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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Jun 23.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 [서울 종로3가 한도 삼겹살]

종로 뒷골목, 은밀하거나 음흉한, 냉삼의 성지


언제부터 드나들었었나 기억도 희미해질 정도로 오랜 단골인 집이다.

국민학생(초등학생이 아닌) 시절 로스구이부터 시작한 '불판에 굽는 고기'에 대한 기억이 생고기에서 냉동육으로 바뀌고, 양념고기로 진화하던 그 어느 시절쯤이었으니, 아마도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20대 후반 정도)부터 다녔던 곳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종로 3가 전철역에서 내려 YBM 시사 건물이 있는 골목으로 접어들어 국일관 빌딩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다 좌측 골목으로 발길을 들이면 한때 종로 3가의 뒷골목을 주름잡던 모텔들이 가득한 골목으로 접어들게 된다. 주변 분위기에 현혹되지 않고(?) 발걸음을 계속 하다보면 작은 삼거리 한편에 자리한 한도 삼겹살을 만날 수 있다.


이 집은 사장님과도 얼굴을 터 놓고 지내는 사이라, 가게의 업력이 쌓이며 흰머리를 더해가는 사장님의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는 곳이라 내겐 더 의미가 있다. 가끔 몸이 아프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음번 방문 때는 꼭 건강과 안부를 한번 더 묻게 되는 곳.


* 사진 속 인물은 특정 내용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힙니다.


음식은 지극히 단순하다.

잘 얼린 옛날식 삼겹살(껍데기가 붙어있지 않은)과 김치, 파절이 그리고 시원한 콩나물국.

알루미늄 포일이 깔린 작은 불판에 가지런히 사각형으로 잘린 삼겹살을 올리고, 아래쪽으로 향해 있는 기름구멍 위로는 김치와 파절이, 그리고 마늘을 올려 삼겹살에서 흘러나오는 돼지기름을 충분히 머금을 수 있게 위치를 정해준다.


육류의 유통과 보관이 좋지 않던 시절,

거의 모든 고기들은 냉동 상태로 보관과 유통이 되었었다. 그리고 이 고기들을 절단기에 올려 그대로 잘라 삼겹살로 내는 형태가 80~90년대에는 대부분이었다고 기억된다. 조금 더 얇게 자르면 90년대 중후반 유행했던 대패삼겹살집의 고기가 되었고.  


불판이 충분히 열을 머금고 삼겹살을 익혀가는 시간이 되면, 냉동삼겹살은 가지고 있던 기름과 수분을 밖으로 내 보내며 쪼그라든다. 여기서 조금 더 불판에서 놀리면, 자기가 내놓은 기름에 튀겨지듯 노랗게 변하게 되는데, 이때가 냉동삼겹살을 먹기 딱 좋은 타이밍. 냉동 삼겹살은 적당한 바삭함이 생명이거든. 


손 위에 상추를 올리고, 그 위에 고기와 고추장(이 집은 고추장을 낸다)을 찍은 마늘을 포갠다.

다시 그 위에 새콤한 파절이나 돼지기름에 잘 구워진 김치를 한 조각 올려 쌈으로 감싸고 이미 채운 소주잔을 한 손에 잡으면, 비로소 천국의 문을 열 준비는 끝.

왼손엔 삼겹살 쌈을, 오른손엔 소주잔을 들고 동행한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건배를 한다. 마치 제를 올리는 듯한 신성한 의식처럼. 그리고 또 쌈을 싸고 그리고 또 잔을 채운다. 내가 아는 많은 지인들의 행복을 빌어야 하니, 여기서부터는 무한반복.     


고기가 조금씩 떨어져 가고 조금씩 취기가 오를 시간이 되면 한 번의 변주를 시도해야 할 시간.

남은 고기를 잘게 자르고(사투리로 조사고), 주문한 밥과 채소, 양념을 불판에 쏟아 부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제는 모두에게 국룰이 되어 버린, 볶음밥의 시간.

잘 익은 김치와 야채, 고추장 그리고 참기름 등이 만들어내는 케미는 웬만해서는 거부할 수 없다.

볶음밥이 완성되면 이젠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 엔딩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주님을 영접하고, 일행과 헤어져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올린다. 오늘따라 지하철이 느리다고 느껴지는 건 불어난 내 몸무게 때문은 아니겠지라며 애써 위안도. 

술기운에 스르륵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 보면 지하철은 끊어지고, 종착역에 도착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게  이미 수 차례. 어느덧 종착역 역무원들도 낯익은 얼굴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메뉴추천]

1. 2인 방문 시 : 삼겹살 2인분 이상 + 주류

2. 2~3인 방문 시 : 삼겹살 3인분 이상 + 주류

3. 고기가 조금 남았으면 볶음밥 주문 필수.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 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삼겹살이 땡긴다면, 이곳이다.

2. 냉동삽겹살이지만, 꽤 육질도 괜찮다. 냉동삼겹살이 생삼겹보다 질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은 버려라.

3. 여름즈음에는 6시 이후(기억이 맞다면) 야장도 가능하다. 삼겹살 야장이라니 색다른 경험이자 기회.

4. 요즘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가맥집인 '서울식품'도 근처에 있어 연계해서 1~2차 하기에 좋음. 단 다이어트는 반드시 내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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