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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Aug 11.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 [서울 충무로 필동면옥]

바람이 차가워져도, 햇빛이 뜨거워져도 언제나 냉면에 소주. 

오늘은 어떤 음식점을 소개할까 고민하다 곧 말복도 오고 해서 선택한 곳이 

바로 너무나 많이 알려지고 웬만한 사람은 다 알 것 같은 집, 필동면옥이다. 


'복날'이라는 것은 우리에겐 '빨간(쉬는)날'은 아니지만 챙기지 않고 지나면 왠지 서운한 느낌이 드는 그런 존재감을 가진 날이 아닐까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복날엔 삼계탕이나 치킨을 찾거나 몸을 보할 수 있다고 믿는 음식을 찾는 게 일반적인데 나는 오래전부터 복날엔 냉면이나 막국수 등의 차가운 면을 즐겨왔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이상적으로 불어왔던 '평양냉면' 열풍은 

이제 웬만한 사람들이면 평양냉면의 계보와 먹는 법, 그리고 타래 트는 법까지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평양냉면을 핫한 아이템으로 올려놓았다.(게다가 평양냉면의 가격도 핫하게 올랐고) 오늘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곳이자 내 짧은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냉면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필동면옥 물냉면

평양냉면을 처음 시도한 것은 30대 초반이었지만, 마흔을 넘긴 후에야 '면을 잘 말아내는 평양냉면집'에서 냉면과 수육 또는 잘 빚은 만두에 소주를 한 잔 걸치는 맛을 제대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젠 더우나 추우나 냉면집에 들어가 차가운 육수 한 모금 들이키며 마시는 소주 한 잔의 매력을 절대 놓칠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  


서울 4대문 안팎에 내놓라 하는 냉면집이 수두룩하지만, 내가 필동면옥을 좋아하는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지만 뜻깊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필동면옥이 평양냉면이라는 신세계를 처음 경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망해버린(ㅋㅋ) 옛 직장(광고홍보대행사)이 필동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점심 사장님께서 직원들을 데리고 점심이나 하자고 데리고 가셨다. 각자 물냉면 한 그릇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만두와 제육 몇 접시가 테이블에 올렸고 술을 못 마시던 그 사장님은 자신은 못 마시지만 이 음식을 먹을 땐 소주가 제격이지 하면서 몇 병의 소주를 주문해 주셨는데 그때가 평양냉면을 곁들인 음주의 첫 경험이었던 것. 


처음엔 맑고 소고기 냄새가 나는 밍밍한 그 국물에 소주를 마시는 것이 곤욕이었다. 사장님이 사주는 음식이었으니 대놓고 투정을 하거나 못 먹겠다고 거부할 수도 없는 입장.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함께 주문한 만두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훌륭한 수준의 것이었고, 돼지고기 제육도 좋았으나 제육을 찍어먹던 양념장이 너무 맛있어서 만두와 제육만으로도 소주를 마시기엔 충분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주객이 전도되어 만두나 제육을 먹기 위해 냉면집을 찾는 일이 몇 차례 되풀이되었었고, 시간이 흐르며 갑자기 '어 이 육수 너무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게 될 때까지는 몇 년의 시간을 더 흘려보내야 했다. 

이제는 서해안 낙도에 사는 처지가 되어 평양냉면을 쉽게 먹을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으니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딱 내게 해당하는 말이 되겠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지금 나와 함께 살아주시는 마누라님과의 첫 데이트 장소가 필동면옥이었다. 


사실 마눌님도 꽤 술과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첫 데이트 장소를 광장시장 순희네 빈대떡으로 정했다가 너무나 긴 웨이팅 줄에 그냥 택시 타고 바로 필동면옥으로 갔던 것. 그날 필동면옥에서 1차 후 인근 노포들을 돌며 3차까지 갔다가 집에 바래다줬으니 뭐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결혼 후 7~8년쯤 지나 그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마눌님이 '뭐 이딴 XX가 다 있어? 왕창 술이나 먹고 들어가야겠다'라고 퇴짜 놓을 생각을 했다고 들었으니... 

뭐 여하튼 지금의 우리 부부를 이어준 곳도 바로 필동면옥이다.(1층 8번 자리).  10년 후 같은 날에도 부러 찾아가 예전처럼 8번 좌석에 앉아 그 첫 만남을 기리며 냉면을 먹었던 곳이기도 하다. 


필동면옥은 평양냉면 계보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의정부 평양냉면에서 갈라져 나와 인근 을지로의 '을지면옥'(지금은 사라져 버린)과 함께 의정부 계열의 평양냉면의 계통을 잇고 있다. 게다가 세 냉면집의 사장님들이 형제간이라는 설명은 너무 잘 알려져 있으니... 


참고로 을지면옥도 필동면옥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냉면을 내고 있으나 냉면계의 고수들은 두 곳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더라. 나 같은 막 입의 소유자들은 '필동'이나 '을지'나 그곳이 그곳이라 세세하게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적어도 내게는 첫 평양냉면의 첫 경험을 안겨준 곳이 필동이라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필동면옥에 대해서는 무어라 덧붙일 것이 없다. 

냉면 육수는 고고하고 면발은 메밀향을 품은 비단과 같다. 게다가 위에 올려진 꾸미는 약간은 퍽퍽하면서 육수에 닿으면 부드럽게 변하는 한지와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동면옥의 화룡점정은 바로 육수 위의 고춧가루. 

이게 별것 아닌 고춧가루가 육수 위를 떠 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매혹적일 수 없다.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냉면이라는 음식이 이 고춧가루 때문에 색감적으로도 눈에 띄게 되고, 밍밍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육수에도 품위를 더해준다. 게다가 만두는 어떠랴. 그 큰 만두소를 무심한 듯 심심한 재료들로 채워 무뚝뚝한 면도 있지만, 굉장히 담백한 맛을 선사해 준다. 게다가 제육은 더할 나위 없고(사실 제육을 찍어먹는 양념장 맛은 아직도 좋다) 


어르신들이 아직도 자리를 많이 차지하시지만 평양냉면 열풍 후로는 젊은 손님들도 많다. 사시사철 웨이팅 하는 줄도 너무나 길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남녀노소가 함께 찾을 수 있는 공통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노포는 그리 흔치는 않을 것 같다. 사실 이런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노포의 모습이기도 하다.


평양에 한 번도 못 가본 젊은이들이 평양냉면의 맛을 갈구하고 평양을 고향으로 두고 가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고향 음식의 노스탤지어를 찾게 되는 묘한 하모니가 이뤄지는 곳.

이곳이 바로 충무로 필동면옥이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물냉면(기본)+만두 또는 제육(선택 1)+소주 

2. 2~3인 방문 시 : 물냉면(기본)+만두+제육+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날씨가 차가워지면 평양냉면집은 웨이팅에 대한 부담이 조금 덜해진다. 

2. 주차는 필동면옥 주차장에 하시면 되나, 주차공간이 협소하여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있다. 

3. 점심시간과 퇴근시간 전후로 가면 조금 편하게  즐길 수 있다

4. 필동에서 1차 후, 근처의 필동해물을 2차 자리로 추천한다. 그리고 배가 부르다면 남산 둘레길이나 근처의 한국의 집까지 산책도 가능하다. 

5. 근처 충무로 애완견 가게들에서 귀여운 애완견을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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