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인 Dec 27. 2021

가까이하기엔 너무나02...

중국을 여행하는 법 02

공장 사람이 가르쳐준 방향으로 한참을 걸어가니

중국어로 쓰여 있어서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그 밑에 남자 여자 그림이 그려있어서

본능적으로 아... 여기가 화장실이구나 느껴지는 문짝이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여는 순간

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화장실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다.


들어서자마자 처음으로 눈에 띈 것이 너무나 친숙한 하얀 재래식 변기였으므로

화장실은 틀림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펑 트인 공간이었다


족히 20평은 될 것 같은 넓은 화장실이었다.  

채광까지 좋아서 언듯 보면 영락없이

포근한 가정집 거실 같은 분위기였는데  

바닥에 줄줄이 솟아 있는 변기 대가리와

꼬릿한 묘한 냄새가 여기는 화장실이야... 놀랐지? 하고 말해주고 있었다.  


볼록볼록 한 변기 대가리가

족히 20개는 넘어 보였다.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칸막이 없는 중국의 공용(너무나 공용) 화장실이었다.     

 



아... 화장실이란 모름지기 동서고금 언제어디나

마땅히 응당 갖춰야할 꼬라지가 있지 아니한가


작은 휴지통 하나씩 거느리고

오붓하고 내밀한 독방에

누가볼새라 감쪽같이

들어앉아 있는것이

볼일 있는 나나

밑에 깔리는 너나

피차 마땅한

그림의 완성 일텐데


하얀 바닥 변기들이 훤한 뻥 뚫린 공간에

수십 개가 줄지어 있는 모습이

그렇게 어색할 줄이야.


방을 처음 본 것도 아니고

변기를 처음 본 것도 아니지만

단독으로 마주해야 할 그 무엇이

단체로 나를 반길 때의 부담스러움이란.  

        

다행히 어떤 아주머니 한분이 볼일을 다 보시고 바지를 주춤주춤 올리던 중이었다.

올리던 중이니 망정이지 내리던 중이었으면 나는 조용히 사과를 하고 그 방(?)을 나왔을 것이다.


내 당황스러움을 미리 예상한 중국인 여사장이 껄껄 웃으며 나를 쫓아와서

그 볼일 마친 아줌마를 얼른 내보내고 나를 들여보내고

화장실 전체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쓰라고 배려해주었다.

고마웠지만 당황스럽기는 여전했다.


아...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너무 오랜 세월  작고 밀폐된 화장실에서만 볼일을 봤구나.


아... 좀 더 자주 넓은 들판을 이용할걸.

그렇게 웅장한 화장실에서 처음 엉덩이를

허옇게 깔라니

세상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살다 보면 별게 다 고마워지지만 벽의 소중함을 그렇게 느끼게 되다니.

화장실 벽 따위를 활용해서 나에게 인생을 가르치실 계획이셨나.

신은 가끔 나에게 너무 디테일하시다.      


아... 대륙의 스케일이여.

대륙의 기상은 화장실에서도 통하는구나.

대단한 깨달음이었다.


이런 화장실도 올림픽을 맞아 대부분 없어지고

이제는 중국에서도 시골지역에 가야 이런 공용(?) 공동(?) 화장실을 볼 수 있단다.

하지만 정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곳이라

중국 시골을 들려도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전 12화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