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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인 Dec 14. 2021

핀란드 랩소디 04

핀란드 랩소디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릴 무렵.

나는 여기가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런 건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내 두통이 어떻게 되었나.. 그게 궁금했다.

그게 그 자리에 계속 있다면 여긴 지옥이다.

사라졌다면 천국이 틀림없다.   

   

어디선가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옥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남편은 누군가와 두런두런 낮고 느린 영어로 뭐라고 뭐라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떴다.


낯선 색상의 옅은 무늬가 그려진 벽이 눈 바로 앞에 있었다.

다행히 나는 누워있었으므로 극심한 두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머리를 돌릴 수도 누구를 부를 수도 없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두려웠다.


쓰러지면서 팔다리를 어디에 부딪혔는지 심하게 아팠다.

머리를 어디에 더 박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오늘 머리를 두어 번만 더 박았다가는 난치병이 아니라 두개골 골절로

세상과는 빠이빠이 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깨어난 기척을 누군가가 느꼈는지

남편에게 알렸고

남편은 나한테 살짝 다가와서 괜찮냐고 물었다.

얼굴을 조금 돌려 상황을 살펴보니.

나는 비행기 뒤쪽 갤리 공간 바닥에 담요를 깔고 눕혀져 있었고

내 주위에는 너덧 정도의 승무원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핀에어로 헬싱키를 경유해 런던까지 가도록 스케줄 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분위기인 것으로 보아 내가 그 자리로 옮겨지고도 꽤 시간이 지난듯했다.

남편 뒤로 한눈에도 꽤 높은 사람인 듯 한 푸른 눈의 제복 입은 신사가

간단한 영어로 내게 괜찮냐 상태가 어떠냐 물었고

나는 진짜 모기만 한 소리로 오케이라고 대답했다.  

핀란드 항공이니까 핀란드 사람이겠지.  

승무원들도 제복들도 다 핀란드 사람들이었다.

핀란드가 어느 나라 말을 쓰더라.

머리 때문에 이 지경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머리는 잠시를 쉬지 않고

모든 것을 궁금해했다.


하지만

죽지도 않았고. 머리도 더 이상 안 아프니 나머지는 아무것도 상관이 없었다.

몸살인지 감기인지. 응급실 사건 이후 지속되는 길고 긴 고난들이

나를 슬슬 득도의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나는 보살의 심정으로 주변을 돌아봤고.

다 천사처럼 보였다.

나를 바닥에나마 눕히고 보살펴주고 괜찮냐고 물어주는 사람이 너무너무 고마웠다.

    

아마 전체적인 상황은 남편이 설명을 해서 다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의식이 명료해질수록 말하는 게 편안해져서 나는 내가 직접 내 상황을 설명했고

그 푸른 눈의 친절한 제복 아저씨는 내 설명을 꼼꼼히 메모를 하는 눈치였다.

나는 머리를 들거나 움직이는 것이 겁이 났다.

혹시라고 괜찮아 보이면 제자리로 돌려보낼까 봐 눈을 꼭 감고 몸을 더 구부렸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대로 비행이 계속되었다.


가끔 물이라도 줄까 하고 묻는 여승무원들이 있었지만 나는 비몽사몽 대답은 못했다.

좁은 갤리 공간을 내가 거의 다 차지하고 누워있다시피 했으니 음식 서빙하고 뭔가를 꺼내고 할 때 다들 힘들었을 텐데 나를 피해서 그걸 어찌 처리했나는 기억에 없는 걸로 보아 착륙할 때까지  내내 깨지 않고 계속 잤던 것 같다.      


드디어 헬싱키에 도착했나. 웅성거림이 얼마 동안 계속되더니. 고도가 낮아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누워있는 덕분이든 낮아진 고도 덕분이든 두통도 괜찮았다.         

덜컹거리는 느낌이 들면서 착륙이 완료되고 승무원들이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그때 남편과 아까 그 친절한 아저씨가 다가왔다.


헬싱키 시립병원으로 너를 이송할 것이고 승객들이 다 내린 후에 응급구조팀이 들어와서

나를 옮겨줄고 다 할 거니까 걱정 말고 누워있으라고 했다.

친절한테 꼼꼼하기까지. 역시 핀란드다.      



응급구조사들에게 업히다시피 기대서 처음 나가본 헬싱키의 바깥공기는 신선했다.

비행기 바로 아래는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나는 곧 구급차에 옮겨졌다.      

아... 앰뷸런스가 병원은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응급구조 장비가 탑재된 모습만 봐도

어지간해서 이제 죽지는 않겠구나. 든든한 생각이 들었다.


불안했지만 아픈 사람 살리는 기본적인 자세야 세상 어디 병원인들 같을 테니까.

약간 착한 훌리건같이 생긴 스킨헤드의 응급구조사가  무슨 주사를 준비하면서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지금 너에게 진통제를 주사해줄 거야.

안전한 거니까 걱정 하지마 이걸 맞으면 한결 편안해질 거야.

그리고는 팔에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 진통제는 말기 암환자한테 처방하는 마약성 진통제라고 했다. 

잠시후 나는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것 같은 몽롱한 기분을 들었다.

온 몸이 노곤해지고 의식까지 희미해지는 그 와중에도 두통은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앤틱을 누가 살까 -2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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