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빼이 Jul 07.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 [서울 을지로 6가 장수보쌈]

잘 삶은 돼지고기에 맛있는 보쌈김치는 하늘이 내린 축복.  

글로 설명하기엔 참 애매한 위치다. 

종로 5가 전철역 5번 출구로 나와 길 건너편의 광장시장을 힐끔거리며 청계천을 건너 3~4분 정도 올라가면 옛 훈련원 자리 한편에 뜬금없는 보쌈집 하나를 볼 수 있다. 게다가 차량을 주차하기에도 참 애매한 위치. 


한때 전국 최고의 보쌈집 프랜차이즈라 불리던 '원할머니 보쌈'(지금은 외국계 자본에 팔려 엄밀하게 따지면 외국계 프랜차이즈로 볼 수 있다)의 원조집이라는 말도 있었고, 원할머니 보쌈의 창업주와 함께 일했던 분이 만든 가게라는 소문도 있었던 그런 가게. 대다수의 소문이라는 게 진위를 확인할 방법 막막한 그런 이야기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 사실여부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행위라 생각하지만, 이 집의 보쌈과 보쌈김치는 어디서도 맛 볼 수 없는 굉장한 맛을 낸다는 것은 극명한 사실. 


딱 요맘때쯤 친한 지인들과 거리에 깔아놓은 야장에서 시원한 소주에 보쌈을 즐기던 시간이 어제 같은데 벌써 몇 년이라는 시간이 코로나와 함께 지나버렸다. 전 세계적으로 창궐한 역병으로 인해 2년여를 찾지 못했더니 그 사이에 간판도 바꾸고 가게 입구의 실사도 바꾸면서 새로 단장한 모습으로 사람을 맞는다.


이 집에서 먹어본 음식은 딱 두 가지 보쌈과 보쌈 백반이 전부. 

워낙 보쌈으로 유명한 집이라 보쌈 외의 다른 음식은 주문할 생각도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 또한 그만큼 이 집 보쌈은 부러 찾아가 맛볼 가치가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흔히들 보쌈과 수육은 다른 음식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보쌈과 수육은 거의 같은 음식이라고 보는 게 맞다. 음식평론가 황교익 선생은 '보쌈과 수육은 돼지고기를 삶아서 썰어 놓은 것은 같다'라고 말하며 '수육은 돼지고기를 찍어 먹을 수 있는 새우젓이나 간장 등이 나오지만 보쌈은 포기김치나 쌈이 나오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결국 끓는 물에 돼지고기를 삶아 내는데 무엇과 내느냐가 보쌈과 수육의 차이라는 것. 



이 집의 보쌈은 고기도 고기지만 함께 내는 보쌈김치가 예술적인 수준이라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 

원래 김치 색은 이런 색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만큼 '빨간 보쌈김치'를 받으면 입안에 절로 침이 고여 꿀꺽 삼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굉장히 진한 고춧가루 양념으로 인해 자칫 굉장히 매울 거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매운 것에 약한 나도 맛있게 먹을 정도로 보기와는 다른 순한 모습도 보인다. 잘 담가진 보쌈김치는 오히려 달콤한 맛이 나서 기름기 있는 돼지고기와 함께 먹으면 느끼함도 잡아줄 뿐만 아니라 굉장히 풍성한 맛을 선사한다. 특히 사각사각거리는 느낌의 이 김치는 따로 포장해서 집에 가지고 가고 싶은 욕심이 들 정도로 잘 만들어진 작품.


고추나 마늘이 매우면 함께 내주는 콩나물국으로 입을 달랜다. 정말 콩나물 딱 하나 넣고 끓인 옅은 노란색 콩나물 국물이 입안의 매운 통증을 한 번에 씻어 내리는 듯한 느낌. 게다가 돼지고기에 필수인 새우젓도 일반 식당에서 제공하는 그것보다 상태가 좋아 젓가락을 자주 부른다.   


30여 년을 넘게 한자리에서 업을 유지하며 이와 같은 품질의 음식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주인의 부단한 노력과 부지런함이 함께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이미 깨달은 지금, 이 집의 존재 자체로만으로도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사실 이 집은 음식과는 달리 악명 높은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위치상 쉽게 찾아가기 어렵다는 것과 현금 결제에 대한 부담이 있다. 나 역시 깜빡하고 현금을 준비하지 않아 몇 번이나 멀리 떨어진 은행까지 찾아가 현금을 인출해 계산을 한 적이 있었는데, 요즘의 젊은 손님들에겐 이 부분이 못마땅하게 비칠 수도 있는 것은 사실. 이런 부분은 이 집의 사장님도 조금 생각을 바뀌면 좋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 집을 찾고 싶을 땐, 미리 은행에 들러 현금을 찾아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한다. 아직은 이 집 특유의 보쌈과 보쌈김치에 대한 대체제를 찾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 이 집도 지금 사장님 이후로 어떻게 유지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 즐길 수 있을 때 즐기고 경험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한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시 : 보쌈백반 + 소주   

2. 2인 방문시 : 보쌈 + 소주

3. 3인 이상 방문시 : 보쌈 + 찌게류 1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주차는 참 불편하다. 훈련원 공원 공용 주차장이 가장 가깝다. 

2. 반드시 현금 준비를. 서로 얼굴 붉히지 말자는 취지임. 그리고 자영업자들에게 카드결재에 대한 부담은 꽤 크다는 사실도 감안해 주면 좋을 듯. 그래도 싫다면 안가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3. 보쌈김치를 꼭 맛보시길. 이 집의 보쌈김치는 다른 집과는 차이가 있다. 

4. 2시부터 4시까지 브레이크 타임. 예전에는 없었는데 아마 인건비 상승과 인력난에 기인한 것 같다. 

5. 여기서 1차 후 인근 광장시장 투어를 연계하면 2~3차를 가기에 편하다. 

이전 04화 초빼이의 노포일기 [서울 을지로 산수갑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