해서

오... 돌아다니기 좀 무서운 나라였다.


일단 남한테 친절했다가 누구한테 크게 혼난 적이 있는 사람들처럼.

공항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비행기 스튜어디스들이나.

민박집 할머니나 택시 기사나.

오로지 불친절했다.


에어로 프로트.

러시아 민간항공.

2000년대 중반에 싸다는 이유로 유럽 갈 때

몇 번 탔는데

이 황당할 정도로 불친절한 항공사는

나에게 참 다양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었다.


한 번은 거칠고 맛없는 밥을 억지로 다 삼키고  

그나마 먹을만한 주스 한잔 더 달라고 했다가

스튜어디스가 째려보며 쌩까더니 옆에 있는 동료에게

‘저 동양년이 주스를 자꾸 달라고 한다’고

대놓고 쌍욕을 했고.

그걸 옆자리 러시아 말 잘하는 한국 아줌마가 알아듣고 나한테 일러바쳐 준 일도 있었다.

고마웠다.

내 얼굴에 대놓고 욕을 한들 내가 어쩌겠는가.

동료한테 해주다니 친절하기가 선녀 같았다.


그 다음번 비행에서는 어떤 러시아 마피아떼

한 무리와 본의 아니게

(정말 본의 아니다. 나는 정말 조용히 살고 싶다)

맞짱을 뜰뻔한 일이 있었다.


조용한 아침 비행기였고

비행기 시간에 맞추느라 밀리는 차 안에서

발을 어찌나 동동 거렸는지 비행기 타자마자 급 피곤해졌다.

비행기는 높이 날아올랐고

사람들도 식사도 다 마치고

삼삼오오 휴식을 하거나

화장실에 다녀와서 잠자는 자세를 취하던 중이었다.


운 좋게도 옆에 자리들이 텅텅 빈자리에 배정받은  나는 비행 내내 길게 누워서 갈 수 있다고 좋아하던 참이었다.

보통 항공사에서 좌석의 앞쪽부터 채워나가기 때문에 아주 만석이 아니라면

뒤쪽으로 갈수록 약간 자리가 헐렁해지는데

보딩 할 때 갖은 아양과

내가 지병이 있다는 황당한 핑계로

뒤쪽의 헐렁한 자리를 배정받았다.


(지병이 뭐냐고 묻지는 않았다.

죽을듯한 표정으로 몸까지 살짝 떨었더니

진짜 죽을병인가 싶어서 묻기도 겁났으리라.)


그런데 이때 한 무리의 물컹물컹 해 보이는

덩치가 집채만 한 러시아 남자 일당들 서너 명이

내 자리 옆 복도에 뻗쳐 서서는

내 머리 위로 엄청 시끄럽게

계속 수다를 떠는 것이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손에 손에 러시아 보드카를 병째로 들고 계속 마셔가면서.

그러니 목소리는 더욱더 높아져갔다.      


나는 이제 좀 자야겠는데 이 덩어리들이 부어라 마셔라 폭풍 수다는 떠니

나는 누울 수도 잘 수도 없었다.


우리나라 항공사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고 승무원들이 적당히 제지도 해주겠지만

여기는 택도 없다.

승무원의 도움을 청하려고 목을 빼고 둘러보았지만 식사 서비스를 마친 승무원 언니들은

자기들끼리 벽에 기대서 짝다리 짚고 시시덕거리느라 여기 상황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언듯 보면 이 덩어리들이 그 언니들한테 작업을 걸기 일보직전 같은 아슬아슬하고 껄렁한 분위기가

얼추 닮아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 하니 소리쳐 불러도 어차피 본체만 체 할 것이 뻔했다.

속으로 쫌 졸렸지만 내가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여기서 내가 밀리면 이것들이 내 귀한 다리 뻗는 자리를 다 점령하고

비행 내내 가지도 않고 시끄럽게 할 것이 뻔했다.


엄밀히 말하면 나도 내 자리 하나만 내꺼지

나머지 옆자리들은 비어있는 자리라

누가 먼저 가방 던지면 그 사람이 앉겠다는데

말릴수도 없으리라

한시바삐 머리 다리 쭈욱 뻗어서 잠들어 버리는 게 수였다.


오랜 세월 출장을 다니며 터득한 진리는 진짜로 ‘로마에 가면 로마 법대로’라는 것이다.

사실 북유럽, 영국, 일본 등의 국가에서는 서로서로 예의와 양심을 잘 지켜서

내가 섣부르게 튀는 행동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 인도 등의 국가에서는 피차 내 편한 대로 행동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나 혼자 우아 떨고 있다가는 나만 손해 보기 십상인 경우가 많다.


오호라... 요것들은  사실 덩치만 문짝만 하지 얼굴은 끽해봐야 우리 큰아들보다

서너 살 정도 많아 보였다.

얼굴들은 앳되어 보이는데

팔뚝 전체로 목으로 용인지 봉황인지 십장생인지

빼곡하게 문신들을 해 넣은 게 언듯 보였다.


어쭈구리? 그 와중에 미키마우스까지

한 마리 귀엽게 꾸겨 넣은 게 눈길을 끌었는데

목을 쳐들고 팔을 휘저을 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동양화가 아주 가관도 아니었다.

 

티셔츠로 대충들 가려서 그렇지 여럿이 한꺼번에 웃통 벗고 서있으면

커다란 벽화 같겠다 싶었다.      


졸리다 걸들지마라 2편에 계속


이전 09화 핀란드 랩소디 05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