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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Jul 14.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인천 구월동 돈불 1971]

제주돼지와 연탄불이 만들어내는 기가 막힌 케미스트리   

복날이 바로 이틀 뒤라 어떤 글을 올릴까 고민하다 이 집을 소개한다. 

뭐 복날이라고 삼계탕이나 치킨만 먹기엔 너무 지루하다는 느낌도 드니, 내가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이 진정한 복날의 음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한편엔 있기도 하고. 참고로 난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돼지인지라.  


인천시가 개발되면서 동인천 지역이 쇠락해져 갈 때, 그 대안으로 떠오른 곳이 인천 구월동 일대의 먹자골목들이다. 지역상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두 곳으로 나눠지는데, 십 대와 이십 대가 주로 찾는 구월동 음식문화거리(예전에는 먹자골목이라 했다)와 삼사십 대 이상이 주를 이루는 관교동 음식문화거리가 대표적인 곳.


그러나 이곳마저도 인근 부평과 부천의 개발에 속도가 더해지면서 점점 그 영향력이 점점 기울고 있는데, 이 골목에 주목할만한 고깃집이 하나 있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노포의 기준이라 생각하는) 노포의 기준인 30년 이상의 업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노포 못지않은 브랜드력과 음식의 퀄리티가 만만치 않은 곳. 바로 돈불 1971이라는 제주도 돼지고기 전문점이다. 


이 집은 2010년 개업 시부터 제주 돼지고기를 연탄불에 초벌 하여 손님에게 낸 후 테이블 위의 불판에서 완전히 익혀 먹는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첫 개업 시 적어도 인천지역에서는 돼지고기를 연탄에서 구워내는 내는 집 중 가장 빨리 대중의 호응을 얻은 집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이 집의 성업 후 인천지역에 연탄구이 고깃집 열풍이 한동안 일었고, 이 집의 음식 콘셉트와 심지어 상호도 비슷하게 카피해 가는 집들도 있을 정도였으니 그 인기가 꽤 높았던 곳. 


뭐니 뭐니 해도 이 집의 시그니쳐 메뉴는 제주 오겹살 구이이다. 

위의 사진처럼 제주돼지 오겹살을 연탄 위에 얹어 석쇠로 구워내는데, 촘촘한 석쇠망 사이로 열기가 올라와 돼지고기가 품고 있던 기름이 연탄 위로 떨어지면 다시 연탄불은 확 타오르며 고기를 한번 더 익히는 역할을 한다. 강하지만 뭉근한 연탄불의 열기에 겉이 익어가고 불향이 입혀지면 이내 스댕(스테인레스) 접시에 올려져 손님에게 낸다. 그리고 다시 무쇠(주철) 불판 위에서 구워지며 맛은 완벽에 가까워진다. 


이 집의 오겹살이 인기가 많은 또 다른 이유는 아무리 불판 위에서 오래 구워도 돼지 껍질 부분이 어느 정도 이상은 딱딱해지지 않는다는 것. 이 점 때문에 이 집의 오겹살은 여성들에게 오히려 더 인기가 많다.
시간이 흐른 후, 사장님과 친해져 개인적으로 물어보니, 예전 20대 때 고기를 다루던 기술자들에게 배웠던 고기 관련 기술을 아직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영업 비밀이라 자세하게 말해 주지는 못한다는 말도 덧붙이시고. 


여하튼 고기 관련 기술(?)이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고기를 자르고 보관(또는 숙성)했다가 손님에게 내는 단순한 전달의 과정이 아닌, 적어도 손님에게 고기를 내기 전, 손 한 번이라도 더 가는 가공(달리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해서..) 과정이 들어간다는 의미이니 이 사장님의 끈기나 고기에 대한 태도도 남다른 듯하다. 

아마도 이 작은 차이가 맛의 큰 차이를 내는 것일 듯. 



이 집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고기 먹는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손님이 아무리 우기고 윽박질러도 순서를 어기면 그 전 과정의 고기를 맛볼 수 없다. 이 집에서 제대로 고기를 즐기고자 하는 손님들은 반드시 유의해야 하는 점이기도 하다. 이 집에서 고기를 먹는 순서는 

1. 양념이 되지 않은 고기(제주 오겹살, 제주 생목살, 제주 목항정 등)를 먼저 먹은 후,

2. 비교적 약한 양념인 간장 불고기를 주문하여 먹는다. 

3. 그리고 세 번째는 강한 양념의 고추장 불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

 

이런 순서를 두는 이유는 처음부터 양념이 된 고기를 먹게 되면 양념이 안 된 제주도 고기의 담백하고 순수한 맛을 '절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 이 순서로 인해 가끔 술 취한 손님들과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생긴다는 귀띔도 하시고. 


내가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고기는 바로 간장 불고기. 

은근히 양념이 스며들어 있는 얇게 저민 고기가 파채와 함께 구워져 나오는데, 테이블에 오르자마자 느낄 수 있는 은은한 불향이 그렇게 매혹적일 수 없다. 게다가 너무 달거나 짜기만 한 다른 집의 간장 불고기와 달리 심심한 느낌의 간장 양념에 숨어 있는 '적절한' 달콤함은 고기를 입에 넣고 오래 씹을수록 보다 잘 느낄 수 있다. 이에 비해 고추장 불고기는 갑자기 중간 과정을 건너뛰고 갑자기 매워져 강렬한 임팩트를 준다. 청양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잘 배합해 양념을 해 무겁지는 않으나, 꽤 깊이가 있는 맛을 선사한다. 


1. 제주 목항정 구이. 고기의 결이 선명한게 식감이 좋다.           2. 이 연탄불이 만들어 내는 고기구이의 매력은 아는 사람만 안다.


그리고 마무리는 이 집에서 몇 년 전부터 야심 차게 메뉴에 올리기 시작한 청국장 술밥 

개인적으로 이 집 사장님께 청국장 밥집을 하나 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의 맛을 가지고 있다. 물론 전문 청국장 집의 두텁고 깊이 있는 청국장에는 비할바는 아니지만, 뭐랄까 거하게 술을 마신 다음날, 밥 한 공기를 통째로 말아 한 숟갈을 뜨면 식도부터 위장까지 뜨거운 덩어리가 내려가는 느낌에 괴로울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입안에 넣게 되는 그런 맛이랄까? 원래 아는 맛이 더 무서운 법이니. 

해장에 좋은 것들이 술안주로도 정말 좋다는 것은 웬만한 초빼이들은 다 아는 사실일 테니 더 이상의 사족은 붙이지 않으려 한다. 이 녀석도 소주 두병 정도는 거뜬히 마실 수 있는 훌륭한 안주거리다.  


여하튼 관교동 음식문화거리 내, 도로변도 아닌 뒷골목에 처음 자리를 내리고 시작한 이 집이 어느새 10년이 넘었다.(정확하게는 12년 정도) 요즘은 관교동 음식문화거리에서 '돈불 골목'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유명한 집이 되었다니, 꼭 20년 넘게 더 유지하여 신흥 강자가 아닌 진정한 노포로 뿌리내리길 기원하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사실 혼자 온 분을 보지도 못했고, 나도 혼자 가본 적은 없다

2. 2인 방문 시 :  제주 오겹살 2인분 + 간장 불고기 2인분 + 고추장 불고기 1인분 + 소맥 또는 소주(필자의 개인적 경험입니다. 제가 워낙 돼지고기를 좋아해서)  

3. 3인 이상 : 제주 오겹살 3인분 + 간장 불고기 2인분 + 고추장 불고기 2인분 + 청국장 술밥 + 소맥 또는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주차장은 인근 노상 주차장이나 인천문화예술회관 공용 주차장이 편하고 주차비도 저렴하다. 골목 주차가 가능하나 거의 자리가 없다. 

2. 고기 먹는 순서는 꼭 지킬 것. 

3. 제주 목항정도 꽤 좋다. 개인적으로 항정살의 식감을 좋아하는 편이라 추천하고 싶다.

4. 청국장 술밥이 조금 버거울 경우, 계란찜 추천. 계란찜도 일반적인 물을 넣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육수를 넣고 만들어 굉장히 맛있다. 

5. 식사 후 너무 배가 부르다면, 인근 인천 중앙공원을 걸어보는 것도 추천. 인천에서 8년여를 살고 있지만 이 지역 공무원들은 나무와 꽃을 너무 좋아해서 도심 한 복판에 엄청난 수목을 자랑하는 중앙공원이 2~3km 길이로 조성되어 있다. 운동이나 산책하기에 정말 좋은 공원. 인천 시청도 멀지 않다. 

6. 인천 문화예술회관의 공연 감상도 추천. 단 음주 후 공연 관람은 지양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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