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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May 04.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 [서울역 호수집]

치맥보단, 닭꼬치!

저녁 무렵 서울역 뒤편, 중림 성당을 지나 어슬렁거리며 걸어 올라가다 보면 어디선가 불향이 슬슬 올라오며 늙은 초빼이의 코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약간 매운 양념을 바른 무언가를 불에 굽는 딱 그런 냄새. 양념이 불에 타면서 나는 단맛과 매운맛이 가득한 고소한 향과 불향이 한데 얽히고설켜 술 좋아하는 사람을 유혹하기엔 딱 좋은, 그런 냄새. 조금만 더 걸어올라 가면 초 저녁부터 사람들이 엄청나게 웨이팅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이 냄새의 근원이기도 하다.   


우리가 꼬치라는 음식을 만날 수 있는 접점이라곤 지하철 역 출입구의 1천 원짜리 간식용 꼬치집에서부터 서민들의 취향이 한껏 녹아있는 투다리 류의 선술집형 꼬치집들 그리고 한때 주류계를 휩쓸며 여전히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이태원과 강남의 고급 일본식 꼬치집(유다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등의 세 부류가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서울역 뒤편 호수집은 이 대략의 범주에 들지 않는, 조금은 낯선 한국식 음식점인데 닭꼬치를 전문으로 한다. 꼬치 이외에는 닭도리탕(요즘은 닭볶음탕이라는데 그렇게 부르면 맛이 나지 않는 것 같아서)과 오삼불고기, 오징어 불고기 정도가 안주거리로 갖춰져 있다. 결국 무언가에 매운 양념을 해서 볶거나 직화에 구워내는 게 전문인 전형적인 식당이라는 것. 이 집의 메뉴 중 가장 손에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1인당 2개씩만 한정해서 내는 닭꼬치라 할 수 있다. 아마도 한국식 닭꼬치로는 한국 최고라고 칭하는데 부끄러움이 없는 정도.


사실 이 집은 가장 최근에 다니기 시작한 곳인데, 몇 년 전부터 가보려고 꽤 많이 시도했으나 초빼이 특유의 게으름으로 뒤로 미루다가 4~5년 전에 처음 찾아간 곳이다. 무슨 방송(수요 미식회인가 뭐 그럴 듯)에 나가고 나서 엄청나게 알려지는 바람에 웨이팅이 장난이 아닌 곳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 집을 알려준 다른 술꾼 친구 말로는 방송 전에도 사람 많이 가는 곳이기도 했으나 방송 후 정말 엄청나게 웨이팅이 늘었다고 하기도. 



내 경우 이 집에서 기억에 남는 건 딱 두 가지의 메뉴이다. 닭꼬치와 닭도리탕. 

지금까지 먹은 꼬치의 개수는 100개가 조금 안 되는 30여 개 정도이지만(아재식 유머 코드이다) 항상 이 집의 닭꼬치를 먹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어떻게 닭꼬치를 이렇게 구워낼 수가 있지'하는 호기심과 경외심의 중간 어느 부분이다. 


특별히 강하지 않으면서 매운 양념의 빛깔을 그대로 간직하고 그렇다고 심하게 달거나 자극적이지도 않은, 닭고기와 잘 어우러져 전혀 튀지 않는다. 게다가 이 집의 닭꼬치는 수분이 빠져 퍽퍽하지 않아 충분히 풍성한 육즙을 느낄 수 있고 한 입 베어 물면 부드러운 닭고기의 질감을 입안에서 생생히 느껴질 만큼 신선하기도 하다. 연탄불에 구워낼 때의 불향은 내 유전자 속에 숨어있던 '화식'에 대한 본능을 한 번에 끌어올리기까지 한다.  


항상 닭꼬치가 나오면 일단 먹고 시작하다 보니 처음 나온 상태의 닭꼬치 사진이 없다.(이런 집이 몇 군데 있다)


닭도리탕은 국물이 많은, 탕의 개념이 조금 더 강한 그런 형태이다. 이 닭도리탕을 맛있게 먹으려면 끓자마자 바로 먹는 것보단 한소끔 끓어 오른 후 불을 조금 줄이고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는 게 좋다. 국물을 한 숟갈 뜨면 조금은 걸쭉한 상태일 때가 가장 먹기 좋을 때인데, 이때 맛을 보면 고추장찌개나 떡볶이 맛이 난다. 또한 다양한 채소와 버섯 등의 다양한 채소가 들어있는데 반으로 잘라 넣은 깻잎 뭉터기는 신의 한 수.

이 집 닭도리탕의 정의는 완성된 형태가 아닌 완성되어가고 있는 '진행형'의 형태로 나오는, 시간이 좀 필요한 음식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동행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닭꼬치를 먹으면서 술 한잔 들이키다 보면 어느새 걸쭉한 맛을 품은 닭도리탕이 완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항상 아쉬운 것은 1인당 2개만으로 한정하는 닭꼬치의 수량에 관한 것이지만, 워낙 닭꼬치를 찾는 사람이 많고, 주문 후 구워내는 시간이 일반 꼬치에 비해 워낙 길다 보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마치 과유불급이라는 단어를 음식으로 가르치고 있는 듯한 느낌.

이렇게 봄바람이 선선하고 야장하기 좋은 날씨가 되면, 불현듯 이 집의 닭꼬치가 생각난다.  


[메뉴추천]

1. 1인 :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특히 저녁시간엔

2. 2인 : 닭꼬치 2인분(4개) + 닭도리탕 소 + 소주(또는 소맥)

3. 3~4인 : 닭꼬치 + 닭도리탕(사람수에 맞춰) + 소주(또는 소맥)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서울역 서부역으로 나와 중림 성당 쪽으로 쭉 올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다. 

2. 주문에는 스킬이 필요한데, 닭꼬치가 구워져 나오는데 아주 오래 걸리기 때문에 입장과 동시에 닭꼬치를 주문해야 한다. 물론 사람 수 x 2개로!!. 

3. 그 외 이 근처에는 2차를 갈 수 있는 장소가 너무 많고, 너무 많이 생기는 중이라....... 이후의 행선지는 구성원 마음에 따르시길.

4. 닭꼬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그럴 사람이 있으랴마는)과 동행하면, 조금 더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이제껏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 

5. 주차는 굉장히 힘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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