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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인 Dec 25. 2021

졸리다. 건들지 마라 2

들어는 봤니? 한국 지하철 아줌마 가방.

여하튼 나는 자야만 했다.


유난히 잠에 약하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신경이 날카로와져서 사흘 굶은 시어머니가 된다.

게다가 내가 100년 묵은 지병환자 흉내까지 내가며 어렵게 얻은 길쭉 자리 아닌가.

그리고 나는 놀러 가는 사람이 아니다.

집안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무려 비즈니스 출장을 떠나는 길이다.


비록 내편은 한 명도 없지만

나는 막강한 대한민국 아줌마.

한국 아줌마의 매운맛을 보여줄 차례이다.


내가 벌러덩 누워 자고 싶어서 그러는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러시아에서는 물 대신 술 마신다고 하지만

이건 아니지.

비행기 기내에서 병나발이라니.  

스튜어디스가 못 봤나?

확실치 않지만 봐도 그러면 안된다 한마디 할 것 같지도 않고

분위기를 봐하니 잘하면 대작도 할 것처럼 흐믈흐믈한 분위기다.


이 덩어리들이 시끄럽고 거추장스럽지만 주위에 누구도 감히 거 좀 조용히 합시다 하는 사람이 없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도 무섭지만

한창 흥이 올라 우렁차게 떠드는 사자들이라니

나도 평소 같으면 모른척했을 것이다.    

   

너무 졸렸기 때문에 불끈 용기가 솟았다.

나는 원래도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졸려서

뭐 하던 거 손에 그대로 쥐고 잠이 드는 스타일이다.

자발적 기면증이라고 부르는데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


시거든 떫지나 말라 했던가

이 덩치들 목청들도 엄청 크다

기차화통은 쌂아 먹었거나 확성기를 갈아 먹은게 틀림없다.

몇번 껄껄 웃다가 발동들이 걸렸는지 술 한번 들이킬때마다 비행기 천정이 덜덜 울리게

폭소를 터트리고 의자 등받이를 탕탕치고

가관도 아니었다.

더이상 참으면 안된다.

이런녀석들에게는 다리몽댕이 정신의

세계적 교육관이 필요하다.


일단 내 가방을 녀석들이 옥시글옥시글 모여있는 끝 좌석 쪽으로 무심하고 시크하게 툭 던졌다.

일종의 선전포고다.

들어는 봤니? 한국 지하철 아줌마?

가방이 이런 신통한 쓰임이 있는지 몰랐을께다. 메롱.


자기 몸에 살짝 맞았는지 어쨌는지

한 녀석이 움찔했다.

제일 끝자리에 엉덩이를 슬쩍 걸치고 앉아 있던 녀석이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내 머리가 안전하고 고요히 쉬고 있어야 하는 자리다.

그런 귀한 자리에 고주망태의 엉덩이라니.

누구의 자리도 아니자만 보드카 나발러들한테 양보할 생각은 1도 없다.


오냐 이때다.

나는 잽싸게 내 자리 주변의 좌석 네 개의 팔걸이들을 모두 올리고 다리를 쭉 뻗고 아예 길게 누워버렸다.      

등받이들 너머로  한껏 떠들던 녀석들은 웬 동양인 아줌마가 느닷없이 자기들이 점령한 공간 정중앙에 댓 자로 뻗어버리자. 순간 조용해졌다.

거나한 술판 한중간에 자리 펴고 누워버린 셈이니 그 어깨들이 할 일이라고는 내가 하는 꼴대로 멀뚱하니 내려다보는 일 밖에 없었으리라.


누우면서 동시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지만 

확실하게 느껴지는건

내 명치끝부터 발끝까지  온 몸으로 쏟아지는

녀석들과 주변의 시선이었다

금방뜯은 이쑤시개통처럼 빡빡하고 촘촘한

시선들이었다


다리께에 서있던 녀석 둘은 주춤주춤 물러서는 눈치였지만 내 머리맡에 서있던 두 녀석은 내 머리통을 내려다보며 뭐라고 뭐라고 한참을 더 떠들었다.

위치상 내가 머리로 그 덩치들의 엉덩이를 의자 밖으로 불도저처럼 밀어 버린 형국이었기 때문에 사실 주먹이든 무릎이든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이든 뭘로 한 대 내리치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지만 이미 뻗은 몸이다.

어. 이게 왜 여기 있지? 하면서 주섬주섬 말아 올리긴 이미 늦었다.

 


워낙 특이한 상황이라 그런지 주위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도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진짜 깡패들 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상관도 없지만 당연히 등골이 서늘했다.

이렇게 쫄릴줄 알았으면 얼굴에 뭐라도 뒤집어 쓰고 누울껄 허옇게 까고 누운 얼굴이 특히 허전했다.

내리친다면 당연히 얼굴이 만만하리라

우리 엄마 버전 세상 젤 이쁜 얼굴인데

잘하면 뭉개질 판이었다


하지만 진짜 다행히 녀석들이 조용히 물러나는 눈치였다.

어쩌겠는가.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꽉꽉 막힌 비행기 안에서 즈이들 기분 나쁘다고

쪼그만 여자를 상대로 폭력을 쓰기야 어려울 터였다.

말싸움을 했다면 일이 커졌겠지만 다행히 나는 러시아 말을 몰랐고. 알았다 해도 말로 싸워서

될 일이 아니었다.

들이대는 대야 어쩌겠는가.

원래 행동은 말보다 강하다.

 

내가 뭐랬나.

덩치만 컸지 끾해야 우리 큰아들 또래일꺼라고 했지.

아니나 다를까 이녀석들 뽀르르 달려가서

즈이들의 깐부 스튜어디스 누나한테 일러바치고

그중 한 두 누나야들이 그제서야 어기적 어기적 다가 왔다.

스튜어디스가 내 어깨를 우왁스럽게 흔들면

이렇게 누우면 안된다고 한마디 하는 눈치다.

나도 안다. 비행규정이 길게 누우면 안될꺼다.

하지만 술먹으며 고성방가하는 어깨들한테는 한미디도 안하고 모른척하던 너희들 아니니

만만한 동양여인한테만 들들 볶는건 너무 아니잖니?

나는 눈을 꽉 감고 이미 골아떨어진 사람처럼 꼼짝도 안했다.

죽었든지 기절했든지 했으니까 기냥들 가라.


몇번 뭐라고 즈이들끼리 쓰바쓰바 하더니 다들 흩어졌다.

사방이 단박에 조용해졌다.


그 뒤로는 비행내내 어깨들이 조용해졌고 덕분에 다들 편안히 잠들수 있었다.

한국 같으면 차마 그렇게 못했겠지만. 즈이들도 교양 없이 나오니까

나도 그냥 같이 무식한 아줌마처럼 행동해도 하나도 미안하지도 않았다.

로마에선 로마법

러시아에선 러시아법      
어깨한테는 어깨법



(다음엔 중국이야기 들려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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