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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인 Dec 15. 2021

핀란드 랩소디 05

들어는 봤나 블러드 패치.

그렇게 몇 분이나 달렸을까.

생각보다 금방 병원에 도착했다.

그저 동네의원 같은데 데려가서 비타민 주사 같은 것 한방 놔주려니 했다.

사실 나도 내가 왜 아픈지 몰랐다.


무려 서울대병원에서도 결론 못 내린

조선 아줌마의 끔찍한 두통을

이역만리 타국의 의사들이 무슨 수로

잡아 줄 것이란 말인가.

나는 희망이 없었다.      


그런데 엠뷸런스가 미끄러져 들어간 병원은

옴마야...규모를 어디다 비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당시 내 눈에는 엄청 비싸면 어쩌려고 이러나...

걱정이 될 정도로 큰 규모의 병원이었다.

복도가 끝이 없었고 무엇보다 굉장히 넓었다.

그리고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인구가 작고 돈이 많은 복지국가 핀란드 여서 그런지 시설은 쾌적하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나는 수술실까지는 아니고 시술실 정도 되는 작은 방으로 바로 옮겨졌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익숙한 의사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누워있었다.

온몸에 피곤합니다 푯말을 더럭더럭 붙이고

언제 빨았는지 빨 의향은 있는지

의사 까운을 빨지 않는 것이 격무의 증거인 것처럼

대충 꿰찬 모습으로 나타나는 젊은 의사들을 상상했다.


나이는 분명 젊은데 표정이나 말투는 이미 의사 노릇으로 몇 생애를 거푸 살고 다시 환생해서 또 의사 노릇을 하고 있는 팔자 괴로운 늙은 의사 같은 그런 사람들.

그게 내가 아는 대형병원 의사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한눈에도 친절해 보이는 세 명의 중년 여성들이었다.

옷도 그냥 간소한 평상복 투의  푸른 상하의에

머리에 맞춰 쓴 모자에는  귀여운 만화 캐릭터가 그려져 있어서

언듯 보면 어린이 병동 수간호사 같았다.

그중 제일 해맑아 보이는 한 명이 누워있는 내 얼굴 위로 쓰윽 머리를 디밀더니

헬로우? 하고 인사를 했다.      


당신이군요.

나를 지옥에서 구해줄 친절하고 밝은 의사 선생님의 당도였다.

남편에게 대충 상황을 들었는지 의사는 기분이 어떠냐.

안심해라 우리가 도와주겠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놓이는 따듯한 말들을 보따리로 풀어놓으며

내 몸을 진찰하기 시작했다.      

먼저 나를 모로 눕히고는 엊그제 서울대 병원에서 척수액 뽑았던 자리를

꼼꼼하게 한참 동안 관찰하고 살펴봤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설명.


너의 남편에게 한국에서 어떤 시술을 받았는지 설명을 들었어.

너가 원인 모를 이유로 열이 났었기 때문에 응급실에서는 너가 혹시 급성 척수염에 걸린 게 아닌가 의심했을 거야.


그래서 니 척추에 큰 구멍을 내고 척수액을 받았을 거야.

하지만 척수염이 아니니까 너는 퇴원을 했겠지.

그건 참 다행이야.

척수염을 위험한 병이야.

검사를 위해 뚫어 놓은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으로 계속 척수가 새어 나왔던 거야.

그래서 뇌압이 낮아졌고. 그래서 두통이 생긴 거야.


저절로 나아지는 경우도 많지만 너처럼 심하면 블러드 패치라는 시술을 해야 해.

이 시술을 하면 금방 나아져.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거야.     

dramatic effect.

아픔을 경험하는 모든 인류가 꿈꾸는 그것.

믿을 수가 없었다.


내용도 놀라웠지만 그걸 이 이역만리 타국 의사가 척보고 알아내다니.

와... 세상 어디나 의사는 의사구나.

우리가 같은 인간종 이라는것이 새삼 고마웠다.

핀란드인이나 한국인이나 위아더 월드.

금방 나아진다니

그런 기적이 일어날까.


나는 지난 만 하루 정도에 일어난 모든 고난이

마치 내 인생 동안 계속된

불치의 고통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팔이들한테서 하도 수없이 속아서 몸도 마음도 베베 꼬인 사람처럼

치료해준다는 말이 덥썩 믿어지지 않았다.   

   

시술은 의사의 말처럼 간단했다.

구멍 난 타이어에 지렁이 뽄드  끼워 넣듯이 내 피를 가지고 새고 있는 구멍에 뭘 어떻게 조치를 했나 본데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고통도 없었다.


의사는 점점 두통이 사라질 거라고 편하게 쉬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한두 시간쯤 시간이 지났나.

아니면 바로였던가.

지난 열몇 시간 내내 머리를 흔들고 쥐어짜고 난리를 치던 그 거인들이 물러갔다.


서서히 좋아졌다기보다 어느 순간 뿌옇던 눈앞이 벼락 치듯 번쩍하고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드라마틱 아라더니. 이건 진짜 드라마다.     

나는 너무 기뻐서 의사를 격하게 껴안고 싶었지만

겨우 막아놓은 척추 구멍 다시 빠질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눈물만 그렁그렁해졌다.

아... 이 간단한 시술을 안 해서 내가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구나.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 들은 바로는 나와 같은 증상이 척수액 검사를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보통은 일주일 정도 절대 안정을 하면 자연치료도 되지만 그 과정에서

꼼짝 못 하고 누워만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내가 일반 병원에 들렀고 내일 해외로 출장을 간다는 것을 경험 많은 의사가 알았다면

이렇게 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힘든 검사는 시행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북새통 같은 응급실에서 경험이 없는 레지던트가

밑도 끝도 없이 열이 펄펄 나는 환자한테 일단 해볼 수 있는 검사를 다해보려 애썼고

부작용 같은 건 설명해줄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이해해 주기로 했다.

아니며 어쩌겠는가. 이왕 벌어진 일이었고.

천만 다행히 세상에 블러드 패치라는 시술이 없었으면 어쩔뻔했나.

세상 어떤 병이 이렇게 단박에 괜찮아질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단순한 감기도 약 먹고 쉬고 며칠은 골골 앓아야 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는데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이 병은 과정이 거창해서 그렇지 원인만 치료하면 정말 감쪽같이 괜찮아졌다.


이런 경우도 있구나. 척수가 샌다더니.  

싱크대 물 넘칠 때 수도꼭지만 꽉 잠그면 얼른 상황이 마무리되는 것처럼

이런 경우도 있구나.

생각할수록 신기했다.


아.. 이름도 생소한 그 치료에 너무 감사했고 신기한 김에 어디 얼마나 기특하게 잘 막혔나 내 등짝을 들여다보고도 싶었지만 고양이도 아니고 목을 회까닥 돌리는 재주가 없으니 가만히 누워서 싱글벙글 만 했다.

그 뒤로 하루정도 그 병원에 입원하며 등의 구멍이 완전히 막힐 때까지 누워서 극진한 간호를 받았다.

시간마다 건강식이 나오고 등이 잘 아물어가나.

누가 보면 엄청난 큰 수술을 받은 환자처럼 의사 간호사 번갈아 드나들며 간호해주었다.      


다행히 영국으로 스탑 오버하는 비행기표도 다음날 표로 추가금 없이 바꿔주고

공항으로 갈 때는 병원 엠뷸런스로 데려다주는 친절까지...

나는 헬싱키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선물을 받았다.    

 

핀란드는 내 생애 처음 가봤다.

가봤다고 할 수나 있을까.

일정이 쫓겨서 퇴원 후에도 다른 데는 감히 들를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핀란드 땅만 밟았지 가본 곳이라고는 공항과 시립병원 딱 두 군데였다.

그래도 내가 가본 세상 어떤 나라보다도 기억에 남는 고마운 나라였다.


모든 치료가 끝나고 퇴원을 하면서 쓰리 시스터즈들을 일정 잘 마치고 한국으로

안전하게 돌아가라고 꼬옥 안아주며 행운을 빌어주었고 등 잘 관리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헬싱키 하늘. 헬싱키 병원. 다시 헬싱키 하늘.

나의 블러드 패치 헬싱키의 추억을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앤틱을 누가 살까 -25 중국편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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