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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Jul 24. 2021

맛있는 건 언제나 진짜

에세이_하루 한 장 드로잉

주말  /  digital drawing  /  심희진_소소




내 삶 속에는 두 종류의 커피가 있다.


 평일에 먹는 가짜 커피가 그중 하나인데 주중에 주 5일을 먹는 가짜 커피는 카페인을 섭취하여 졸음이 쏟아지는 오후를 견디기 위한 용도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마시기 시작하는 가짜 커피는 어떨 때는 근처 카페에서 사 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회사 지하 휴게실에 있는 원두커피 머신에서 뽑기도 하는데 둘 다 커피 향보다는 탄 맛이 많이 나기 때문에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중 제일 선호하는 가짜 커피는 부장님이 제공해 주시는 커피 머신에서 뽑는 스타벅스 캡슐 커피이다. 부장님 자리 커피 머신 옆에는 여러 종류의 스타벅스 캡슐이 있다. 나는 커피 맛을 잘 아는 편은 아니라 보통 커피 캡슐의 색으로 그날의 커피를 고르는 편이다. 커피 캡슐에는 노랑, 진주황, 카키, 보라, 남색이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나도 모르게 노랑, 진주황 캡슐에 손이 많이 가고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거나 기분이 가라앉는 날에는 카키나 남색을 마시게 된다. 색이 주는 느낌으로 고르는 커피는 그날의 기분과 잘 맞아떨어지는 편이라 앞으로도 이 방법을 계속 고수할 것 같다.

 하나 쓸데없는 말을 더하자면 나는 맥주도 패키지를 보고 고른다. 술꾼들이 들으면 헛웃음을 금치 못할 황당무계한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커피 맛을 모르듯이 나는 맥주 맛 또한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마트나 편의점에 가서 수많은 맥주들 중에 그날의 감정과 패키지 디자인을 고려하여 살 맥주를 고른다. 내가 맥주 맛을 잘 모르니 내리는 결론일 수도 있으나 이 역시 내가 그 순간 원하는 느낌과 맛이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이 방식에 크게 불만이 없다. 내가 느낀 시각과 미각이 일치하는 순간은 충분히 매력적이며 맛을 볼 때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와 일치하는지 확인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간을 가장 먼저 손쉽게 매료시키는 건 시각이다. 내가 느끼는 감각 중 첫 번째인 감각에 중점을 두고 커피나 맥주 등 무언가를 고르는 일은 골똘히 생각해 보면 꽤 이성적인 데다가 만족할 확률이 큰 판단일지도 모를 일이다.


 나머지 한 종류의 커피는 주말에 마시는 진짜 커피이다. 졸음을 참기 위해 마시는 습관적 커피가 아닌 정말 마시고 싶어서 스스로 선택한 커피라 할 수 있겠다.

 주말 아침 평소보다 조금 더 늦잠을 자고 일어나 과일이나 간단한 아침을 먹은 후 오전에 마시는 커피는 주말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주말에 마시는 진짜 커피는 늘 함께 곁들이는 사이좋은 파트너들이 있다. 반려견과 산책길에 들려 사 오는 빵집의 스콘, 소금 빵, 호두파이, 크루아상 혹은 크림치즈를 바른 베이글과 아메리카노를 함께 먹으면 이것이 주말 힐링 그 자체.  또는 주말 오후 친구들과 카페에서 즐기는 커피도 빼놓을 수 없다. 온갖 TMI를 남발하며 마시는 커피는 평소보다 더 시원 쌉싸름하며 맛깔스러운 맛을 낸다.


 가짜 커피든 진짜 커피든 맛 자체에는 아마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내가 오롯이 원해서 선택했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삶 속에는 거의 대부분 하기 싫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출근도 하기 싫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도 싫고, 머리 말리는 일도 싫고, 지하철에 끼여있는 것도 싫고, 직장 상사의 쓸모없는 오지랖도 싫고, 내일 출근을 위해 재미있는 저녁 시간을 접어두고 집으로 가는 것도 싫고,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 이토록 하기 싫은 일 투성이를 견디며 해나가는 삶 속에서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들은 존재의 크기와 상관없이 큰 숨구멍이 되기 마련이다. 그게 아무리 커피 한 잔이라도 말이다.





 내일 오전에는 갈릭 베이글을 반 갈라서 에어프라이어에 돌린 다음 올리브 크림치즈를 듬뿍 올려 한 입 베어 먹은 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흠뻑 마셔야지. 그리하여 아쉽지만 꽤 괜찮은 일요일을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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